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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기 중이든, 방학 동안이든 방과 후 수업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체능과 같은 '기타' 과목 교사라서가 아니다. 이래 봬도 국영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사는 올해 고3부터 어엿한 수능 필수 교과다. 요즘 사교육 쪽에서는 한국사 전문 학원까지도 생길 정도이니, 학교에서 한국사의 위상은 대부분 학생에게 외면당했던 과거와는 천양지차다.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에게는 방과 후 수업이란 말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과거 정규 수업이 끝나고 바로 이어지던 '보충 수업'이나 '심화 수업' 등을 한데 묶어 부르는 용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예체능 관련 과목을 개설하거나 동아리 활동처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선지 방과 후 수업이라 하지 않고 구태여 방과 후 활동이라 고쳐 부르는 곳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은 정규 수업의 '시즌 2'에 불과하다. 문과는 문과대로, 이과는 또 이과대로 수능 준비에 맞춤형으로 짜여 있고, 아이들의 선택권 역시 그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 하긴 정규 수업조차 공공연히 수능에 맞춰 편법으로 운영되는 곳이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방과 후 수업이 취지에 맞게 꾸려지리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겠다.

예컨대 문과 학생들에게 이과 과목을 하나 이상 수강하게 하고, 반대로 이과 학생들에게 문과 과목을 듣도록 하는 교육과정조차 제대로 지키는 학교가 드물다. 이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분야의 기본적인 소양을 지니도록 배려한 것인데, 현실에서는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습을 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수능 필수 과목으로 대체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실적인 여건상 일선 학교가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힘든 강좌라면 모를까, 정규 수업과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업이라면 굳이 개설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오로지 반복 훈련을 통해 아이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업이다. 외려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떨어뜨리고, 자기 주도적 학습을 방해하는 반교육적 행위다.

백 보 양보해서, 고등학교의 방과 후 수업이 수능 점수를 몇 점 더 끌어올려 대학 가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자. 안타깝게도 그건 아이들 앞에서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면 그걸로 공부는 끝'이라는 걸 선언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아이들의 무지갯빛 삶에 고작 대학 입시가 종착역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그건 학교의 책무를 방기한 것이며, 단언컨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드는 학습, 단언컨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드는 학습, 단언컨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드는 학습, 단언컨대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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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정규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고, 교사들에게는 더 나은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할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배우는 '학(學)'만 있고 익히는 '습(習)'의 과정이 없으니, 그것이 온전한 공부일 리 없다. 종일 수업으로만 이어지는 하루 일과는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전혀 득 될 게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다. 이는 담당 교사의 강의 수준 문제라기보다는 과도한 학습량에 대한 불만으로 보는 게 옳다. 대체로 만족한다는 아이들도 진정 원해서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토로한다. 의욕도 없고 효율도 떨어지는 걸 느끼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으냐는 거다.

무엇보다도 만족 여부를 떠나 "친구들 다 하는데 혼자만 안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방과 후 수업을 받는 문제는 물론, 밤늦도록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독서실에 가는 것도, 주말에 학원을 다니는 것조차도 하나같은 이유를 댄다. 입만 열면 '개성'을 들먹이는 세대지만, 실은 남들과 달리 사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에 철저히 포위된 셈이다.

학부모들도 대체로 방과 후 수업에 썩 만족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하다. 어차피 일찍 하교해봐야 그 시간 학원과 독서실에 보내야 할 테니, 차라리 학교에서 잡아두는 게 더 낫다는 단순한 판단에서다. 더욱이 비용조차 사교육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니, 수업의 질이 높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웬만하면 납득할 수 있다는 눈치다.

그런데 참으로 의아하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심지어 교사들조차도 방과 후 시간이 왜 수업으로만 채워져야 한다고 여기는 걸까. 아이들이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고작 교과서와 문제집 속 지식을 욱여넣는 수업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정규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된 것일까. 이게 무조건 학벌과 대학 입시 때문일까.

'자유시간' 상상하지 못하는 학교, 난 방과 후 수업을 거부한다

생각해보라. 정규 수업이 끝나면 오후 4시 반 경이니, 그때부터 매일 한두 시간씩 각자 부족한 과목 공부를 하든, 동아리활동을 하든,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체육 활동을 하든 내버려두는 거다.
 생각해보라. 정규 수업이 끝나면 오후 4시 반 경이니, 그때부터 매일 한두 시간씩 각자 부족한 과목 공부를 하든, 동아리활동을 하든,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체육 활동을 하든 내버려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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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과 후 수업을 거부한 건 그래서다. 밑도 끝도 없는 수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는 것이 훨씬 교육적일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생각해보라. 정규 수업이 끝나면 오후 4시 반경이니, 그때부터 매일 한두 시간씩 각자 부족한 과목 공부를 하든, 동아리활동을 하든,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체육 활동을 하든 내버려두는 거다.

이렇게 하면 대학 입시는 물 건너가는 것인가. 흔히 '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를 잘한다'고들 하지만, 요즘엔 '그래 봐야 치질만 악화된다'며 조롱하는 세태다. 수업량이 성적과 비례하던 시절도 아닌 데다, 학벌이 맹위를 떨치며 신분을 결정하던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아이들이 맹목적인 학습 노동의 질곡에서 벗어나자면, '자유 시간'은 필수불가결하며 다다익선이라고 믿고 있다.

혈기왕성한 10대 후반의 고등학생들에게 종일 의자에 앉아 있으라는 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식의 미사여구로 포장될 수 없는, 사실상 '고문 행위'다. 이를 학부모와 교사들은 여전히 대학 입시를 볼모로 '공부도 한때'라며 아이들을 옥죄고만 있다. 이는 그들 앞에서 "너희들은 오로지 공부할 권리와 의무밖에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교사가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 아이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그랬다간 자칫 교사들 사이에서 독불장군으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인 까닭이다. 남들 다 하는데 혼자 하지 않는다는 건, 박수를 받든 손가락질을 받든 간에 '튀는' 행동임이 틀림없다. 앞서 말한 대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꽤 시간이 흘러 내가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동료 교사는 지금 없다. 다만 여태껏 그 이유를 내게 물은 이들도 없었고, 그렇다고 구태여 그들에게 그 이유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몇몇 동료 교사들과 방과 후 수업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를 우연히 얻었다. 안타깝게도 생각의 차이가 예상보다 컸다.

모든 분이 이구동성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하느냐"고는 한다. 다만 전가의 보도처럼 "학부모들이 간절히 요구해서"라거나, "가르쳐야 할 분량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덧붙인다. 더러는 "하도 오래된 관행이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든 방과 후 수업이 애초 교사가 '올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관행일 뿐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했다.

우선, '학부모들의 간절한 요구'는 허깨비와도 같다. 과문한 탓인지, 학부모들과 상담을 해보면 방과 후 수업에 대해 대부분 한결같은 답변을 한다. 학교에서 하니까 안 할 수 없다는 거다. 방과 후 수업을 그저 정규 수업의 연장으로 당연시하는 이들도 많다. 말하자면, 그런 학부모들이 분명 없진 않겠지만, 그들의 인식은 대다수 학부모의 의견과는 사뭇 괴리가 크다.

더욱이 자녀들을 학교에 '일임'하는 순간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된다.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은 대상만 같을 뿐 그 내용과 가치가 같은 수 없다. 부모의 역할을 교사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혹 '선생님만 믿고 맡긴다'며 공을 넘기는 학부모가 있다면, 무심히 '네'라고 답하기보다 '교사는 왼쪽 날개가 될 테니, 학부모는 오른쪽 날개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게 마땅하다. 열 번의 방과 후 수업보다 단 한 번 가족끼리의 식사가 더 낫다.

'가르쳐야 할 분량이 많다'는 이유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교과서의 내용이 정규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면, 학습량을 줄이는 것이 옳지 마냥 수업 시수를 늘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긴 이런 이야기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슬픈' 반론이 있다. 교육과정을 손보거나 교과서의 내용을 줄이는 건 일개 교사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높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이다.

또, 교사든 학생이든 수업 시수가 늘면 필연적으로 수업에 대한 긴장감과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된다. 실제로 방과 후 수업으로 인해 외려 정규 수업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 주당 2시간인 수업에 방과 후 수업으로 1~2시간이 더 보태진다면, 해당 수업에 임하는 교사의 자세가 어떨지는 명약관화다. 이는 흡사 기업의 관성적인 야근이 노동생산성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차라리 '가욋돈을 벌 수 있어서'라는 말이 더 솔직하게 들린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방과 후 수업 한 시간 당 대체로 3만 원에서 3만5천 원의 수당을 받는다. 현재 법정 최저시급인 6030원의 5배가 넘는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맞는다면, 꼭 그만큼 교사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아니면 자기 계발의 시간을 빼앗길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앞서 우려한 대로 수업의 질적 저하로 인해 아이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이러쿵저러쿵 방과 후 수업에 대해 말이 많지만, 사라지거나 줄기는커녕 수업 내용조차 바뀌기 쉽지 않을 거라고 다들 전망했다. 방과 후 수업 하나에도 '자유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사교육비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학부모들, 수십 년 동안의 관행에 길든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와 학벌 탓이라 눙치기도 뭣한 복잡한 문제가 돼버렸다. 안타깝게도 방과 후 수업을 보이콧하는 동료 교사는 당분간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


태그:#방과 후 수업, #대학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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