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아들이 성추행 당했다. 그곳도 성당의 사제에게. 성당 사람들은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다. 어머니는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2001년 <보스턴 글로브> 소속 탐사보도 팀 스포트라이트가 다룬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성스러운 이름 뒤에 감춰진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거대악과 싸우는 영화가 그러하듯 기자들은 시작부터 거대한 벽에 직면한다. 보스턴은 지역 유력지인 <보스턴 글로브>에 새 편집장이 부임하면 관례상 추기경과 면담을 할 만큼 가톨릭의 영향이 큰 지역이다. 자신이 사제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어머니는 사건을 조용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방문한 성당 관계자에게 쿠키를 내왔다"는 극중 성폭행 피해자의 증언은 보스턴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출연 배우들. 왼쪽 부터 마이클 키튼(월터 로빈슨 역), 리브 슈라이버(마티 배런역),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역),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역), 존 슬래터리(벤 브래들리 주니어 역), 브라이언 달시 제임스(맷 캐롤 역)

▲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출연 배우들. 왼쪽 부터 마이클 키튼(월터 로빈슨 역), 리브 슈라이버(마티 배런역),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역),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역), 존 슬래터리(벤 브래들리 주니어 역), 브라이언 달시 제임스(맷 캐롤 역) ⓒ 더쿱


보통의 영화들은 감춰졌던 진실이 거대한 벽을 뚫고 나온 후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번화가 전광판에는 이 사건을 다룬 방송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뉴스에 주목한다. 가해자는 궁색한 변명을 쏟아내고, 결국 고위 관계자는 카메라 앞에 사죄하고 물러나는 식이다. 대게 영화 문법에서 기자의 험난한 취재과정은 결과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화의 목적은 기사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사회를 타격하는 스펙터클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만든 신문은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족에서 출발해 다시 나와 가족으로 돌아온다. 진실이 세상에 나온 날. 진실이 찾아간 곳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 팀원인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분)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신문을 전한다. 할머니는 샤샤가 이 사건을 취재하는 내내 가장 마음에 걸린 존재였다. 맷 캐롤(브라이언 다이시 제임스 분)은 한동네에 사는 성추행 사제의 집 앞에 신문을 두고 오고,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는 이 사건을 가장 먼저 공론화시키고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변호사에게 신문을 전달한다.

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몇 해 전 이미 제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제보를 받고도 묵살한 이는 스포트라이트 팀장인 윌터 로빈슨(마이클 키튼 분). 윌터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자신이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하고, 자신도 이 범죄에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자책한다. 이는 스포트라이트 팀을, 그리고 영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는 진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결과를 과장하기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극 중 한 피해자는 "사제에게 당한 성추행은 물리적 학대를 넘은 영적인 학대다. 믿던 신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피해자가 자살을 선택하고,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생존자"라 일컫는다.

윌터 로빈슨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자신이 재학 중이던 시절에도 성폭행 사건을 발생했음을 확인하고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이를 은폐하려고만 한다.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윌터는 해당 사건 생존자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학교 관계자에게 "그 사제는 하키부 코치였고 그는 하키부였다. 만약 우리가 하키부를 선택했다면 생존자는 우리가 됐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생존자가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불쌍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생존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생존자'는 어떤 의미인가. 나아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mincwx80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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