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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선거철에 국회의원이 하는 공통적인 행동이 있다. 환경미화원을 만나서 같이 거리를 쓸 거나, 전통시장에서 음식을 구입하며 사람들과 대화 나누기, 쪽방촌을 찾아 주민과 이야기하는 등 이른바 '친서민 행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서민' 이거나 그들이 서민을 대표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매번 투기 의혹, 재산 형성 과정에 관한 의심, 로비 자금 의혹 등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민'이라기보다 '특권층'으로 인식된다.

사실, '특권층'이라고 해서 '서민'의 삶을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국회의원은 반드시 '서민'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서민'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정치로 해결해 줄 사람은, '서민'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뿐이다.

여성 정책 없는 박 대통령, 아버지의 '대리인' 역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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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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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논리에서, 여성 정치인은 다른 이들보다 여성의 문제를 잘 대변할 수 있을까? 여성 정치인에게 비례대표 앞 번호를 주는 이유는 정치적 약자인 여성의 국회 진출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다. 또 여성의 삶 속에 스며든, 남성이 가늠할 수 없는 차별과 불편을 '여성' 정치인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 속 여성 정치인의 모습은 어떤가. 2012년 10월 새누리당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야말로 정치 혁신과 양성 평등 실현의 확고한 증거"라고 평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볼 때, 그는 아버지이자 남성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 많은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들었다. 예를 들어 <뉴스타파>는 그 근거로 1989년 MBC <박경재 시사토론> '박근혜 씨 아버지를 말하다' 편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나와 "유신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게 정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부모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하나라도 바로 잡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정교과서 추진이 아버지의 업적을 미화하기 위함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둔 2012년 9월,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저는 아버지께서 후일 비판을 받을 것을 아셨지만 국민을 잘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목표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주체적인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나 다름 없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의정 활동은 어땠을까.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14년간 국회의원으로 대표 발의한 법안에서 '여성'과 관련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박 대통령이 여성가족위원회 상임위에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법안 발의는 소속과 상관없이 할 수 있다.

박근혜 의원 14년간 법안 대표발의 현황
 박근혜 의원 14년간 법안 대표발의 현황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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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딸'만 내세우는 김을동 의원

같은 당, 김을동 의원은 어떤가. 김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당선 직후 <여성신문>과 인터뷰에서 "지역구 여성 정치인 공천 여성 의무할당제를 법제화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역구에서 선택받을 만한 정치적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여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에는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새누리당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여성 국회의원'이라기 보다 '장군의 딸'로 잘 알려져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김좌진, 김두한, 송일국의 사진을 함께 현수막에 걸었다가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는 이러한 소식을 전하며, "현수막에 후보자의 정책을 소개하기보다 가족의 유명세를 내세운 듯한 인상을 준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화성을에 출마 의사를 밝힌 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 참석해 김무성 대표와 김을동 최고위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조은비 예비후보 김무성 대표와 함께 '화이팅' 경기도 화성을에 출마 의사를 밝힌 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대회에 참석해 김무성 대표와 김을동 최고위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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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 의원은 새누리당 여성 예비후보와의 간담회에서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굉장히 밉상을 산다,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국민의 정치의식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언들이 나오는지 경악스럽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이런 김 의원의 의정 활동은 어떨까. 국회 통합 시스템에서 김을동 의원을 검색한 결과,
8년간 그가 대표 발의한 68개의 법률안 중 '여성'과 관련된 법안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개정안과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개정안, 단 두 건이다.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차별에 무감한 나경원 의원

나경원 의원은 2013년 KBS 두드림쇼에 출연해 정치 입문 계기를 밝혔다
 나경원 의원은 2013년 KBS 두드림쇼에 출연해 정치 입문 계기를 밝혔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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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인의 주체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또 다른 인물은 나경원 의원이다. 나 의원은 정치 입문의 계기를 설명할 때 늘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이야기를 꺼낸다. 나 의원은 딸을 사립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 당한 경험이 있다. 사회·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정계에 입문했다는 나 의원이 또 다른 소수자,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

2008년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나경원은 "1등 신부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부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외모에 서열을 매기고, 비혼· 혼인 그리고 자녀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발언이다.

이뿐만 아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은 군가산점을 언급하며 출산가산점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군가산점이 남성 장애인·여성 등을 배제하는 논리이듯, 출산가산점 제도 또한 불임이나 난임, 비혼 여성을 차별하는 제도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산점이 아니라 출산시 따라오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지만, 나 의원은 그런 지점을 짚지 못했다.

3선인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 법안 개수는 총 50개다. 그 중 '여성'과 관련된 법안은 호주제 폐지로 인한 관련 법 조항의 개정, 여성재소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관련 법 두 건으로 총 3개다. '여성' 정치인임을 주장해 온 그의 모습과 대비되는 실적이다.

여성 정치인이 '여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정치인은 '여성'을 대표할 수 있을까.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지니고 있더라도, 단순히 남성의 대리인에 머물거나 남성의 이미지에 기대는 정치인이라면 여성을 대표할 수 없다. 이러한 정치 활동은 오히려 성평등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존 젠더 체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성의 정치성의 권리>의 공저자, 권김현영씨는 이 책에서 "여자가 남자의 어머니나 아내, 딸로 존재할 때 그녀는 남성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여자 개인들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여성의 대표성 문제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해왔던 남성 사회의 힘에 균열을 내고, 여자를 인간(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여성(집단)으로 호명하는 (여성) 사회의 기획과 함께할 때만이 '변화' 혹은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0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의원 후보 중, '여성'이 겪는 문제에 공감하고 해결 의지를 가진 정치인은 누구일까. 정치인이라는 직함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사회를 만들 정치인은 누구일까. 그런 정치인을 뽑는 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동등한 일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길일 것이다.


태그:#여성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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