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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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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움켜진 손아귀를 펴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있다. 새로 손에 쥔 그 무엇은, 그동안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었고, 놓기 전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였다. 요단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사표를 만지작거렸다.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버킷리스트 중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던 계획을 전격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평범하게 살던 어느 직장인의 세계 일주는 그렇게 갑작스러우면서 갑작스럽지 않게 시작됐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 기자 말

파키스탄에 있는 산 중 K2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이 무료입장을 원칙으로 한다. 트레커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물가도 환상적이다. 중국에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은 파키스탄 사람들의 순박함과 친절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여행은 파키스탄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국경 마을 소스트에서 시작된다. 구체적인 여행 루트는 소스트~파수~훈자~길기트~페리메도우~이슬라마바드였다. 훈자까지의 길은 멀고 험했다. 홍수와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돼 버스~배~버스~스즈키(미니버스)를 타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훈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훈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시간을 보낸 뒤 트레킹의 거점도시인 길기트로 이동해 페리메도우 트레킹을 결정하게 된다. 페리메도우 트레킹을 하려면 지프를 타고 지옥 길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럼 살아 숨 쉬는 진짜 요정(?)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평생 못 잊을 50시간 초장거리 버스여행을 시작하는데...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이야기 1] 파키스탄 여행 시작, 훈자를 향해

홀가분했다.

중국의 마지막 검문소를 지나면서 영어가 통하는 나라에 온 게 무엇보다 기뻤다. 중국인들은 으레 날 동포로 취급했다. 내 면전에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난사했고, 그때마다 난 손을 가로저었다. 중국인의 불친절로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터무니없이 비싼 관광지 입장료로 고민하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거라 확신했다. 내 마음속은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했다.

쿤자랍 패스를 넘어서자 카펫처럼 폭신한 포장도로는 덜컹거리는 비포장길로 바뀌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로 바뀐 것 같았다. 고대하던 파키스탄 땅이었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파키스탄 군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눈인사로 날 환영할 뿐이었다. 그들의 편안한 표정에선 권위와 가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묻어날 뿐이었다.

파키스탄 땅은 중국과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날 흥분시켰다. 중국 쪽 카라코람하이웨이가 여성스러운 곡선으로 표현 된다면, 파키스탄 쪽은 남성스러운 굴곡이 특징이었다. 꼭 지리산과 설악산을 보는 듯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국경 마을 소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의 체크포인트를 지났다. 이때마다 검문소에서는 "패스포트"란 말 대신 내 국적을 물을 뿐이었다. 역시나 일본인들의 방문이 잦은 곳답게 처음에는 날 일본인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코리아란 말을 듣고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내가 타고 온 버스에는 3명의 파키스탄 사람이 동승하고 있었다. 물론 운전기사도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운전스타일은 중국과 비슷했지만 자동차 경적을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는 중국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차가 조금 튀면 버스 기사는 뒤돌아 날 보고 웃어주었다. 차가 잠시 멈춰 있을 때도 강압적으로 차에 올라타라고 말하는 중국 버스 기사와는 극명하게 달랐다.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드럽게 권유하는 스타일이었다.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같이 국경을 넘은 아민잔과 한잼. 이들은 내게 파키스탄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결정적 잣대가 되는 인물들이었다. 아버지뻘 되는 아민잔은 타슈쿠르간에서부터 날 지극히 챙겼다. 특히 입에 맞지 않는 양고기 만두를 끊임없이 권해 날 곤혹스럽게 했다. 아민잔은 만두를 사양하는 내게 "플리즈~"란 말로 매번 날 무너뜨렸다. 한잼은 묵묵히 내 짐을 챙겨주고 파키스탄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버스는 중국을 떠난 지 7시간 만에 소스트에 도착했다. 검역서류를 작성하고, 작은 사무실에서 입국 도장을 받았다. 모든 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들의 질문은 "오늘 소스트에 머물 거냐? 파수로 갈 거냐?"가 다였다.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그들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소스트에 괜찮은 숙소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바로 숙소를 알아봐 줄 분위기였다.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파수로 직행할 수도 있었지만 소스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파키스탄 입국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느려진 듯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오늘 어디서 머무실 건가요?" 아민잔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길기트로 갈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숙소가 있으니 같이 가지."

아민잔은 왜 지금에서야 그걸 물어보냐는 눈빛이었다. 아민잔을 따라나서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가 짐수레에 내 배낭을 실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돈을 내라고 할 것 같아 배낭을 직접 들고 그를 따라 나섰다. 중국과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파키스탄이란 나라에 믿음이 없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아민잔이 나에게 물었다.

"혼자 잘 거니?"
"네."
"아니야! 하룻밤만 보내면 되는데 같은 방을 쓰지.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고 말이야."
"그게..."
"플리즈~"

난 또 무너졌다. 아민잔은 한잼과 내가 같이 쓸 수 있는 3인실 방을 잡았다. 그는 "오늘 넌 내 게스트니 방값으로 100루피(1300원)만 내면 된다"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돈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당장 환전을 해야 했다. 아민잔은 친절하게 날 작은 상점으로 데려갔다. 생각보다 환율이 괜찮았다. 무슨 생각으로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람, 풍경, 물가... 모든 게 비정상이었다.

'혹시 남자를 좋아하나? 다음날 만신창이가 된 채 카라코람하이웨이 한가운데 버려지는 건 아니겠지? 혹시 내 짐을 털려고 하나?'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이런 친절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민잔이 '짜이(밀크티)'를 주문했다. 아민잔과 한잼이 먼저 마시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찻잔에 입을 댔다. 혹시 약을 타지 않았을까 주저했지만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그만이었다.

아민잔은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자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들은 날 숙소 한쪽에 마련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방안은 어두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스램프 하나가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20개의 눈알이 낯선 황인종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그 자리에는 십여 명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저녁식사 자리로는 너무 음산한 분위기였다. 한국이었다면 은은한 가스램프 빛이 캠핑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줬겠지만, 방안의 기운은 무겁기만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건가.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지? 혹 인신매매범들이 아닐까?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민잔이 날 "한국에서 온 친구"로 소개했다. 그는 북경과 상해 등을 둘러보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아민잔은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사람들에게 중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영상은 솔직히 그리 놀라운 게 아니었지만 난 중국이 대단하다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살고 싶으면 어쨌건 이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여기서 경박한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카라코람하이웨이 어딘가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잠시 뒤 닭고기 수프에 국수가 곁들여진 이름 모를 음식이 나왔다. 종일 먹은 거라곤 비스킷과 입에 맞지 않은 만두가 다였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해치웠다. 맛은 그만이었다. 한 그릇 더하라고 누군가 권유했다. '이렇게 얻어먹어도 별탈이 없을까' 하는 불안감에 "배가 찼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지껄이고 말았다. 잠시 뒤 10인분 치 계산서를 손에 들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식사 뒤 아민잔은 차를 주문했다. 사양하고 또 사양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플리즈"란 말로 내 입에서 "오케이"란 말을 끌어냈다. 아민잔의 음성에는 거부할 수 없는 오묘한 힘이 있었다. 짜이를 한 잔 마시고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한 뒤 한잼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잼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기도를 올렸다. 다음날 눈을 뜨자 아민잔과 한잼은 또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밤사이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 모든 게 이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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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파키스탄 비자다. 그런데 파키스탄 비자는 제3국에서는 받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중국에서는 파키스탄 비자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달려보고 싶다면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파키스탄 대사관을 먼저 방문해야 한다.

제출 서류는 여권사본, 사진 2장, 영문 여행계획서, 영문 재직증명서(직업이 없으면 영문 등본 한 통), 호텔 예약증, 비행기 예약증(중국을 거쳐 입국할 예정이라면 중국행 비행기 티켓 제출)이 필요하고 현장에서 파키스탄 방문 시 트레킹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서약서를 쓰라고 한다. 내 경우 'I'm not going to trekking and never enter districted areas'라고 쓰고 무사히 통과했다. 서약서라고 해서 심각한 문서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파키스탄 정부가 이런 형식적인 서약서를 쓰게 하는 건 트레킹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때문이라고 한다. 호텔 예약증의 경우 이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으니 인터넷을 잘 뒤져보면 된다. 간혹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비자를 받고 3개월 이내에 입국해야 비자가 효력을 발휘한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이야기 2] 파수 게스트하우스 뒷산이 주는 풍경

버스정류장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버스요금 때문에 실랑이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난 모든 걸 아민잔에게 맡겼다. 그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으면 됐고, 내라는 돈을 내면 그만이었다. 졸고 있던 날 아민잔이 깨웠다. 눈앞에 파수의 상징 '투포단'이 엄청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또 다른 절경 중 하나였다.

잠시 뒤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숙소 '파수인'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아민잔과 한잼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진한 악수를 나누었다. 하룻밤 동안 경험한 파키스탄은 맑고 순박했다. 중국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든 게 편안했다. 아민잔과 한잼이 탄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난 흙먼지 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파수인 체크인 시간은 오전 7시가 조금 안 된 이른 아침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1인실 방을 400루피를 주고 잡았다. 파키스탄의 물가는 환상적이었다. 1인실 방이 단돈 5000원에 해결됐다. 짐을 풀고 곧장 '윤즈밸리 트레킹'에 나섰다. 가이드는 파수빙하를 보고 윤즈밸리를 한 바퀴 도는 데 7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산을 오르자 웅장한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다 내놓아도 손색없는 풍경이었다. 거기다 산에 들어가는 까다로운 입산절차도, 여행객을 피곤하게 하는 호객꾼도 없었다. '순수'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파키스탄은 진작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K2 트레킹, 낭가파르바트를 볼 수 있는 페리메도우 트레킹 등의 유명코스가 아니더라도 무명의 절경이 곳곳에 숨어 있는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윤즈밸리 트레킹도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파수는 그 시작일 뿐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 이럴까? 몸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었다. 사람이 그랬고, 풍경이 그랬다. 내가 그토록 파키스탄을 열망한 이유였다. 이제야 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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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에 도착했다면 본격적으로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절경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파수에서 1986년 외부에 개방된 심샬마을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해발 3000m에 위치한 심샬마을에서는 심샬 파미르까지 왕복으로 5일짜리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심샬 트레킹의 백미는 파미르 호수 주변이다. 하지만 해발 4700m 고지를 넘나드는 고산지역을 하루 7~8시간씩 걷는 코스는 초보자에게 무리일 수 있다. 포터 섭외 등의 트레킹 준비는 심샬마을에 도착한 뒤에도 할 수 있지만, 파수의 대표적인 여행자 숙소인 파수인 주인에게 부탁해도 된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이야기 3] 파키스탄 여행 '훈자' 블랙홀에 빨려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꾸렸다. 궁극의 목적지는 장수마을 훈자였다. 파수에서 훈자로 가려면 일단 '후싸이니'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야 했다. 배에서 내린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알리아바드(뉴훈자)까지 간 다음 이곳에서 '스즈키'라고 불리는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더 가야 흔히 훈자라고 말하는 '카리마바드'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배~버스~스즈키를 타야 하는 여정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주민이 후싸이니로 간다며 차를 세웠다. 가격을 물으니 200루피를 달라고 했다. 버스는 100루피였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편하게 갈 수 있어 오케이를 했다.

후싸이니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작은 통통배에 몸을 실었다. 현지인 뱃삯은 100루피가 정가다. 그런데 외국인에게는 300~500루피를 부른다고 했다. 하나둘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중국인 여행자(남성) 두 명도 집채만한 트렁크를 질질 끌며 배에 올랐다. 그들은 날 보더니 중국어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쏘리?" 난 영어로 대답했다. 여기까지 와서 또 중국어 스트레스라니...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잠시 뒤 뱃놀이에 들떠 있는 중국인 트렁크족에게 뱃사공이 다가와 300루피씩 내라고 했다. 난 모른 척 뒤돌아섰다.

'나도 싸잡아 300루피 내라고 할 게 뻔한데, 차라리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운이 좋지 못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별 저항 없이 300루피씩 헌납했다. '어휴! 도움 안 되는 것들.'

"헤이!"

분명 날 부르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뱃사공은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무슨 300루피! 파키스탄 사람들은 100루피잖아."
"넌 외국인이라 300루피 내야 해."
"이해가 안 되네."
"중국 사람들도 300루피 냈잖아."
"중국 사람들이 300루피 낸 건 내 알 바 아니야."
"어쨌건 넌 300루피야."
"말도 안 돼. 파키스탄 사람은 100루피만 받으면서 왜 외국인에게만 300루피를 받는 건데. 100루피만 낼 거야!"

언쟁이 일자 주변의 시선이 모두 나한테 꽂혔다.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모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300루피를 낸 멍청한 중국인들도 벌레 씹은 얼굴로 날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뒤 남산만큼 입이 나온 내게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원래 외국인은 300루피를 내야 해. 그런데 네가 300루피를 낼 수 없다면 내가 200루피를 대신 내줄게, 오케이?"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얼떨결에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배에서 내리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이던 차였다. 끝까지 300루피를 내라고 하면 그냥 주고 말았을 돈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300루피를 낸 중국인들을 의식한 말 같았다.

'푸~아~하.'

표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미칠 듯이 좋았다. 배낭여행족과 트렁크족의 현격한 전투력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큰 쾌감을 맛본 순간이었다. 엔진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배를 밀어냈다. 배가 에메랄드빛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통쾌한 뱃놀이의 시작이었다.
파키스탄 여행 ⓒ 김동우
선착장에 당도하기 직전 중국인들을 제외한 모든 승객은 뱃사공에게 뱃삯으로 100루피씩을 냈다. 이렇게 싸워 세이브 한 돈은 달랑 2600원 정도였지만, 기분은 2만 6000달러짜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배에서 내리려고 보니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중국인들에게 트렁크를 열어보라고 한 뒤 꼼꼼히 짐을 검색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경찰이 내 앞길을 막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패스."

'크~아아~악~' 코리아의 완승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들었다. 난 이 순간만큼은 가슴 한쪽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국가대표였다.

배에서 내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옆자리에 앉은 파키스탄 청년은 내 여행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많은 걸 물었다. 파키스탄에서 북한의 인지도와 인기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명박이란 이름은 몰라도 김정일과 김정은은 모두 알고 있었다.

뉴훈자(알리아바드)에 내려 올드훈자(카리마바드)로 가는 스즈키를 타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내게 북한 이야기를 한참 묻던 친구가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해주었다. 스즈키를 타고 태국의 카오산, 이집트의 다합과 더불어 배낭여행자들의 세계 3대 '블랙홀'로 손꼽히는 훈자에 도착했다.

"와우!"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올드훈자인(Old Hunza Inn)'에 여장을 풀었다. 올드훈자인까지는 스즈키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이 안내해주었다. 그에게 "돈이 필요해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마을을 방문한 외국인에 대한 친절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낯선 여행자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진실하고, 친절했다. 돈을 요구하는 법도 없었다. 그들의 해맑은 미소는 매번 마음의 문을 쉽게 열게 했다. 난 점점 삶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 매료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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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에 둘러싸인 훈자는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특히 이곳은 세계 3대 장수 마을로, 90세 이상의 건강한 노령 인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 훈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일본인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훈자에 가기 위해서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비행기로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750km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한국과 중국 우루무치를 연결하는 직항편을 이용한 뒤 카스, 타슈쿠르간을 거쳐 국경을 넘는 방법이다. 만약 이슬라마바드로 입국했다면, 훈자까지 2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훈자까지의 여정은 길고 험하다. 훈자 계곡의 중심은 발티드성이 자리한 카리마바드로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 바로 여기다. 카리마바드는 해발고도 2438m에 자리하고 있는데 봄이면 살구·복숭아·자두·사과·앵두나무가 피어오르고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사과와 노랗게 물든 포플러 나무가 수를 놓는다.

훈자에서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울타르메도우, 이글네스트, 호퍼 등이 일반적이다. 특히 마을 사이로 미로처럼 형성된 수로를 따라 걷는 하이킹은 훈자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여행이 된다. 조금 더 난이도 있는 트레킹을 원한다면 7000m대 고봉인 라카포시 베이스캠프에 도전할 수 있다. 훈자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4월부터 9월이다. 많은 여행자가 살구꽃이 피는 4월을 최고로 꼽기도 한다.

아! 훈자에는 ATM이 없다. 돈을 찾기 위해서는 길기트까지 가야 한다. 훈자에선 현찰이 있어야 한다.

태그:#세계일주, #파키스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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