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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부 온천지대 쳉헤르(Tsenkher)의 아침, 먼 동이 트기 시작하자 게르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밤도 몽골의 별을 보느라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고 몽골에서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무수히 많던 별들이 모두 사라지고 하얀 반달이 숲 너머 하늘 위에 떠 있었다. 마치 숲에서 생겨난 것처럼 구름이 숲에서부터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게르 캠프의 아침. 무수히 떠 있던 별들이 모두 사라지고 뭉게구름과 달이 떠 있다. ⓒ 노시경
한가하게 하늘도 보고 산도 보다가 게르 뒤를 둘러보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캠프의 울타리를 넘어 동네 소들이 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게르 안에서 들었던 '서걱서걱' 하는 이상한 소리도 이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소리였던 것이다. 게르가 풀밭 위에 설치되어 있었고 게르 주변은 온통 풀밭 천지였기 때문에 이 소들이 당연히 풀을 뜯어먹기 위해 게르 앞까지 들어온 것이다.
게르 캠프에 들어온 소떼. 게르 바로 앞까지 옆 동네 소들이 들어와서 풀을 뜯고 있다. ⓒ 노시경
낮 시간에는 게르 캠프 안에 소들이 못 들어와서인지 게르 앞에는 풍성하게 풀이 자라고 있었다. 몽골에 많은 검은 소는 마음껏 자란 소뿔을 세우고 식사를 즐기고 있다. 검은 소는 내가 접근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풀을 뜯어먹고 있다.

아침의 밝은 햇살이 하얀 게르 천막에 부딪쳐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와 소들이 서 있는 풀밭 위에는 아침 햇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공기가 맑으니 아침 햇살에 반사된 풀도 투명하게 빛나는 것 같다. 게르 전체 이곳 저곳에 몽골 소들이 퍼져 있지만 순하디 순한 몽골 소들은 아무리 몰려 있어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소들은 우리나라 소들에 비해 조금 더 작아 보이지만 초원에서 자란 소들답게 목덜미나 다리도 굵고 근육질로 보인다.
초원의 야크 무리. 야크 무리들이 아침의 중산간 지역 초원을 점령하듯이 모여 있다. ⓒ 노시경
게르 캠프 밖으로 나가보았다. 눈 앞에는 밑도 끝도 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곳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를 야크들의 천지, 야크들의 세상이다. 마치 아프리카의 초원지대에 누우(Gnu) 떼들이 활보하듯이 몽골의 초원지대에 방목된 야크들이 활기차게 초원을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이곳 쳉헤르에서 '방목(放牧)'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거대한 대자연 속에 야크가 움직이고 초원과 야크는 자연 속에 하나가 되어 있었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잊어버린 채 아침의 하늘을 벗삼아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쉬고 있었다. 대자연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고, 모든 풍경들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이 한가하기만 하다.

몽골에서 야크는 젖을 이용해 유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달구지를 끌면서 짐을 운반하는 데에 많이 이용된다. 그런데 머리 속에 가지고 있던 야크에 대한 지식이 실제 현지에서 보고 경험하니 느껴지는 것들이 많이 다르다. 야크의 실제 모습을 처음 보니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야크도 소와 같이 소목 소과에 속하는 동물이라서 소와 많이 닮았지만 소와 달리 어깨가 볼록하게 솟아올라있다.
야크. 소를 닮은 야크는 배와 꼬리에 무성한 털이 나 있다. ⓒ 노시경
야크가 소와 가장 다른 점은 야크 배 아래 면에 검은색과 갈색의 긴 털이 무성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마치 발을 드리워 놓듯이 무성한 털이 배 아래에 나 있다. 꼬리의 털도 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해서 야크 몸의 뒤쪽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푹신푹신한 털이 온 몸에 덮여 있으니 덩치도 소보다 훨씬 커 보인다.

야크는 티벳, 몽골 등 주로 추운 지방의 고지대에서 자라서 이렇게 털복숭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야크 털은 옷과 양말을 짜는 데에 많이 사용된다. 털이 옷감의 실같이 늘어져 있으니 털을 잘라내어 잘 씻으면 바로 훌륭한 옷감 재료가 되는 것이다.

이 야크들은 어제 밤에 봤을 때에는 산 위에서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그 야크들이 초원에 흩어져서 점점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초원의 아침에 성찬을 즐기던 야크들이 중산간 지역에 있는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야크들 사이로 자세히 보니 작은 몽골의 한 여인이 있었다. 날씨가 서늘한 쳉헤르의 날씨에 맞게 두터운 초록색 몽골 전통 복장을 입은 몽골의 여인이다.
야크 방목. 이른 아침부터 야크 무리들에게 풀을 뜯기는 몽골 여인의 부지런한 삶이 시작된다. ⓒ 노시경
이여인은 아침 산책하듯이 야크들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야크들을 집으로 몰고 있었다. 이 여인이 야크들을 부르는 나지막한 소리가 몽골 초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인이 야크들을 부르는 소리는 마치 가족을 부르듯이 친근하고 사랑스러웠다. 주인을 알아본 야크들도 풀을 먹던 동작을 멈추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가 몽골 초원의 유목생활이 낭만적이라고 하였던가? 이들의 유목생활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수백 마리의 가축들을 방목하기 위해 이동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쳉헤르의 산 위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이 여인의 지휘 하에 거대한 야크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른 아침에 만난 이 몽골 여인의 생활력에 찬사를 보냈다.
초원의 몽골인. 말을 타고 가축들을 몰던 몽골 아저씨가 반가운 아침 인사를 건넨다. ⓒ 노시경
야크들이 산으로 올라가자 들판은 다시 양과 염소의 세상이 되었다. 가축들의 세상 속에서 카우보이 같은 몽골 아저씨 한 명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몽골 전통복장을 입은 그는 말과 한 몸인 듯 자유자재로 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아침 햇살에 구리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사진을 찍자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넨다. 나는 몽골어를 할 줄 모르니 그의 유창한 몽골어 질문에 웃음으로 답했다. 아마도 그는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솔롱고스"
"아! 솔롱고스"

그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솔롱고스'는 내가 아는 몽골어 몇 단어 중 하나이다. '무지개'라는 뜻으로 한국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나라 때 색동옷을 입고 고려에서 온 공녀(貢女)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 이전부터 고려를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히 어원을 알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이 만주에 살 당시인 삼국시대부터 몽골과는 이웃이었으니 아주 오랜 옛날에 생겨난 이름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가 '솔롱고스'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것을 보니 이 시골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아주 좋은 것 같다.
초원의 말. 초원에서는 말과 망아지가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 노시경
내가 있는 산의 동편 초원에는 말들의 무리가 몰려 있었다. 소와 야크, 말들은 자유롭게 방목되어 있지만 서로의 구역이 정해져 있는 듯이 각자 모여서 풀을 뜯고 있다. 말들은 리더가 있어서 한 마리가 앞장서 나가면 다른 말들이 그 말을 따라가면서 이동을 한다.

역시 말들은 빨라서 방금 눈 앞에 있던 말들이 잠깐 동안 사이에 저 먼 초원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망아지 한 마리가 뒤처지자 어미 말이 돌아와서 마치 아이를 돌보듯이 호위하며 무리를 향해 함께 뛰어간다.

나는 게르로 돌아와 오전 내내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긴 이동거리가 포함된 여행 일정에 지쳤을 아내를 위해 오늘은 이동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나는 부산하지 않고 너무나 조용한 몽골인들의 삶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나는 이러한 시간들이 너무나 생소했다. 아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심심한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오후에 말을 타기로 했는데. 시간을 좀 당겨서 오전에 탈까? 주변에 모두 말들이고 이 거칠 것 없는 초원에서 말을 타면 마음이 상쾌해질 것 같아."
승마용 말들. 몽골의 초원으로 우리를 안내할 말들이 내가 쉬고 있는 게르를 찾아 왔다. ⓒ 노시경
주변에 말을 키우는 청년에게 부탁해서 1시간 동안 몽골 말을 타기로 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 3마리를 끌고 왔다. 체구는 좀 작지만 아주 다부지게 생긴 말들이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도 참 선량해 보이는 말들이다. 몽골의 시골에서 나고 달렸을 이 말들을 보고 있으니 건실한 시골청년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을 타기 전에 말 주인이 우리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절대 말의 뒤쪽으로 말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 뒤쪽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면 바로 뒷발질을 하므로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위험사항을 고지 받았음을 확인하는 서류에 사인까지 하고 말에 올랐다. 말의 앞에서부터 접근하여 말의 왼쪽으로 올라타서 말의 발걸이, 등자에 발을 걸었다.

나도 말 타기는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이 되었다. 아내도 긴장하는데 나는 괜찮은 척 아내를 안심시켰다. 천천히 달리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드디어 풀밭과 꽃이 어우러진 초원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를 탄 것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 시야가 높아지니 주변의 산과 초원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우리는 천천히 낮은 산을 올라 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아내와 말을 타고 있으니 완전히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주가 알려준 대로 발로 말의 몸통을 박차자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일 때는 말을 타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말이 속도를 내자 문제가 달라졌다. 좁은 말 안장 위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내 몸의 균형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나는 몸이 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말 고삐를 꽉 잡고 안장이 닿은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즐겁게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말에서 안 떨어지기 운동을 하는 것 같은 힘든 모양새가 되었다.

속도를 내던 나의 말이 언덕길을 만나자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여행객들 승마를 위해 온 말 중에서 나의 말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말 입장에서도 오늘 승마 일행 중 가장 무거운 나를 태웠으니 운도 없는 말이다. 말 위에서 내려다보니 말의 눈빛은 참 착하기만 하다. 말이 괜히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말과 함께 천천히 움직였다.
숲 속에서 쉬고 있는 말들. 언덕을 올라온 말들에게 휴식과 함께 신나는 점심시간을 준다. ⓒ 노시경
마주는 낮은 산의 우거진 숲 속에서 말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자고 했다. 나의 말은 내가 내리자마자 주변 풀밭이 모두 자기의 식량인 듯 신나게 풀을 뜯기 시작했다. 마주가 말들이 좋아하는 풀이 무성한 곳으로 우리 일행을 데려온 것이다. 아내도 이 착한 말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의 몸통을 쓰다듬어 줬다. 말들에게 식사시간을 주는 배려의 시간을 보고 있으니 몽골인들은 가축을 가족같이 대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나는 배를 양껏 채운 말의 등 위에 올라타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과 같이 몸통을 맞대고 달리다 보니 무언가 모를 친밀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말은 주인이 아닌 나를 거부할 수 없는 손님으로 어쩔 수 없이 등에 태우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말의 숙명 같은 묘한 느낌이 말과 맞닿은 하체를 통해 전해졌다.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이 착하게 길들여진 말과 친해지고 싶다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나의 백마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걸으며 천천히 초원을 산책했다.

다시 초원지대로 내려오는 길. 나의 백마가 달리면서 자꾸 길 옆의 한곳을 곁눈질한다. 그곳에는 마구간도 있고 여러 말들이 묶여 있었다. 순간 무언가 말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곳은 이 백마의 집이었던 것이다. 나의 백마는 자신의 말 무리가 모두 모여 있는 집 앞을 그냥 지나쳐서 더 먼 곳으로 달려가는 내가 야속했을 것이다. 나는 조금 더 달리다가 말 머리를 돌려서 우리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를 태웠던 백마. 나이가 좀 든 이 백마는 선량하게 나의 초원 승마를 잘 이끌어줬다. ⓒ 노시경
우리 게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내가 탄 백마의 집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나의 백마는 자기 집을 다시 힐끔힐끔 쳐다보며 달리다가 이내 포기한 듯 다시 앞만 보고 달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많은 나의 백마는 마주가 탄 말, 아내가 탄 말에 비해 속도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백마는 앞 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 뒤로 처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속도를 내기 위해서 내 백마의 몸통을 내 발로 박차지 않았다.

내 말은 자꾸 처졌지만 나는 유유자적하게 몽골의 산과 초원을 감상하며 말에게 내 몸을 맡겼다. 푸른 하늘 위에 뭉게구름을 보면서 내 말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말과 초원을 함께 보면서 말의 걸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몽골에서의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저 앞에서 말을 타고 가던 아내도 돌아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쳉헤르, #야크, #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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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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