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 영화 <멜리스>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활용하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 리플리 증후군 영화 <멜리스>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활용하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진짜 정체를 숨기고 허상에 깊이 빠져든 사람의 사연에서 '리플리 증후군'이란 단어를 만나곤 한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 사건으로 친숙한 리플리 증후군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 나오는 '톰 리플리'란 인물에서 유래한 용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던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말과 그에 발맞춘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미하는 리플리 증후군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태양은 가득히>(1960)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의 흥행 이후에 정신병리학자들은 리플리 증후군을 연구 대상으로 주목했고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되면서 심리학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해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에 시달리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영화 <멜리스>는 살인 사건 속에 흐르던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삼았다. <멜리스>는 2004년에 발생한, 친구의 행복한 가정에 질투심을 느낀 여인이 동창생과 세 살과 한 살 먹은 친구의 어린아이까지 살해한 일명 '거여동 여고 동창 살인사건'이라 부르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용운 감독은 "내 주변 사람 중에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자가 있다면 나는 내 아내와 자식을 지킬 수 있을까?"란 생각에서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속에 존재하던 리플리 증후군이란 심리 상태를 확대경을 통하여 관찰하길 시도한다.

행복한 은정의 가정 가인은 은정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만, 대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다.

▲ 행복한 은정의 가정 가인은 은정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만, 대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다.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따뜻한 남편 우진(양명헌 분)과 귀여운 딸 서아(김하유 분)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직장까지 가진 은정(임성언 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가인(홍수아 분)의 집착을 보여주는 <멜리스>의 전개엔 관객이 이해하기 힘든 의문 부호가 잔뜩 찍혀 있다. 은정과 다시 만날 때까지 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가인을 돕는 조력자는 정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자신을 옭아매는 김 사장(조한선 분)에게서 가인은 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명품을 사들이는 데 쓰는 돈 때문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하는 상황인가? 영화는 어떤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제목인 멜리스(malice)는 악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김용운 감독은 멜리스란 단어가 주는 착한 여자 이름 같은 느낌과 그와 상반된 단어의 의미가 야누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친밀하게 다가왔던 친구가 도리어 자신의 가정을 빼앗으려 한다는 숨겨둔 '악의'를 다룬 영화 내용과 <멜리스>란 제목은 제법 어울린다. 문제는 영화의 바깥에서 감독이 부연 설명을 했기에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보는 이가 알아서 이야기를 상상해야 하는 <멜리스>는 '묻지마 전개'의 칼날을 마구 휘두른다.

과거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국 영화 장르 중의 하나가 공포 영화였다. 그러나 <여고괴담 5: 동반자살>(2009)이 혹평 세례를 맞으며 시리즈의 간판을 내린 후에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2010년대에 들어 <더 웹툰 : 예고살인> 처럼 소재의 영역을 넓힌 작품도 있었지만, 대다수 한국 공포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는 현실이다. 당연히 작품 숫자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매년 한두 편씩 등장하는, 수준 이하를 자랑하는 공포 영화는 장르의 숨통을 더욱 조이는 주범이다. 2010년 <폐가>로 시작한 엉망진창의 계보는 2011년 <손님 1 첫번째 이야기>, 2012년 <노크>와 <수목장>, 2013년 <꼭두각시>와 <닥터>, 2014년 <내비게이션>과 <좀비스쿨>, 2015년 <검은 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6년을 장식한 이름은 <멜리스>다. 한국 공포 영화의 암흑기는 언제쯤에나 종지부를 찍는 걸까? 매년 이런 수준의 영화가 꼭 나온다는 사실이 진정 무서울 따름이다.

<멜리스> 포스터 영화 <멜리스>는 한국 공포영화 흑역사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 될 전망이다.

▲ <멜리스> 포스터 영화 <멜리스>는 한국 공포영화 흑역사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 될 전망이다.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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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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