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KBS 2TV에서 방송된 <본분 금메달>, 변종 몰카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였다.

10일 KBS 2TV에서 방송된 <본분 금메달>, 변종 몰카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였다. ⓒ KBS


설 연휴의 마지막이었던 지난 10일, 공영방송 KBS 2TV에 <본분 금메달>(연출 최승희)이 방송됐다. 애초 제목은 <본분 올림픽>이었으나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조직위원회의 권고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날 방송에는 하니, 솔지, 유주, 리지, 혜연, 나연, 경리, NC.A, 다현, 박보람, 정연, 나라, 지민, 예지, 차오루, 허영지 등 여러 그룹의 여자아이돌이 고루 출연했다. 상식테스트, 섹시 댄스 테스트, 개인기 테스트, 집중력 테스트의 4가지 종목이 명목상 치러지는 대결 과제였다. 각 종목에서 금·은·동을 가리고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아이돌에게 한우세트가 주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각기 다른 '무허가 테스트'라는 이름의 몰래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부터 낌새가 이상했던 <본분 금메달>

 '본분 금메달'에서 트와이스 정연이 최선을 다해 매달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찡그러지는 얼굴을 최선을 다해 담는 KBS 2TV의 카메라. 수신료가 아까운 순간이다.

'본분 금메달'에서 트와이스 정연이 최선을 다해 매달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찡그러지는 얼굴을 최선을 다해 담는 KBS 2TV의 카메라. 수신료가 아까운 순간이다. ⓒ KBS


결과적으로 <본분 금메달>은 국내 정상 여자 아이돌들을 데리고 찍은 '변종 몰래카메라'에 불과했다. 그것도 상당히 불쾌한 종류의 몰래카메라였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낌새가 수상했다. 여자 아이돌들에게 철봉 오래 매달리기를 시켰다. 다들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매달렸지만, 제작진이 원한 것은 여자 아이돌들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여자 아이돌들이 가져야 할 본분이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촬영이었다.

 바퀴벌레 모형이 던져지자 기겁하는 하니. 이런 반응이 재미있다며 전시한 KBS는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바퀴벌레 모형이 던져지자 기겁하는 하니. 이런 반응이 재미있다며 전시한 KBS는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 KBS


첫 번째 명목 종목은 상식테스트였다. 아이돌들에게 상식문제를 내면서, 바퀴벌레 모형을 던졌다. 이를 맞닥뜨렸을 때 아이돌에게 나오는 반응을 보고, 그 와중에 아이돌이 자신의 이미지 유지를 할 수 있는가를 카메라에 담았다.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아이돌의 망가진 얼굴을 보며 제작진은 즐거워했다.

무허가 테스트 '이미지 관리'의 금·은·동메달은 망가진 아이돌의 얼굴 사진을 전시하고, 그중에 가장 덜 망가진 아이돌에게 주어졌다. 헬로비너스 나라가 금메달, 나인뮤지스 경리가 은, AOA 지민이 동메달을 얻었다.

 헬로비너스 나라가 무허가 테스트 이미지 관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헬로비너스 나라가 무허가 테스트 이미지 관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KBS


나라는 금메달을 목에 걸자 눈물을 흘렸다. 방송에서 1위에 오른 것이 처음이라며 흘린 그녀의 눈물은, 수많은 걸그룹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그들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줬다. 아이돌로 성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본분 금메달>은 등수를 장사하며 이들을 괴롭혔다.

두 번째 섹시 댄스 종목은 영하 13도의 혹한 속, KBS 건물 옥상에서 3분 동안 섹시 댄스를 추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진행된 무허가 테스트는 단상 아래 설치된 몸무게 측정 센서를 통해 아이돌이 작성한 프로필의 몸무게와 일치하는가를 확인했다. '정직성 테스트'라는 이름의 포장이었다.

허영지의 실제 몸무게가 적어낸 것보다 5.3kg 정도가 더 나오자 MC들은 그녀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통해 영지의 데뷔 초 몸무게가 50kg인 것이 밝혀졌다.

 정직성 테스트라는 이름의 몸무게 공개 몰카에서 더 많이 나온 몸무게로 핀잔을 받는 영지. 그녀의 몸무게가 정말 '핀잔'을 들을 정도인가.

정직성 테스트라는 이름의 몸무게 공개 몰카에서 더 많이 나온 몸무게로 핀잔을 받는 영지. 그녀의 몸무게가 정말 '핀잔'을 들을 정도인가. ⓒ KBS


하니가 작성 몸무게와 측정 몸무게가 완전히 일치하며 금메달, 오히려 몸무게가 적게 나온 차오루가 은메달, 지민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결코 더 많이 나가지 않는 여자 연예인의 몸무게를 두고, 프로필보다 더 나간다고 하여 핀잔을 주고 창피하게 만드는 것이 대체 시청자로부터 하여금 공영방송이 어떤 재미를 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코너였다.

아이돌의 본분에 대한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

세 번째 종목으로 개인기 테스트를 가장한 리액션 테스트가 이어졌다. 상대방의 개인기를 보고 나오는 리액션을 평가하는 무허가 테스트였다.

솔지가 닮은꼴 연예인 임원희의 성대모사를, 트와이스의 다현이 전매특허 독수리 춤을, 피에스타 차오루가 바로 터져 나오는 눈물연기 등을 선보였다. 스튜디오에서 이어진 개인기로 나인뮤지스 경리와 베스티 혜연이 120Kg이 넘는 거구인 김준현을 업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무슨 개인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긴장하면서도 상대의 개인기에 리액션을 해야 한다는 게 리액션 테스트에서 원한 본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억지로 리액션을 해야 하는 이들. 특정 상황에서 리액션을 하지 않는 모습을 포착한 뒤, '성의가 없다',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며 비난하던 대중의 반응이 겹친다. 연예인으로 화면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가. 잠시도 쉴 새 없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 이들의 고달픔은 보이지 않았다.

네 번째로 집중력 평가가 진행되었다. 빈 캔 쌓기를 제작진이 방해하여 무너지게 하는 상황을 얼마만큼 아이돌들이 참고 인내하는가를 평가하는 분노 조절 테스트였다. 일부러 짜증 나는 상황을 연출한 뒤, 이를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테스트인가. 테스트를 수행하는 아이돌이나 보는 시청자나 짜증 지수가 올라가는 장면이 계속 연출됐다. 시종일관 집중하며 가장 빨리 쌓고, 화도 내지 않은 지민에게 금메달이 돌아갔다.

 짜증나는 상황을 유발해놓고, 이를 '참으라'고 강요하는 모습에서 보는 이와 하는 이 모두 짜증이 치솟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됐다.

짜증나는 상황을 유발해놓고, 이를 '참으라'고 강요하는 모습에서 보는 이와 하는 이 모두 짜증이 치솟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됐다. ⓒ KBS


모든 종목이 끝나고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차지한 AOA의 지민이 최종우승을 획득, 한우세트의 주인공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연예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들은 힘든 일정 속에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카메라 플래시에 항상 최고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몸매 유지를 위해 잠시라도 방심할 수 없도록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쫓기는 스케줄로 인한 수면부족은 당연하다. 이런 여자 아이돌의 어려움에 대해 포커스를 뒀다면, 그나마 공감을 샀을지 모른다.

여자 아이돌의 본분, 가져야 할 덕목들에 대해 평가한다는 본분 금메달은 그냥 몰래카메라의 다른 이름이었다. 여자 아이돌의 고통을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으로 포장하고, 이들의 괴로움을 낱낱이 전시하는 공영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하는 이도 보는 이도 짜증 나게 만들었던 이 변종 몰카 프로그램은 그저 불쾌감만 남겼다.

제작진은 이 파일럿 프로그램이 레귤러로 안착하여 2회가 제작되리라 생각하는 모양새이다. 부디 준비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은 여자 아이돌이 아니라 공영방송 KBS이다.

본분 금메달 EXID,AOA,트와이스 나인뮤지스,헬로비너스,피에스타 베스티,허영지, NC.A,박보람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