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인>의 메인 포스터

영화 <초인>의 메인 포스터 ⓒ 퍼레이드픽쳐스


지난 21일 서울 롯데시네마 명동 에비뉴엘에서 영화 <초인>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서은영 감독과 두 주연 배우 김고운과 김정현이 참석했다.

10대 청춘 남녀의 성장 드라마로 매우 밝고 건강하며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다. 자기 파괴적 일탈이나 과도한 감정 폭발 없이 고통이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묵묵히 자신을 삶을 살아가는 10대들의 모습을 그린다. 반항과 방황이라는 요란한 청소년기 모습을 부각해서 사회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도 좋지만 <초인>처럼 담담한 스타일의 영화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서은영 감독은 "제 고교 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즐거웠던 기억들도 많고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도 많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영화로 위안을 주고 싶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감독의 말처럼 마냥 밝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도현(김정현 분)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아버지는 재혼했다. 기계체조 선수인 그는 폭행사건의 가해자로 시립 도서관에서 사서로 40시간 봉사활동 명령을 받고 코치님께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놀이를 통해 상처 바깥을 질주하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가진 포토타임에서 배우 김정현(좌)과 김고운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가진 포토타임에서 배우 김정현(좌)과 김고운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노철중


어느 날 도현은 어머니가 다니는 병원에서 한 소녀(김고운 분)를 보고 묘한 끌림을 느낀다. 며칠 후 그가 봉사 활동하는 도서관에서 다시 그녀를 본다. 도서 대출증에 적힌 소녀의 이름은 수현. 학교는 중퇴, 검정고시 출신이다. 도현은 자신과 너무 다르고 신비롭기까지 한 수현에게 먼저 다가간다.

김정현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도현이 자신의 상처에 빠진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밝게 웃는 성격이라서 마음에 들었다"며 "그래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고 시도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성장영화를 특히 좋아한다는 김고운은 "고등학생의 현실을 담은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면서 "제 나이(21살)에 성장영화를 할 수 있어 좋았지만, 인물의 상처가 너무 커서 걱정,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도현과 수현은 각자의 상처를 숨긴 채 '책 도둑질하기', '한강 다리에서 소리 지르기', '공항 근처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손들기' 등 같이 놀면서 상처 바깥을 질주한다. 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독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언급하는 부분은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나를 뒤돌아볼 줄 안다면 누구나 초인

 배우 김고운이 기자간담회에서 서은영 감독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배우 김고운이 기자간담회에서 서은영 감독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 노철중


"한 번도 안 읽어 본 책들이 많이 나왔다. 흥미를 느끼고 읽어보려고 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니체의 초인이 무엇일까라기 보다는 제 나름의 초인이라는 정의를 내려 봤다. 내 삶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면 그게 초인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 (김고운)

김고운은 니체의 초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내놨다. 김정현도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 내가 좋고 행복한 것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슬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초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어떤 철학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현자가 제시하는 사유의 방식을 통해서 자기가 속한 세계와 자기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 이것이 철학 하기 혹은 모든 독서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서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도 초인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초인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인간의 이상적인 한 형태이지만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초인이라는 지점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라며 이상적이 아닌 우리 삶 속의 초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립영화와 부산영화제의 가치

흥미로운 것은 영화 <초인>은 감독, 배우, 스태프들 모두에 첫 장편영화라는 점이다. 서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게 매우 어렵기도 했고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화를 하게 된 이유는 정말 영화가 좋아서 너무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격려했다. 덧붙여 "요즘 부산영화제가 많이 어렵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정현도 "장편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고 이 영화를 통해서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감사한 일들이 일어났다"면서 부산영화제와 독립영화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말했다. 이어 "부산영화제에서 시작된 이런 행운이 오늘 이 자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장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며 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바랐다.

 잘생김 보다, 열정이 아름다운 배우 김정현

잘생김 보다, 열정이 아름다운 배우 김정현 ⓒ 노철중


간담회 말미에는 각자 1만 관객 공약을 내놨다. 서 감독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상업영화에서는 하루에도 넘을 수 있는 숫자인데 저희 독립영화에서는 몇 달이 걸려도 넘기 어려운 숫자"라며 회식을 쏘겠다고 말했다. 김정현은 무대 인사에서 극 중 도현의 특기인 '텀블링'을 하기로 했다. 김고운은 "저는 영화에서처럼 당나귀를 타고 등장하고 싶지만 (웃음) 시 낭독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독립 영화가 많이 어렵고 이를 지탱해주던 한 축인 부산영화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수많은 영화인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요람이 흔들리고 있는 요즘, 젊고 건강하고 패기 있는 영화인들의 열정이 담긴 영화 <초인>은 오는 5월 5일 정식 개봉한다.

 포토타임에 함께 선 초짜 영화인들. 좌측부터 서은영 감독, 김고운, 김정현

포토타임에 함께 선 초짜 영화인들. 좌측부터 서은영 감독, 김고운, 김정현 ⓒ 노철중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데이코리아>(www.todaykorea.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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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땐 영문학 전공, 대학원땐 영화이론 전공 그런데 지금은 회사원... 이직을 고민중인 안습....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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