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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움켜진 손아귀를 펴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있다. 새로 손에 쥔 그 무엇은, 그동안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었고, 놓기 전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였다. 요단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사표를 만지작거렸다.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버킷리스트 중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던 계획을 전격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평범하게 살던 어느 직장인의 세계 일주는 그렇게 갑작스러우면서 갑작스럽지 않게 시작됐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 기자 말

[이야기 1] 중국 기차 여행, 청두에서 시안까지

리탕을 거쳐 캉딩~청두로 이어지는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도 이 정도로 힘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청두에서 며칠 여독을 풀고 기차를 타고 시안을 거쳐 우루무치로 가야 했다. 여기서 다시 카스를 거쳐 타슈쿠르간까지 가야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운남성을 시작으로 동티베트를 거쳐 사천성, 산시성을 지나 신장의 끝까지 이어지는 장도였다.

이동에만 상당한 시간과 체력이 소모되는 루트였지만 세계일주 여행자들이 최고 비경으로 꼽는 카라코람하이웨이(KKH)를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중국 카스에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연결된 도로로, 그림 같은 풍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면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된 '훈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가 큰 곳 중 하나였다. 훈자란 두 글자는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을 동시에 주사하듯 날 기쁨과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청두에서 손짓 발짓에 이어 그림까지 그려가며 200원 남짓한 시안행 기차표를 손에 넣었다. 열차 예매는 날짜·시간·좌석형태·침대위치 등 묻는 게 많았다. 나 같은 벙어리 여행자에겐 고난도 과제였다.

실크로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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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개의 침대가 3층으로 마주 보고 있는 침대칸 표를 끊었다. 좀 더 비싼 표는 4인실 표였지만 6인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기차를 탄 후에 단박에 4인실 표를 사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6인실 침대칸은 아래 침대를 제외하고는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구조였다. 4인실은 네 자리 모두 허리가 펴진다. 확실히 공간이 넓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6인실 승객들은 잠들기 전까지 아래 칸을 의자처럼 사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자리는 중간이었다.

아래 칸에는 중국인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안고 탔다. 부부는 아이만큼이나 애지중지하는 엄청난 양의 부식거리를 들고 열차에 올랐다. 중국 사람들의 먹성은 볼 때마다 놀랍다. 한국 식당에서 제일 돈이 안 되는 손님이 한국 사람들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주문도 통이 크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다 먹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요리를 시킨다.

이번 기차여행에서도 중국인의 먹성은 여실히 드러났다. 다들 비닐봉지 한가득 간식거리를 들고 열차에 올랐다. 나도 준비를 했지만, 이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열차에서는 무제한으로 온수가 제공됐다. 차와 컵라면을 먹는 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었다.

중국인의 간식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닭발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닭발 사랑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슈퍼에 가면 포장 닭발 종류만도 엄청나다. 아래 칸 남자는 닭발의 무시무시한 발톱을 이빨로 쏙쏙 뽑아냈다. 그리고 '우지직' 소리를 내며 먹성 좋게 닭발을 씹어 넘겼다. 그 옆에서 여자는 온종일 아이를 토닥였다.

바나나 2개로 버티던 내 인내력이 닭발 뜯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식당칸으로 향했다. 당연히 영어는 안 될 게 뻔했다. "차이딴!" 당당히 메뉴를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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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메뉴에 적힌 글자는 몽땅 한자였다. 그간의 눈썰미로 눈에 익은 요리가 있었지만 90%는 알 수 없는 외계어였다. 다행히 안절부절못하는 내 마음을 눈치 챈 한 중국인이 유창한 영어로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배낭여행자에게 뭐 특별한 게 필요하겠는가. 버스에 팔걸이 하나만 있어도 그날은 정말 편안한 하루다. 헤매지 않고 숙소를 바로 찾으면 수지맞은 날이고 맥주가 1원만 싸도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생각 없이 시킨 메뉴가 입맛을 사로잡으면 바로 단골이 된다. 관광지 입장료가 몇 년 전과 같으면 저금을 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여행자는 그렇게 소박한 사람들이다. 큰 걸 바란 적이 없다. 연봉을 올려주지 않아도 되고, 승진을 시켜주지 않아도 된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닐 필요도 없다. 그냥 메뉴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중국인에게 무한 감사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동물일 뿐이다. 여행이 준 변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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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었다. 중국은 넓었다. 멍하니 창밖의 단조로운 풍경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말없이 땅콩을 내밀었다. "씨에 씨에." 날름 손바닥을 오므려 땅콩을 받아들었다.

물에 삶은 짭짤한 중국 땅콩은 영락없는 맥주 안주였다. 지나가던 카트를 세워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삶은 달걀을 대신해 나름 괜찮은 조합이었다. 맥주를 한잔하고 있으니 도시락 카트가 지나갔다.

검지 하나를 펼쳐 보이는 내게 승무원은 10원짜리 한 장과 5원짜리 하나를 내밀었다. 가격이 15원이란 이야기였다. 보통 가격을 알아듣지 못하면 큰돈을 내곤 했는데 센스있는 승무원 덕에 쉽게 셈을 치렀다. 종일 간식을 입에 달고 있던 사람들도 예외 없이 도시락을 주문했다. 중국 사람들의 젓가락질은 빠르다 못해 초고속으로 느껴진다. DVD 32배속 빨리 감기를 보는 듯하다. 거의 막바지에는 밥그릇까지 씹어 먹을 기세다. 무서운 속도다.

중국 쌀은 찰기가 없어 빠른 손놀림으로 젓가락질을 해야 먹기가 편하다. 난 습관대로 천천히 도시락을 즐겼다. 먹을 만큼 먹고 고개를 들었다. 상당수 시선이 내 '엘레강스'한 모습에 꽂혀 있었다. 한 아저씨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도시락을 다 먹곤 연결 칸으로 갔다. 우리나라 열차에선 종적을 감춘 흡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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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인기척에 선잠을 깼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안에 다 온 모양이었다. 청두를 출발한 지 17시간 만이었다. 일정 속도로 흘러가던 창밖 풍경이 점점 속도를 잃어갔다.

KTX를 타면서 낭만을 느껴 본 적이 있던가? 때론 느려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여행은 한없이 느린 걸음을 허락할 만큼 넉넉하다. 달리는 기차보다 멈춰선 기차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새벽이었다.

여행정보

​중국의 기차여행은 버스여행과 또 다른 재미와 어려움이 있다. 일단 중국 기차는 우리나라보다 종류가 많다. '동처'는 우리나라의 KTX 급이며, '까오수'는 일반 고속열차, '부콰이'는 보통열차를 말한다. 중국에서 열차 티켓을 구매하려면 인터넷이나 여행사를 이용하든지 직접 역사를 찾아야 한다. 중요한 건 세 방법 다 여권이 필요하다는 점. 암표를 막기 위한 조치로 예매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어가 서툴다면 목적지와 날짜 그리고 원하는 좌석 등을 메모지에 적어 매표원에게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법이다. 침대 기차의 경우 잉워(딱딱한 6인실 침대)와 란워(푹신푹신한 4인실 침대)로 나뉘는데 잉워의 경우 아래칸, 중간칸, 위칸으로 다시 나뉘고 자리마다 가격이 다르다. 제일 비싼 자리는 아래 칸이다. 란워의 경우 네 자리 모두 허리를 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고 편하다.


[이야기 2] 공포스러운 시안의 새벽

차분한 새벽은 허락되지 않았다. 오전 5시 시안역 앞은 호객꾼으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난 그 엄청난 인파 앞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다. 한국인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게 아니었다. 중국인의 기세는 겁이 날 정도였다. 알면 알수록 무서워지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했다.

호객꾼들을 뒤로하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7 sages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싱글룸이 유스호스텔 회원가로 110원이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독방을 잡았다. 조용히 쉬다 우루무치행 열차에 오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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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시안에선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병마용과 화산을 가보려고 했으나 무지막지한 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를 보고선 깔끔히 포기했다. 화산은 김용의 무협지에 등장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던 중 만둣국과 흡사한 것을 발견했다. 그림을 찬찬히 보니 영락없는 만둣국이었다. 햄버거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이번에는 제발 성공하길.'

중국식 햄버거와 만둣국을 하나씩 주문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빵 사이에 다진 돼지고기와 야채가 들어가 있는 게 식욕을 돋우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한입 깨문 햄버거는 기름진 돼지고기 특유의 식감과 간장 소스 맛이 빵의 고소함과 더해지면서 늘어져 있던 혀를 춤추게 했다. 레시피를 알 수 없는 패티로 무장한 패스트푸드점 햄버거보다 훨씬 담백하면서 깔끔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빵가루 묻은 입가를 훔치며 턱관절을 사정없이 움직이는 날 보며 만둣국을 내밀었다. 뽀얀 국물 위에 마치 돛단배처럼 둥둥 떠 있는 만두는 날 또 한 번 격정으로 몰아넣었다. '후루룩~' 출렁이는 만두를 진정시켜 숟가락 위에 안착시키고 뜨끈한 국물과 함께 한입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딱 그 맛이 아닌가!

"유레카!"

호들갑스럽게 국물을 들이켜는 날 주인아주머니는 '므훗'하게 바라봤다. 만둣국 4원, 햄버거 4원 도합 '8원의 행복'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 집을 찾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만둣국처럼 따뜻한 눈인사로 날 반겨주었다. 티베트와 사천성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 산시성의 음식은 대부분 내
입맛과 환상궁합이었다.

예매해둔 우루무치행 기차를 기다리며 시안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만둣국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운 뒤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오후 시간이어서 그런지 숙소 주변이 인산인해였다. 숙소 앞 사거리는 차량으로 마비돼 있었고 공안들이 도로 주변에 쫙 깔려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 줄 알았지만, 막상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헐~' 중국인은 자녀를 황태자로 키운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우라질 놈!"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 중국 남자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술을 마셨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아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악에 받친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잠시 뒤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궁금증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커튼 사이로 빼꼼 내다보니 웃통을 벗은 젊은 남자가 한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마른 장작 패듯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잠이 번쩍 깼다. 맞고 있는 여자와 같은 방을 쓰던 한 여성이 이 광경을 보고 다급히 말리러 나왔으나 남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남자의 주먹은 어디를 때리겠다는 목표도 없이 마구잡이로 여자의 몸을 가격했다. 그럴수록 여자는 더욱 발악했다. 보다 못한 서양 할머니가 이들을 말리고 나섰다.

"쏘리."

남자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여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 직원이 도착했지만 이미 방문은 잠긴 상태였다. 나는 커튼 사이로 도둑 고양이처럼 잔뜩 웅크린 채 맞은편 창문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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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대기 치는 소리에 아침잠을 깨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10분 정도 치외법권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두르던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내 방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설마...' 순간 이성을 상실한 주인공이 또 다른 범행대상을 찾아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소심한 생각에 잠가둔 방문을 재차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남자는 내 방을 스쳐지나가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숙소였던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 뒤 남자는 방에서 캐리어 하나를 끌고 나와 여자의 방문 앞에 짐들을 쏟아 부었다. 방안에선 여자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새어나왔다.

'저런 진상 오랜만이네.'

상황을 유추해 보면 이랬다. 사랑에 눈이 먼 커플이 시안 여행을 계획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의 눈치 없는 친구가 따라붙은 게 아닌가. 암튼 여기까지는 남자도 이해했을 거다. 커플끼리 한 방을 썼으니 말이다. 그러다 사건이 있던 전날 무슨 이유에선지 대판 싸움을 하고 화가 난 여자 친구는 친구 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일단 짐을 남자 친구 방에 남겨둔 걸 보면 다시 돌아갈 맘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성격 급한 남자는 여자 친구가 돌아오지 않자 독한 고량주를 밤새 마시고 새벽에 화를 못 참고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대략적인 밑그림이 그려지는 사이즈다. 아니면 말고.

잠시 뒤 공안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활극의 주인공은 조용히 공안을 따라나섰다. 웃통을 벗은 채 공안에 끌려가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전날 낮에 본 중국 황태자들의 현실이 떠올랐다. 독재와 독자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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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13개 왕조가 수도 혹은 근거지로 삼은 유서 깊은 도시다. 1200년 동안 중국의 정치·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또 고대에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하다. 시안은 과거의 영화를 반영하듯 병마용을 비롯한 문화유적이 풍부하며 시내 곳곳에 고대 건축물과 유적들이 분포해 있어 한눈에도 고도라는 걸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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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함은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진시황릉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며 현재까지 3개의 갱, 실물 크기의 700여 도용,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 필의 말, 10만여 개의 병기가 발굴됐다. 도용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스타일을 갖고 있어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안을 방문했다면 양귀비가 살았던 화청지도 가볼 만하다. 양귀비와 현종이 함께 목욕을 즐겼던 목욕탕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만약 트레킹을 좋아한다면 화산을 추천한다. 화산은 김용 무협지에 등장하는 화산파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이야기 3] 우루무치를 거쳐 카스로... 침대버스의 공포

두 번째 열차여행은 시안을 떠난 지 무려 30시간 만에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루무치에 와서 끝이 났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시작점은 카스다. 카스는 가장 신장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카스를 보지 않고는 신장을 본 게 아니다'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위구르 족의 전통과 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다. 또 카스는 파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가 큰 곳이었다.

우루무치에서 카스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거나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카스로 떠나는 침대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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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침대버스의 좌석은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버스의 진동이 등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승차감이 달랐을 뿐이다. 냄새가 나지 않는 시트에 만족해야 했다. 승객들 대부분은 위구르 족이었다. 한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버스는 4시간 만에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숯가마 중탕 정도의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열기와 습기를 한껏 머금은 모래바람은 덤이었다. 모자까지 눌러쓰니 건식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다음번 휴식까지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가격은 1원이었다. 화장실은 매점 건물 뒤 황야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샹그릴라에서 야딩으로 가면서 경험한 최악의 화장실이 떠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안의 암모니아 냄새는 화생방훈련을 방불케 했다. 라이터를 켜면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 먼저 들어선 위구르 아저씨들은 문 없는 화장실에서 열심히 볼일을 보고 있었다. 적나라한 모습이다 못해 원초적이었다. 샤론 스톤의 <원초적 본능>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이건 차마 똑바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중국의 화장실은 내가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 중 하나였다.

마침 가운데 자리가 비었다. 지퍼를 내리고 참았던 방광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옆 사로에서 볼일을 보던 험상 궂은 위구르 아저씨가 날 올려보며 인상을 썼다. 아저씨는 분명 '오줌이 튄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의 표정을 보곤 자연스레 나오던 오줌이 멈췄다. 자리를 제일 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곤 잘린 오줌을 마저 방출시켰다. '볼일 한 번 보는데도 이리 기가 죽어야 하나.'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매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버스는 그 뒤로 4시간을 더 달려 모래바람이 거세게 부는 이름 모를 마을에 정차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 이동에서는 '절대 빈속'을 유지해야 마음이 편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괄약근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저주받은 장을 가진 나로서는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했다. 버스 기사에게 달려가 아랫배를 움켜잡고 차를 세워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것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으로 손짓 발짓 써가 며 차를 세우는 모습이란... 거기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들판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굶는 편이 여러모로 편했다. 마지노선으로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곤 준비한 맨 빵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버스는 자정쯤 다시 한 도시에 정차한 뒤 다음날 오전 5시쯤 숲이 있는 길가에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승객들은 차가 서기 무섭게 도망치듯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 사내는 대나무 정도 굵기의 나무를 위장막 삼아 급히 바지를 내렸다. 흰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다시 머릿속에 금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버스는 그 뒤로 4시간 정도를 더 달려 한 식당 앞에 섰다. 버스 기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어가 뭘 좀 먹으라고 권했다. 화장실을 찾았다. 사람들의 동선을 보니 다들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자들은 골목 깊이, 여자들은 골목 중간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여자 화장실은 골목 중간이고, 남자 화장실은 골목 끝에 있는 듯했다. 사람들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그... 런... 데... 여자들이 나오던 골목 왼쪽 공간은...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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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난 뒷걸음질쳤다. 귀신을 본 것처럼 겁에 질려 도망치듯 골목을 뛰쳐나왔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방금 본 오싹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뒤흔들어 댔다.

움푹 들어가 있는 골목 안 왼쪽 공간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말 그대로 공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난 덩어리(?)를 매단 위구르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첫눈에 반한 짝사랑을 만난 것처럼 눈앞에선 번개가 번쩍했다.

'오 맙소사,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절 어디다 쓰시려고... 으흐...'

그런 골목을 남녀가 뒤섞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니고 있었던 거다. 본 척 못 본 척하면서 말이다. 화장실에 가야 했지만 두려웠다. 여자들이 모두 나온 걸 확인하고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남자들이 나온 곳도 화장실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이 스쳐 지나간 자리는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런 된장할!'

버스에 들어가 마른침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곤 방광 안에서 오줌이 증발하길 기도했다. 우루무치에서 출발한 버스는 꼬박 25시간 만에 카스에 도착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먹은 거라곤 빵 2조각, 물 한 병, 아이스티 한 병, 초코바 한 개가 전부였다. 거울을 봤다. 폭탄주와 기름진 안주로 인해 사라져 버린 턱 선이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여행 정보

​신장의 성도는 우루무치이지만 대부분의 위구르인은 카스를 정신적 수도로 여긴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명실상부한 독립국(아주 잠깐이긴 했지만)이었고 카스는 바로 이 나라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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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는 오아시스 도시로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동쪽으로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으로 쿤룬산과 맞닿아 있다. 또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와 국경을 이룬다. 위구르족이 약 90%이며, 그밖에 한족, 후이족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있다.

이 일대는 여행자들에게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북유럽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과는 좀 다르다. 중국은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베이징 타임'이란 단일 시간대를 쓴다.

문제는 베이징과 카스의 거리가 무려 3000km가 넘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과 파키스탄의 시차는 2시간 30분이다. 이 때문에 카스의 일몰 시각이 오후 10시를 넘기도 한다. 카스는 파키스탄 시간대를 따르는 것이 실제로는 더 정확하다. 카스에서는 버스·기차 티켓을 구매할 때 베이징 타임으로 표기된 것인지 확인해야 착오가 없다.


태그:#세계일주,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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