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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에게.

지난해 유독 인기가 많았던 먹방 프로그램 탓인지 어떤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내 아들이 셰프라는 것을 말하게 되면 눈을 반짝이며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좀 많다. 그들에게 "요즘 셰프가 대세"랄지, "요리사가 선망의 대상"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네가 셰프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난 몇 년간의 일들이 토막토막 떠오르곤 한다.

<요리활동> 책표지.
 <요리활동> 책표지.
ⓒ 포도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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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직전까지도 요리사의 길이나 꿈에 대해 말하지 않더니 수능 그 며칠 후 갑자기 요리 관련 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폭탄을 던지던 너였지. 또 군대에 가서 취사병을 지원하겠다는 너를 어떻게든 설득하려던 그때가 생각나 슬며시 웃기도 했지.

셰프의 길을 가고 있는 네가 꼭 읽기를 바라는 책이 있다. 박영길이라는 사람이 쓴 <요리활동>(포도밭 펴냄)이란 책이다. 한 입 먹어본 후 맛있어서 단숨에 먹어치운 음식처럼 단숨에 읽었던 책인데 지난 며칠간 유독 바빠서 이제야 소개하네.

수많은 책들 중에서 하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서울에서 품팔이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와 식당 찬모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없는 살림에 먹고는 살아야 해서 아버지 고향 동네로 이사했다. 그 덕분에 가난한 소작농 자식으로 무탈하게 살아왔다'로 시작되는 프로필 때문이기도 하다. 엄만, 이런 프로필이 참 살갑고 친근하고, 진정성도 느껴져서 좋구나. 그래서 이런 프로필은 읽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지.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1장 '나, 식당 찬모의 아들' 편에서 농사일로 항상 바빴던 부모님을 대신해 어쩔 수 없이 끼니를 때워야 했던 음식들과 특별한 날 가족이 나눴던 음식들, 동네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아버지의 요리와 식당 찬모였던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음식, 자취방에서 해먹던 음식 등, 특별한 사연을 가진 음식들을 소개한다. 물론 자신만의 특별한 레시피들과 함께 말이다.

'나도 이후 단체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사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아버지처럼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준비하곤 한다. 처음에 50인분 가량의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준비할 때는 도저히 맛을 보지 않고 양념할 엄두가 나지 않아 재료들을 미리 섞어 두고 별도로 양념을 바가지에다 만들어 맛을 본 후 섞곤 했다. 양념을 망치면 어쩌지? 도저히 못 먹을 맛이라 저 많은 고기를 버리게 되면 어쩌지 어쩌지?하는 두려움에 항상 조금씩 넣으면서 맛을 보곤 했던 것이다. 이렇게 긴장한 채 요리를 하면 엄청 피곤하고 즐거움도 사라진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부터는 용기를 내어 양념을 바로 넣고 있다. 내 감을 믿는 것이다. 그래야 요리가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내게 힘을 준다. 결국 요리의 첫발은 함께 먹을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의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당신이 책임지려는 가족들의 삶의 무게만큼, 당신이 책임져야 할 역할만큼의 용기를 가지고 요리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 <요리활동>에서.

참 기억에 남을 글이다. 오늘날의 저자를 있게 한, 동네에 잔치라도 있을라치면 50~60명은 족히 먹고도 남을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자처해 새벽부터 준비했던 아버지 이야기인데, '결국 요리의 첫발은 함께 먹을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의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에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꽂혔다.

네게 이 책을 꼭 읽게 하자. 이 부분을 꼭 읽고 마음에 두게 하자고 생각했다. 아, 이 저자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말해야겠구나. 그는 청주에서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조직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련 활동도 하고, 책읽기나 바람직한 출판과 유통 등 책 관련 활동도 하는 그런 활동가인 셈이지.

활동가 알지? 몇 년 전 서울광장 촛불시위 때 그때 함께 가서 알려줬는데... 활동가의 길은 사실 아무나 갈 수 있는 그런 길은 아니다. 뭣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일이니까. 저자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란 글에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번번이 도맡아 했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요리를 통해 이처럼 어떤 깨달음과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글 읽으며 궁금해지더라.

'나는 그동안 우리 애들에게 어떤 음식들을 해줬을까? 어떤 음식이 내 아들을 요리사를 꿈꾸게 했을까? 훗날 내 아이들은 어떤 음식과 함께 엄마를, 우리가 함께 살았던 날들을 그리워할까?'

하지만 지금은 대답을 듣는 대신 혼자 좀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해보고 싶다. 지난날도 좀 돌아보고, 내 생각만으로 나름 짐작도 좀 해보면서. 지난날 함께 먹었던 음식들도 생각하고 그러면서 말이야. 여하간 언젠가는 네게 물어볼 것이다. 그때 꼭 들려줬음 좋겠다.

공룡 활동가들이 하는 활동 대부분이 일상의 무수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자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숱한 아픔을 공유하는 일들이다. 공룡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일을 끊임없이 숙명처럼 겪는다. 최근에 공룡 활동가들은 300일이 넘도록 진행 중인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하고 있다고 하네. 당사자들 못지않게 공룡 활동가들의 몸에도 아픔이 쌓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활동을 유지하면 할수록 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면서 지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우리가 만든 공룡이라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아픔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적절히 해소하거나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걸 함께 만들고 먹는 일과 같은 일상의 즐거움들이, 어쩌면 활동가들의 무거운 삶을 좀 더 가뿐하게 만들고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활동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세상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내가 공룡 활동가들과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이다.' -<요리활동>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또 하나는 셰프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언뜻 요리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일을 하는 한 활동가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때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일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을 그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들이 참 궁금했다.

저자가 이끌고 있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마을카페 이따'라는, 음식을 나누는 공간도 함께 꾸리고 있다. 저자는 그 마을카페 이따로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는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초대해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눈다고 해. 때론 싸움의 현장으로 찾아가 음식들을 나누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8차선 도로 위에서 묵밥과 연잎밥과 부침개를 나누어 먹으면서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어찌 보면 누구나 손쉽게 해먹는 음식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어느 순간 어떤 장소에서는 거대한 연대가 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양식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 < 요리활동>에서.

저자가 이처럼 누군가를 위해 했던 요리들, 싸움 중인 사람들이나 그런 그들을 돕거나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한 요리들, 마음으로 성원해주며 했던 음식들을 2~4장에 풀어놓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그래서 혹시 그 음식을 먹으며 생각날 가능성이 많은 이야기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시위현장에서 나눈 '묵밥과 연잎밥' 이야기다.

공룡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2차 희망버스를 타기로 한 후 가장 적절한 연대를 고민한다. 그 결과 그들에게 힘이 될 음식을 준비해 간다. 그런데 시위현장의 급박한 상황 전개로 음식들을 펼치지도 못하고 식거나 불어터지는 등, 볼품없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경찰의 진압으로 사정없이 밀려난 8차선 도로에서 밤새 싸운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된 음식 이야기. 참 뭉클하게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며, 이 책이 음식을 나누는 힘, 음식의 필요성과 역할, 가치, 이런 것들을 참 잘 이야기하고 있구나. 어떤 음식들을 해야 하고, 왜 나눠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참 잘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었다. 이 책을 네가 꼭 읽기를 바라는 이유 알겠지?

프로필부터 엄마의 마음을 끈 책인데, 역시나 이 책은 첫 글 '칼국수'부터 마지막 글 '꽃게' 편까지, 아주 따뜻하게, 그리고 맛있게 읽힌다. 엄마가 이 글을 쓰는 오늘 저녁, 너는 어떤 손님을 위해, 어떤 요리를 하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요리 활동>(박영길) | 포도밭출판사 | 2016-03-31| 12,000원



요리 활동 - 어떤 싸움에서든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

박영길 지음, 포도밭출판사(2016)


태그:#셰프(요리사), #생활교육공동체공룡, #박영길, #마을카페 이따, #땡땡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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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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