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거야

SBS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포스터. <그래 그런거야>는 '김수현 표' 대가족 홈드라마의 이변이다. ⓒ SBS


김수현 작가의 철옹성은 일흔을 넘긴 지금도 유효했다. 배우는 물론 방송 시간대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김수현의 권력, 드라마작가 가운데 최고 고료라는 위상 등은 김수현 작가를 상징하는 요소라 해도 무방하다. 현역 작가 중 최고령이라는 사실은 김수현 작가의 천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드라마 작가의 특성상, 나이가 들수록 시청자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만큼은 나이가 60대를 넘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작가였다. 작가 색이 너무 짙은 탓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 정체성을 확실히 한 탓에 그의 명성이 이제껏 유지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김수현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은 배우나 감독의 역량보다는 작가의 이름 석 자였다. 그러나 김수현 시대의 종말이 보인다.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를 통해서다.

불과 3년 전, 김수현 작가는 <무자식 상팔자>를 통해 케이블 채널 최초로 10% 신화를 썼다. 막 출범해 대중의 반응이 그리 좋지 못했던 종편 JTBC에서였다. 그러나 <무자식 상팔자> 이전에 방영된 <천일의 약속>이나 그 후 방영된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김수현 작가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물론 그럼에도 동시간대 1위라는 저력을 발휘한 것은 김수현 작가의 파워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가 들고나온 신작 <그래 그런 거야>는 그의 장기인 '가족극'을 들고 나왔음에도 시청률이 10%를 넘지 못하는 이변을 낳았다. 경쟁작이 딱히 강력하지 않고 드라마가 거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 속에서도 이런 결과를 낸 것은 김수현 작가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일임은 틀림없다. 시청률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김수현 작가의 가족극 최초의 실패라고 불려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는 변화해왔고, 그의 드라마들은 매력적이었다

 파격은 있지만 그 설정이 공감 가게 그려지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파격은 있지만 그 설정이 공감 가게 그려지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 SBS


김수현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트렌드를 선도하는 작가였다. <청춘의 덫>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등 1970·1980년대 김수현이 집필했던 드라마들은 그 시대 여타 드라마작가들이 제시하지 못한 방향성과 파격을 담고 있었다. <청춘의 덫>은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높은 인기에도 불구, 방영이 중지되는 해프닝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중 몇몇은 이후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김수현 드라마가 과거의 작품이지만 현재까지 통할 수 있는 매력을 갖추었단 뜻이기도 하지만 김수현 '스타일'만큼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꼿꼿이 그 자리에 자리를 자리 잡고 서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수현 작가는 트렌드에서 한 발짝 물러난 이후에도 변화의 시도를 계속해 온 작가였다. 가족극 속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신·구세대의 가치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 노력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주인공 김한자(김혜자 분)의 안식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양태섭(송창의 분)의 동성애, <무자식 상팔자>에서는 안소영(엄지원 분)을 통해 자발적 미혼모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가족 드라마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이슈를 건드리며 가족드라마의 틀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 온 작가적인 고민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현재의 가족드라마가 김수현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 작품인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보다 수작이냐는 평가는 쉽사리 내리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때 그 드라마들과 지금의 김수현 드라마가 일취월장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가부장적인 남성 캐릭터가 한층 부드럽게 변화한 면모는 있다.

그렇지만 2016년인 지금도 여전히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 속에서는 3대가 함께 모여 살고, 어른들은 어른,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파격을 시도하지만 그 파격은 철저히 젊은이들은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포용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어른을 넘어 노년층에 들어선 작가가 어른을 나쁘게 그리는 것도 힘에 부치고, 그렇다고 현재의 젊은이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면 과장일까.

남편 죽고도 시아버지랑 사는 며느리, 공감할 수 있나

 <그래 그런거야>는 젊은 층의 로맨스 또한 공감가게 그리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그래 그런거야>는 젊은 층의 로맨스 또한 공감가게 그리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 SBS


<그래 그런거야>에서도 파격의 시도는 계속된다. 드라마 속 이지선(서지혜 분)은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아버지와 함께 산다. 이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파격이다. 그러나 이 설정 자체가 크게 와 닿고 공감을 일으키는 주제는 아니다. 피도 섞이지 않고, 성별도 다른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아무리 둘 사이가 각별하다 할지라도 동거를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과정 없는 결과는 다소 이질감을 자아낸다. 드라마 안에서도 둘의 사이를 의심하는 등장인물이 등장할 정도다. 오히려 그 목소리에 더 공감이 갔던 것은 그 설정이 기분 좋은 파격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회차가 늘어날수록 둘 사이의 애틋함이 표현되며 이질감은 줄어들지만, 굳이 이런 설정을 해야 할 만큼 둘의 이야기가 흥미로운가 하면 그건 의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가 중반을 향할수록 유세준(정해인 분)과 이나영(남규리 분)의 로맨스에 비중이 쏠린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의 로맨스는 다소 고루하다. 둘 사이의 대사나 행동도 그렇지만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라 보기 힘들다. 유독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는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가 드물다.

할 말 다하고 똑 부러지는 여성캐릭터들의 존재는 빛을 발하지만 남성 캐릭터도 다소 여성화되어있는 까닭에 묵직하고 진중한 매력보다는 치졸한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있다. 유세준은 치졸하지는 않지만 매력적이지도 않다. 상대역을 맡은 이나영의 캐릭터 역시 <목욕탕집 남자들>의 김희선이 맡았던 수경이 역할에서 발전한 것이 없다. 어중간한 이 매력의 커플이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이유다. 차라리 유민호(노주현 분)와 강수미(김정난 분)의 중년 로맨스가 훨씬 더 눈길이 간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 젊은 커플의 분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분명 <그래 그런거야>는 따뜻한 드라마다. 김수현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김수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막장이 없고 유쾌해지는 가족 드라마란 것만 해도 가치는 굉장하다. 그러나 매번 우리를 놀라게 했던 김수현 작가의 파워가 유독 통하지 않는다. 김수현 특유의 화법은 계속되지만, 그 화법이 더 이상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으지 못하고 있다. <그래 그런거야>가 김수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거야 김수현 남규리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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