[1990년대] 착하고 청순한 여주인공, 그리고 악녀의 등장

한국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최수종-고 최진실 주연의 <질투>를 꼽을 수 있다. 1992년 방영된 이 드라마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감정이 발전하는 과정과 삼각관계를 그리며 당시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이한 스토리지만, 당시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일단 친구 사이에서 연인이 되는 설정도 당시에는 꽤 트렌디했다. 게다가 고 최진실(하경 역)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이응경(영애 역)은 무려 이혼녀였다. 무려 24년이나 지난 드라마가 이 정도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착하고 사랑밖에 모르는 여주인공 캐릭터의 전형성은 이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드라마 <도쿄 러브스토리>와 비교당하며 표절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질투>가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로 고 최진실과 최수종은 당대 톱스타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한국 최초 트렌디 드라마 <질투>(1992)

한국 최초 트렌디 드라마 <질투>(1992) ⓒ MBC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혹은 트렌디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대체로 청순하고 착하며, 밝고 건강했다. <마지막 승부> 심은하,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신애라, <프로포즈> 김희선, <별은 내 가슴에> 최진실 등 '착하고 청순하며 밝게 사는' 캐릭터는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이 중 김희선은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포즈>를 비롯해 <세상 끝까지> <미스터 Q> <해바라기> <토마토> <안녕 내 사랑> 등 출연 작품을 모두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김희선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대부분 착하고 청순가련하며 악녀에게 속수무책 당하는 역할이었다. 특히 김희선과 함께 <미스터 Q> <토마토> 등을 연이어 성공시킨 이희명 작가는 주인공과 대비되는 악녀를 이용한 트렌디 드라마로 수차례의 성공을 거머쥐었다.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와 부모의 반대를 딛고 사랑을 쟁취하는 스토리는 일종의 트렌디 드라마 공식처럼 굳어졌으며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청춘 아이콘 김희선

1990년대 청춘 아이콘 김희선 ⓒ MBC


[2000년대] 신개념 여주인공, 삼순이의 등장

1990년대에도 왕자님과 평범한 조건의 여자가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있었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2000년대 들어 더 발전한다. <진실> <천국의 계단> 등 1990년대 악녀 vs. 천사로 대표되는 갈등구조는 그대로지만, 주인공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 이수정(하지원 분)은 지고지순하고 청순하지만 비굴할 정도로 가난하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두 남자 정재민(조인성 분), 강인욱(소지섭 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결국 주인공 셋 모두 죽음을 맞는다. 현재 기준으로 보아도 파격적인 결말.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결말에 이르러 밝혀진, 수정이 재민과 인욱 모두를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파리의 연인> 강태영(김정은 분)은 전형적인 스토리 속에서도 할 말을 다하고 충고를 서슴지 않는 성품을 지닌 인물이고,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2009) 주인공 금잔디(구혜선 분)는 부잣집 도련님 구준표(이민호 분)를 때리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여주인공은 좀 더 당당하게 변화했고, 남자 주인공 역시 그저 능력 있는 남자 정도가 아닌, 아예 재벌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모두가 굽신거리는 안하무인 남자 주인공에게 할 말 다하는 당찬 여주인공.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할 말은 하는 여자의 당당함에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 됐다.

 로맨틱 코미디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 온 <내 이름은 김삼순>.

로맨틱 코미디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 온 <내 이름은 김삼순>. ⓒ MBC


그러나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이 등장하며 한국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 캐릭터에 새 변화가 시작된다. 지금껏 아름다운 여배우가 '평범하다'고 무시당하는 아이러니를 지켜봐야 했던 드라마들. 하지만 김선아는 몸매 콤플렉스가 있고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평범한 삼순이를 위해 실제 살을 찌웠다.

사랑에 관한 가치관이 확실하고 성적 욕구 표현도 서슴지 않는 노처녀 삼순이. 그동안 마냥 예쁘고 착하기만 하던 여주인공의 공식을 완벽하게 깨부수는 '파격'이었다. 언뜻 재벌남 현진헌(현빈 분)과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여타 신데렐라 스토리를 따라가는 듯했지만, 삼순이는 지금까지 수동적이기만 하던 여성 캐릭터를 벗어나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져 남자 신데렐라 스토리인 <환상의 커플> 나상실(한예슬 분)로 이어진다.

아예 <커피프린스 1호점> <성균관 스캔들> <미남이시네요> 등 남장 여자 설정을 내세운 드라마가 연이어 성공하기도 했다.

[2010년대] 여주인공 캐릭터의 심화 발전 형태

 공감을 무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또 오해영> 오해영 역의 서현진

공감을 무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또 오해영> 오해영 역의 서현진 ⓒ tvN


2010년으로 오면서 여주인공들은 더욱 당당해진다. <시크릿 가든> 길라임(하지원 분)은 대역 액션 배우로 살아가며 보이시한 매력을 뽐낸다. <별에서 온 그대> 천송이(전지현 분)는 무식하지만 당당한 톱스타로 등장해 웃음을 제공한다. 루머로 바닥까지 주저앉은 다음에도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톱스타 천송이의 모습은 캐릭터에 매력을 더했다.

<오! 나의 귀신님> 속 나봉선(박보영 분)은 '한 번만 하자'며 남자를 쫓아다니는가 하면, <태양의 후예> 강모연(송혜교 분)은 의사인 자신과 다른 신념을 지닌 남자 유시진(송중기 분)에게 당당하게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당당함과 함께 2010년대 여성 캐릭터의 트렌드는 '공감대 형성'이다. tvN <로맨스를 부탁해> 시리즈는 연애 감정에 갈팡질팡하는 감정을 제대로 포착하면서 호평을 얻었다.

최근 방영 중인 <또 오해영> 오해영(서현진 분) 역시 남들에게 비교당하고 사랑에 치이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무조건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대중이 반응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주인공의 연애와 인생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오해영 서현진 김삼순 최진실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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