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FC서울이 장신 수비수 심우연(31)을 영입했다. 서울은 심우연의 첫 프로 데뷔팀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소속으로 활약했던 심우연은 7년 만에 친정팀으로 전격 컴백했다.

심우연은 196cm, 88kg의 건장한 체구를 앞세워 탁월한 제공권과 몸싸움 능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동북고과 건국대를 졸업하고 K리그에서는 통산 124경기에 출전하여 8골 2도움을 기록했다. 초창기엔 공격수로 활약했고 2005년 네덜란드 U-20 월드컵 청소년 국가대표, 2008베이징 올림픽 예선 U-23대표 등을 거치며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꾸준히 발탁됐다.

하지만 정작 프로에서의 경력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쟁쟁한 공격수들이 넘쳐나던 서울에서 심우연의 자리는 없었고 결국 2010년 전북으로 트레이드 되기에 이른다. 전북에서도 이동국이라는 걸출한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건재했기에 심우연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최강희 전북 감독은 시즌 중반 심우연을 전격적으로 수비수에 기용하는 실험을 시도했고 이것이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전북의 중앙 수비라인이 줄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체격 조건이 좋고 고교 시절 이미 수비수 경험이 있던 심우연에게 중앙 수비를 맡겼는데, 의외의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심우연은 전문 센터백으로 안착하며 한동안 전북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당시 전북 시절의 심우연은 친정팀 서울과의 경기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2010년 3월 14일 K리그 3라운드 전북-서울전은 심우연이 트레이드 직후 친정팀과 처음으로 만난 경기였다. 후반 공격수로 교체 투입된 심우연은 후반 42분 친정팀에 비수를 꽃는 결승골까지 넣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심우연은 득점 직후 서울측 서포터석 가까이 다가가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펼쳐 권총 모양으로 자신의 머리를 갖다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기 후 이 세리머니의 의미에 대하여 "이제 FC 서울의 심우연은 죽었다는 뜻"이라며 도발적인 소감을 밝혔다.

서울 시절 자신에게 제대로 기회를 주지않고 트레이드까지 시킨 친정팀에 대한 앙금이 그대로 묻어나는데다, 마치 니체의 잠언(신은 죽었다)을 연상시키는 심오한 표현이 더해지며 심우연의 퍼포먼스는 K리그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세리머니 중 하나로 남았다.

특히 서울 팬들에게 이날 경기가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이유는 하필 그 유명한 '티아라 사태' 역시 같은 날 경기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홈팀 서울의 초청으로 축하 공연에 나섰던 걸그룹 티아라는 공교롭게도 원정팀 전북 현대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연두색 의상을 입고나와 서울 팬들을 당황시켰다. 홈팀의 초청을 받은 가수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원정팀을 응원하는 듯 주객이 전도된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들이 서는 무대가 어떤 곳인지 기본적인 이해와 준비가 부족한 연예인들과 기획사 측의 잘못으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공교롭게도 티아라의 공연이 끝난 후 경기마저 후반 심우연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패하면서 서울팬들로서는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결국 티아라와 소속사는 경기 후 서울 측에 공식사과까지 해야했다.

이 사건은  K리그 팬들에게는 '티아라의 저주'로 불리우며 프로축구 사상 가장 황당하면서도 웃긴 해프닝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어쩌면 훗날 왕따 사건 등으로 '국민 욕받이'로 등극하게 될 티아라의 미래를 알려준 복선으로도 회자된다.

결과적으로는 티아라가 경기 후 더 화제가 되고 집중적으로 욕을 먹으면서 오히려 심우연의 결승골과 권총 세리머니가 다소 묻힌 감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팬들에게는 티아라와 심우연이 똑같이 금지어가 되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생은 아이러니하게 돌고돈다. 그토록 과격한 세리머니를 펼쳐가며 서울과의 인연을 정리했던 심우연이 7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가는 운명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전북 시절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수비수도 될 수 있다"고 극찬하며 기대를 걸었던 심우연이었지만, 정작 최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자리를 비웠던 2013년 전북에서 정인환-임유환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성남으로 이적하게 됐다. 하지만 성남에서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3년간 리그에서 17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지난 시즌 계약 만료와 함께 새로운 팀을 찾던 심우연은 친정팀 서울로 복귀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3년 전 전북에서 사실상 심우연을 밀어냈던 경쟁자 정인환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 유니폼을 입게되며 한솥밥을 먹게 된 것도 기묘한 인연이다.

심우연의 복귀 소식에 당연히 서울 팬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과거 심우연의 세리머니도 다시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심니체(서울의 심우연은 죽었다)가 어쩌다 7년 만에 심예수(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로 부활했다"는 뼈있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3년간 경기에도 거의 나서지 못했고 전성기가 지난 수비수를 왜 영입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려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서울은 올 시즌 K리그는 물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도전한다. 데얀과 아드리아노, 윤주태 등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공격진을 구축했지만 상대적으로 수비 자원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어서 경험 많은 심우연과 정인환까지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심우연은 일단 백업 자원을 분류되지만 친정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팬들과도 과거의 앙금을 깔끔히 털고 갈 필요가 있다. 다시 서울 유니폼을 입은 심우연과 서울 팬들이 그라운드에서 재회할 때 양측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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