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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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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심스러워 했다. 그 스스로 '삼성을 잘 모른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이재용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이씨 일가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그룹 사업 재편과 경영권 승계 등... 그와의 이야기는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인터뷰와 메일 등 수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심정택 칼럼니스트 겸 산업분석가. 심씨는 최근 <초국가 삼성을 건설하다-이건희 전(傳)>을 낸데 이어, 지난해에도 <삼성의 몰락>을 써낸 작가다. 물론 그의 말처럼 '정통' 삼성맨은 아니다. 쌍용자동차에서 지난 1993년에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자동차 출범에 맞춰 정보업무를 맡았다.

그는 "당시 자동차 사업 진출에 따른 국내외 정보수집과 동향보고 등의 업무를 했었다"고 했다. 이어 "1999년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접으면서 에스원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삼성 주변에선 심 작가께서 삼성 근무도 오래 하지 않고, (삼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많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이다. 6~7년 근무한 것이 전부다. 그것만 보면 난 삼성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지나고 보니, (삼성이) 이렇게 대단한 곳인 줄 알았다면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웃음)"

- 지난해에 이어 삼성 관련 책을 연달아 냈다. 책에는 삼성 인사들의 실명도 언급돼 있고.
"삼성에서 그만둔 뒤 홍보대행사 등을 운영하면서 기업들과 관계를 맺어오다가, 여러 매체에 글도 쓰곤 했다. 삼성을 떠난 지 17년이 지나면서, 외부에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업들을 보게 됐다. 이후 자연스레 삼성 쪽 인사들도 만나게 됐고..."

"삼성과 이건희 거론 자체가 불경?"

그는 작년에 낸 <삼성의 몰락>은 미국 자동차회사인 지엠(GM)으로부터 얻은 영감 때문이라고 했다. 심씨는 "2014년 가을쯤에 서울 외곽에서 잠시 거닐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진 것을 봤다"면서 "그때 GM의 멸망을 다룬 책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산업 분석가인 메이앤 켈리가 쓴 <GM 제국의 붕괴>라는 책이다. 작가는 한때 미국과 전 세계를 호령하던 GM의 권력화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이번에 낸 <이건희 전(傳)>도 그렇고, 삼성 쪽에선 상당히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곧장) 책에 등장하는 전직 삼성 CEO가 삼성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 분이 내 주변의 전직 삼성맨들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 책에 실명으로 인용된 인사가 압력을 받고 있다?
"삼성 쪽 고위인사가 (책에 나온 전직 CEO에게) '삼성을 6년밖에 다니지 않은 놈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왜 했느냐'고 질책을 했다고 들었다. 나에게 책에 대해 내용증명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혹시 법정에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 부담스럽지 않은가.
"(잠시 생각하며) 사실 여러 가지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번 평전은 사실 욕심이 있었다. 지난번에 쓰지 못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또 최대한 실명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대로 된 사실을 적고 싶었다. 문제는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삼성과 이건희에 대한 거론 자체가 '불경'에 가까운 것으로 비치는 분위기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심 작가는 기자에게 재차 "삼성과 이건희, 이재용에 대해 잘못 알려졌거나, 왜곡되었던 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거대그룹 삼성의 성장 과정에서 권력화된 모습, 이씨 일가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경과 환상 등을 언급하면서, 그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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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경영 승계, 모두 TK 집권과 맞물려"

- 이번 책의 시작을 '이재용 체제의 성격 규정'부터 했는데.
"지난해 12월 22일 거의 모든 신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인천 송도의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기공식 장면이다. 거기 참석한 장관들 면면을 보면 거의 국가적 수준의 행사다. 청와대와 삼성, 언론의 합작품을 보면서 이재용 체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심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대통령과 장관 등이 이재용 체제의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현직 대통령을 기공식에 초치한 삼성 바이오 사업은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이 약한 '이재용 체제 런칭'의 수단일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이미 삼성은 '이재용 시대'로 불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급작스럽게 쓰러진 이후, 이재용 체제의 완성은 지난해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아닌가. 이를 통해 사실상 그룹 지배권을 확립했다.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에 삼성은 국내 주주와 언론에 '애국주의' 마케팅을 했다."

- 당시 주총 표 대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찬성하면서 합병이 통과됐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국민연금이 어떤 곳인가. 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는 사실상 기획재정부의 통제는 물론 정책조율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경환 의원이다. 그는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 수장으로 정부에 들어왔다. 작년 삼성물산 주총이 끝난후, 최 의원은 이번 총선 출마를 위해 정부를 떠났다."

법적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심 작가는 "기재부가 배당 관련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기관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재부 인사들이 경기활성화 명목으로 비공식적으로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들과 접촉해온 사실들도 지적했다.

- 최경환 전 장관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물론 최 전 장관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말할순 없다. 하지만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이 최 전 장관의 대구고 15회 동기동창이다. 최 전 장관이야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또 그동안 삼성과 정부의 관계 등을 생각하면 삼성 권력은 사실상 TK(대구·경북)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의미일까. 심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1987년 11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후 이건희 회장으로의 안정적인 경영 승계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경제 관료 출신이며, TK의 대부로 불린 신현확 전 국무총리였다. 그는 경영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회장이자, 삼성맨으로서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이재용 체제는 삼성 스스로의 힘으로 경영 승계를 이루지 못했다"면서 "TK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넘버2로 불리는 최경환이 (국민연금을 통해) 사실상 이재용 체제를 승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이건희 傳> (출판사 새로운현재) 저자 심정택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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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는 '파괴적 혁신가', 이재용은 2년 동안 지배구조 강화만"

- 이재용의 삼성이 위기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비주력 계열사 매각과 합병 등이 이어지는 등 구조조정도 진행되고 있고.
"분명한 것은 (삼성이) 지난 2010년 이후 2013년까지 스마트폰의 성공에 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이후를 준비하지 못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로의 쏠림 현상과 함께 사업의 적절한 분배나 분산이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차분하게 답을 하던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크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삼성의 신사업, 미래 먹거리 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는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미래 첨단분야도 아니다"라면서 "단지 외국의 특허 기간이 끝난 복제약을 만들어내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삼성 스스로도 최근에 대대적인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예전 1995년 이건희의 신경영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이 회장은 당시 그룹 전반에 개혁을 직접 이끌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무엇을 했다'는 것이 보이질 않는다. 이 회장의 신경영은 삼성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조직문화 혁신은 단지 호칭 몇 개 바꿔 부르는 것과 토론회 등으로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 이건희 회장이 아직 병상에 있다. 이 회장을 어떻게 보는가.
"책에도 썼지만 기업가로서 '파괴적 혁신가'라고 본다. 경영자로서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1987년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엄청난 그룹의 성장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그사이 일본 전자기업들의 몰락을 볼 수도 있었다. 경영자로서의 업적과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 만약 이건희 회장이었다면 현재의 위기 해법이 다를 수도 있을까.
"솔직히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고, 좀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와의 대화는 인터뷰 이외 그때그때 메일과 문자 등으로 이어갔다. 물론 심 작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삼성 쪽에선 여전히 부정적이다. 일부에선 편향된 시각으로 사실들을 무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와의 대화에서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그의 책에서도 썼듯이 "삼성이 국가의 주인은 아니다"라는 것.

"삼성이 사회적 타깃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삼성의 성장이 실질적으로 한국경제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삼성처럼 대기업이 이익을 내는 방식이고,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이다. 삼성은 이병철 회장이 창업했지만, 국가와 국민들이 육성했다. 창업주를 존중해서 국민이 이건희 체제를 인정했지만, 3세까지 인정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관련기사] "삼성발 경제위기, IMF보다 더 혹독한 시련"


태그:#이건희, #심정택, #이재용,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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