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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 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다소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말

먼저 한국생활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로 했다.

인천공항에는 작은 애가 마중을 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큰애는 동생과 같이 서울에서 하루 놀다 오겠다는 것이다. 서울의 좋은(?) PC방 환경에서 오랜만에 게임도 한판하고, 한국음식도 먹고, 콘서트도 보고 싶고…. 줄줄이 이어지는 큰애의 간절한 바람에 나는 한숨이 나왔다. 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큰애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학교는 휴학이 아니라 자퇴를 했다. 휴학하려면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재입학할 때에는 휴학이나 자퇴나 똑 같은 절차를 거친다는 말을, 미심쩍기는 했지만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큰애 상태가 급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료도 받기 전에 하루 놀다 오겠다니.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재입학 허가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5개월여의 치료기간 동안 나와 큰애가 씨름하는 모습이 벌써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급박하지만 큰애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태도와 속마음은 다른 것일까?

-아토피 징후라고는 전혀 없었다.
▲ 큰애와 작은애 어렸을 때 모습 -아토피 징후라고는 전혀 없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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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답답한 마음에 큰애가 아토피가 없던 시절, 비만이 심하지 않던 시절에 찍은 사진들을 우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화방에 올려놨다. 사진을 보며, 현재와 비교해보고 좀 각성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위의 사진은 그중의 하나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귀여웠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아무튼 한국에 들어오니까 그 동안 아프던 것이 견딜만해졌고, 그래서 다른 생각이 났을 것이다. 약을 먹으면 곧 나아지겠지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많이 아프다가 막상 병원에 가면 통증이 덜 해졌던 경험이 있다. 결국 우리는 대전에서 기다리고, 큰애는 서울에서 동생하고 놀다가 막차를 타고 오는 것으로 최종 타협을 봤다.

'그동안 한국생활, 한국에서 누렸던 재미있었던 것들이 많이 그리웠겠지. 어쩌면 호주에서 보낸 3년이 큰애 기억 속의 한국을 지상낙원처럼 미화시켜 주었는지도 몰라. 힘든 치료에 들어가기에 앞서, 김밥, 치킨 양껏 먹고 콘서트도 보고 하면서 한국생활에 대한 갈증을 먼저 해소시켜 주는 것도 괜찮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는 대전 유성에 있는 콘도에 방을 잡았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보다는 밖에서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려움을 어떻게 참았을까?

큰애는 예상보다 일찍 대전터미널에 나타났다. 동생하고 놀러 가기 전에 피부과 병원에 들렀는데 거기에서 자기들은 치료를 못하니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지 서울에서 오래 놀지 않고 온 것이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터미널 근처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와 함께 걸어 오던 큰애의 처참한 모습을, 그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포옹을 했을 때 맡았던 지독한 연고 냄새를. 그리고 콘도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 났을 때 큰애가 누웠던 자리에 눈처럼 떨어져 쌓여 있던 피부조각들. 무엇보다도 아토피가 주는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안해하던 표정을.

도대체 내 아이가 왜 저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앞길이 망막했다. 대전에서 밤을 보낸 우리는 일단 순천의 성가를로 병원으로 갔다. 종합병원은 아니지만 순천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사는 큰애를 보자마자 자기는 치료를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이곳 저곳 전화를 해서 그중에서 예약이 가능했던 전남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까지 가는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큰애는 말이 없었고, 차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내가 자동차를 주차하고 오는 동안 아내가 병원에 접수를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서 만난 대학병원 의사도 자기는 치료를 못하니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또 한참을 기다려서 큰애는 비로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큰애에게 강력한 호르몬제를 처방했다고 한다. 절대 오래 먹어서는 안 되는.

나중에 당시의 심경이 어땠는지 큰애에게 물어 보았다.

"아빠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토피가 그렇게 심한데 어떻게 견뎠어? 가려움이란 가장 참기 힘든 고통 중에 하나인데 어떻게 참은 거야? 아빠라면 미쳐 버릴 것 같은데. 인내력은 정말 최고인 것 같다. 그 정도 참을성이면 뭐든지 하겠다."

"그 전에는 그 만큼 심하지 않았어. 언제부터인가 늘 아토피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고통에 적응한 것인지 무감각해진 것인지 나도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참았나 싶긴 하네. 아무튼 심하긴 했는데 그때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귀국을 결심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이젠 도저히 안되겠다. 너무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었어. 그래서 그냥 한국에 가서 치료받고 와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결심한 거야."

"공항에 내렸을 때는 기분이 어땠어?

"이제 해방이다. 이런 느낌이었어. 그냥 한국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

내가 큰애에게 가하는 압박이 그렇게 과중한 것이었나? 마냥 표류하고 있는데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뭔가 사회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생활은 스스로 꾸려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지 않은가. 지금 내 사고의 범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인가?  혼란이 왔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은 복잡하고, 앞날은 불확실 했지만 우리 생활은 갑자기 활기를 보이게 됐다. 아이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고즈넉했던 아내와 나의 생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조용한 집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토피 치료에 필요한 교과서적인 생활을 압박하는 우리 부부와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보상 받으려는 큰애와의 씨름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아토피 치료에 필수적인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를 위해 일찍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게 하고, 식사를 건강식으로 챙기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최대한 운동을 하게 하려는 우리 부부에 대해 큰애는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을 해 왔다.

잠자는 시간을 처음에는 준수하다가 5분 10분 점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늦춰갔다. 아침은 집에서 먹지만 점심은 도서관을 핑계로 밖에 나간 후 호주에서 먹고 싶었던 것을 찾아 먹었다. 운동도 아주 안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흡족할 정도로 하는 것은 아니어서 항상 잔소리가 큰애 등 뒤를 따라 다녔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에서 모처럼 집안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예전에 아이를 키울 때의 즐거움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아이와 같이 있는 것이 그냥 좋았다. 부모는 자식에게 뭘 해줄 수 있을 때 행복한 모양이다.

? 위에 그릭 요거트를 얹었다.
▲ 큰애가 만든 퓨레 소스 ? 위에 그릭 요거트를 얹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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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과정 4단계 '소스 만들기']

윌리엄 앵글리스 1학기 요리과정에 대한 소개를 계속하겠다. 1단계는 '장비사용법'이고, 2단계는 액체를 매개로 한 'Wet Method', 3단계는 요리재료에 직접 열을 가하는 "Dry Method"이다. 4단계는 육수, 소스를 준비하고 수프를 끓이는 방법을 배운다.

1일차 : 각종 소스 및 유제화된 소스 만들기(Emulsified & Miscellaneous Sauces)

유제화(Emulsify)란 식초·오일과 같이 극성이 달라서 서로 섞이지 않는 재료를 유화제를 이용하여 섞어주는 과정이다. 샐러드 드레싱과 같은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요리법이다. 걸쭉한 액체로 된 소스는 음식물에서 재료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첫째날에는 계란 노른자를 유화제로 사용한 마요네즈를 비롯해 5개의 소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2일차: 육수 만들기(Stocks)

서양요리에서 육수는 수프나 소스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기본재료다. 우리 가정에서는 멸치, 다시마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냉면 육수는 닭 뼈를 사용해서 해서 만든다고 들었다. 여기에서도 닭 뼈, 닭 발을 사용한다. 갈색, 하얀색 두 종류의 육수를 기본으로 졸이는 정도와 추가되는 야채의 종류에 따라 4가지 다른 육수 만들기 실습이 이뤄진다. 

차이점은 우리는 재료를 그냥 끓이는데 여기에서는 오븐에서 바싹 구워서 물에 넣어 끓인다는 것이다. 다른 실습과 달리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서 동료 학생들과 잡담도 나누고 여유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3일차: 수프 만들기(Soups)

수프는 에피타이저로 사용되는데 세 가지 종류를 만든다. 먼저 미네스트론(Minestrone)은 고기, 생선, 야채 등을 넣어서 걸쭉하게 끓인 것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식사대용 수프이다. 콘소메(Consomme)는 고기 등 재료를 갈고, 양파는 볶아서 약한 불에 2시간 정도 끓인 맑은 수프이다. 퓨레(Puree)는 팬에 기름을 넉넉히 뿌린 후 야채, 과일을 기름이 먹히도록 살짝 볶아서 육수에 푹 끓인다. 흐물흐물해진 야채에 버터를 넣어서 잘 섞은 후 채로 거른다.

4일차: 파생 소스 만들기(Derivative Sauces)

계란 노른자위, 크림 등을 육수로 끓인 베샤멜 소스 등 6가지 소스를 만든다. '루'는 소스를 되직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는데, 밀가루와 버터를 약한 불에 볶아서 만든다. 피시 블루테 소스는 치킨 육수에 '루'를 풀어서 졸인 것이다. 소스 베르시는 블루테에서 파생된 것으로 크림을 추가하여 더욱 크리미 하게 만든 소스이다.

큰애의 커리큘럼을 보면서 요리도 해볼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늦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이런 체계적인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나도 요리사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태그:#멜버른, #쉐프,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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