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좌)과 김남성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우)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좌)과 김남성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우) ⓒ 박진철


"여자배구는 저렇게 잘나가는데…."

요즘 남자배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국내에선 겨울철 최고의 킬러 콘텐츠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선 앞이 캄캄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는 지난 22일 끝난 리우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당당하게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유럽 강호 네덜란드와 숙적 일본을 연파하면서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관심도도 높아졌다.

반면, 남자배구는 현재 일본에서 진행 중인 올림픽 세계 예선전(5.28~6.5)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다. 지난해 8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7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3위를 한 중국과 세계랭킹 순위가 뒤집히는 바람에 출전 자격을 중국에게 넘겨줬다.

결국 남자배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많은 배구인들은 지금도 '테헤란 참사'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전광인·송명근 등 핵심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출전한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둘째는 세계 배구의 대세인 스피드 배구를 외면하고, 리시브 위주의 수비 배구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한국 프로배구가 낳은 산물이라는 점에서 한국배구연맹(KOVO)과 남자 프로배구 구단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울러 국가대표 혁신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대한배구협회의 무기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행히 지금은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그럴듯하게 고치고 있는 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배구협회의 박승수 회장, 신만근 전무, 김찬호 경기력향상위원장 등 현 집행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국가대표 운영 등과 관련해 대대적인 혁신에 돌입했다.

남자배구의 스피드 배구 전환을 선언하고, 고교·대학의 장신 유망주들을 대거 국가대표로 발탁해 겨울철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여자배구도 리우 올림픽이 끝나면 중·고교 유망주들을 선발해 내년 1월부터 남자배구와 함께 겨울철 특별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국가대표팀 지원을 위해 V 펀드 모금운동과 스폰서 확보 등 미리 발로 뛴 결과, 이번 여자배구 세계 예선전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원이 확대됐다는 호평을 받았다.

국제대회 때마다 무더기 '부상 선수'... 소는 누가 키우나?

그럼에도 남자배구는 한 번 잃어버린 소를 되찾기까지 힘든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

여자배구는 김연경이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와 양효진, 김희진, 박정아 등 국내파의 성장으로 신구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스피드와 조직력을 더 강화하고 토털 배구의 완성도만 높이면, 리우 올림픽 메달도 꿈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신의 유망주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광주체육중학교 3학년의 정호영은 어린 나이에도 189cm나 된다. 190cm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더 고무적인 건 리시브 등 수비도 적극 가담하고 백어택도 한다. 점프와 체공력이 좋기 때문에 국가대표 장신 레프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외에도 선명여고의 박은진(187cm·센터·1학년)과 지민경(184cm·레프트·3학년), 목포여상의 정선아(185cm·센터·3학년), 강릉여고의 안혜진(175cm·세터·3학년) 등 장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들이 꽤 있다.

그러나 남자배구는 당장 6월 17일 시작하는 월드리그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 나가기 위해선 2그룹 유지는 필수다. 월드리그 성적은 세계랭킹 점수에 반영이 되는데, 3그룹으로 떨어지면 점수가 더 낮아진다.

하지만 2그룹 잔류도 녹록지 않다. 이번에도 핵심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주 공격수인 전광인, 송명근을 비롯해 스피드 배구 세터로 기대를 모았던 노재욱이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센터 공격수인 신영석, 이선규도 출전하지 못한다. 모두 부상과 재활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V리그 올인-부상과 재활-국가대표 이탈'이라는 악순환이 개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일부 프로 구단들은 국가대표 소집 때만 되면 자기 팀의 부상 선수를 대표팀에서 빼달라고 아우성이다. 국가대표 선발시 각 팀당 인원수를 맞추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계속 죽을 쓰면, 언젠가는 V리그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KOVO나 프로 구단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한배구협회가 스피드 배구 혁신을 내걸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 대부분 '알아서 잘해보라'는 식이다.

FA-샐러리캡-남녀공동 홈구장, 프로답지 않은 구시대 유물

프로 구단의 이기주의 때문에 선수들이 정당한 대우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어린 유망주나 그 부모들이 배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프로 구단들은 국가대표 차출 때는 소속 팀 선수를 끔찍하게 챙기지만, 정작 프로 선수로서 정당한 권리들은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놓고 있다. 그 대표적인 악법이 유명무실한 FA 제도와 구단별 연봉총액 상한제인 샐러리캡 제도이다.

V리그가 겨울철 인기 스포츠가 되고 KOVO가 200억 원의 방송 중계권료 잭팟을 터트린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선수들의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프로 구단과 KOVO는 몇 년째 프로에 걸맞지 않은 구시대적 유물들을 움켜쥔 채, 안타까운 은퇴 선수만 양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스타급 선수의 경우 샐러리캡을 맞추느라 실제 받는 연봉이 계약상 연봉보다 훨씬 많다는 설까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여자배구도 남자배구와 홈구장을 같이 쓰는 더부살이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경기 시간도 직장인이 찾아가거나 시청하기 어려운 취약 시간대(평일 오후 5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컨대 경기일을 여자배구는 월·수·토·일, 남자배구는 화·목·금·토·일로 정하면, 남녀 배구가 겹치지 않고 평일 오후 7시로 고정할 수 있다. 경기 일정이 늘어지는 문제는 주말 오후 7시 경기를 신설해서 해결할 수도 있다.

이번 세계 예선전에서 보여준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여자배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크게 올랐다. 올림픽 본선에서는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남자배구와 분리 독립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그런데도 일부 구단은 추가 비용이 아까워 분리 독립을 연기해 달라고 한다. 이런 식이면 여자배구도 '김연경 이후'를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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