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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과 경찰이 날로 지능화되는 금융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만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이에 경찰 등이 대응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그로 인한 역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이아무개(44ㆍ여)씨는 17일 오후 1시 40분께 인천 부평구 부평동 A은행 지점에서 1년 예치금을 다시 예치하고, 1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하려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은 현금으로 500만원 이상을 인출할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씨는 이를 동의했다.

2시 무렵 경찰관 3명이 A은행 지점에 도착했다. 경찰관들은 이씨에게 본인의 예치금을 인출하는 것이 맞는지 등을 확인했다. 은행 직원도 이씨가 거래를 계속했고, 1000만원을 인출하려한다고 확인해줬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씨에게 인출한 1000만원의 사용처를 집요하게 물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이씨는 "내 돈을 내가 어디다 쓰는지 확인해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경찰관들은 "보이스피싱 때문에 알아야한다"고 했고, 이씨는 "사생활까지 경찰에게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계약금으로 쓸 것이냐?"고 물었고, 이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경찰관들은 "그럼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이씨는 "그런 것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씨는 이런 실랑이를 10여분 동안 한 뒤 은행을 나서려했다. 경찰관들은 "돈을 누구에게 줄 것이냐" "따라가야겠다"며 이씨와 또 실랑이를 했다. 결국 이씨는 경찰차를 타고 직장까지 이동했다. 이씨의 직장 앞에 도착해서도 경찰관들은 돈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물었고, 직장 안까지 들어가려했다.

화가 난 이씨는 "여기는 일터다. 이제는 돌아가셔도 된다. 들어오지 말라,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직장에 복귀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2시 40분께 부평경찰서 소속 사복 차림의 경찰관 2명이 이씨의 직장을 찾아왔다. 이들은 "지구대에서 연락을 받고 왔다. 보이스피싱 피해 때문이다. 돈을 어디다 쓸지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당황한 이씨는 "이렇게 하는 법적 근거가 뭐냐"고 항의했다. 한 경찰관은 "우리는 지침에 따르는 것이다. 공권력이 우선이다"라고 위협적으로 답했다.

더욱 화가 난 이씨는 "나는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는다. 내 사생활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씨의 직장 건물에는 경찰차 2대와 경찰관 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씨가 강하게 반발하자, 이들은 모두 돌아갔다.

이씨는 "보이스피싱 사건이 많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사생활에 해당하는 돈의 출처를 묻고, 경찰관 여러 명이 직장까지 몰려오면, (직장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한 뒤 "공권력의 월권이다. 일부 동료는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쳐다봤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기보다는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도 '나 1000만원 찾았다'고 광고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A은행 지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건이 많아, 현금으로 500만원 이상을 인출할 경우 경찰에 신고하게 돼있다"며 "경찰관들이 직장까지 찾아간 것은, 저희가 보기에도 심했다"고 말했다.

부평경찰서 소속 B파출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근엔 노부부가 은행 직원에게 거짓말까지 해서 돈을 찾아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연간 금융범죄 피해규모를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2000억원 ▲보험사기 4조원 ▲불법사금융 8조~12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 경찰청과 금융범죄 척결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인천지방경찰청과 지역 소재 금융회사는 고액 현금 인출자 등 금융사기 피해 의심 거래 시 112로 신고하고 현장에서 예방ㆍ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게 경찰 방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융사기,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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