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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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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실시되었던 18대 대선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정치사를 정리하고 넘어간 선거였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두환, 노태우, 김종필과 같은 한국 정치사의 주요 인물들이 양대 세력으로 양분되어 치를 대격돌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김종필을 중심으로 세력을 이루었던 세력들은 3당합당 이후 몇번의 이합집산 이후 새누리당으로 통합되었다. 김영삼을 따르던 세력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으로 나뉘었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중심으로 뭉쳤던 세력은 민주통합당으로 통합되었다. 단어 그대로의 '역사전쟁'의 순간이었다.

왜 박정희·노무현인가? 그 해답은 '카리스마(Charisma)'

2012년 12월 정치현장에는 경제민주화, 정권심판, 국민대통합과 같은 시대정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역사세력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벌인 대전 중심에는 '박정희'와 '노무현'이 있었다. 위 두 인물은 2016년 현재에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2위를 다투는 인물들이며, 한국 정치지형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었으며 그 영향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른 정치적 거목들 역시 일정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두 인물의 영향력에 비할바는 아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지배', '카리스마'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사회과학 용어를 정의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지배', '카리스마'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사회과학 용어를 정의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 브리타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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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정희와 노무현일까. 그 해답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1세기 초반 교회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구체적 어원으로는 『일리아드』에서 '빛나는 베일을 덮은 사랑스러운 여신'으로 기술 되고 있는 카리스(Charis)를 그 어원으로 한다. 구약에서 나타난 카리스마는 고양된 영적인 은혜와 힘, 특정 개인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정의 된다. 정리하자면 당시의 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으로 얻은 '재능'이었던 것이다.

우선 베버는 지배를 "일정한 명령에 대하여 어느 특정한 인간 집단이 복종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를 "어느 개인의 신성함이나 영웅적인 힘. 또는 모범성에 대한 일상 외적 헌신과 이를 갖춘 개인에 의해 창조된 질서에 의한 지배"로 정의하였다. 정리하자면,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배 양식을 만들어 내는 아주 특별한 원천, 그것이 바로 카리스마인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박정희와 노무현 모두 카리스마적 요소를 분명히 갖추고 있었다. 박정희가 등장하던 시기는 2016년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서 '새로움'을 갈망하는 시기였고, 젊고 정권 이양을 천명했던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일정 부분 소구력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명암을 가지고 있는 산업화 과정 역시 성공했다. 물론 그 기반에는 일반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노고가 기반이 되어있지만, 그 총체를 상징하는 것은 '박정희'였다. 또한 그 죽음을 둘러싼 사건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점 역시 일반적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박정희는 꽤나 '비범함'을 갖춘 카리스마적 존재가 된 것이다.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고출신 판사, 부유함을 뒤로한 민주화 운동, 꼬마 민주당 잔류와 지역감정에 대한 도전, 국민경선을 통한 대역전극, 극적 대통령 당선, 탄핵, 탄핵 역풍, 그리고 그의 죽음. 모든 측면에서 노무현은 자신의 비범함을 입증하였고, 그 역시 '카리스마'적 존재로 남게 되었다. 지금의 정치판에 끼친 영향력으로만 따지자면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박정희라는 존재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12년 18대 대선은 그 카리스마의 후계자들 간의 싸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싸움이었다. 한국 정치사의 양대 카리스마적 존재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 간의 전투였기에 18대 대선은 그 어떤 선거 때보다도 치열했다.

'왜' 박근혜였는가

모두가 알듯이 2012년의 승자는 박근혜였다.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졌다. 도저히 질 수가 없었는데,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류 영화인 '레 미제라블'이 대선 패배 힐링무비로 통용되어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선 정국을 사회학적으로, 구체적으로는 '카리스마' 논의로 해석해본다면 위와 같은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박근혜 당시 후보는 자체적 '카리스마'를 구축하고 있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는 그것이 없었다. 문재인 후보 역시 자신의 카리스마를 입증할 일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유통될만큼 유명해진 일화는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당시 후보는 피습 후 병원에서 가장 먼저 했다고 알려진 "대전은요?" 발언과 MB와의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 새누리당 비대위 체제를 혁신적으로 구축하는 등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위와 같은 카리스마적 행위들이 능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 감성을 자극하여 자신의 권위를 제고시킬만큼 강력한 '한 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결국 박근혜 당시 후보는 '박정희의 카리스마'에 자신의 카리스마를 더해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 당시 시대정신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했음에도,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의 카리스마'에 더할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기에 패배한 것이다.

18대 대선 포스터 제18대 대통령선거에 등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대통령선거 포스터.
▲ 18대 대선 포스터 제18대 대통령선거에 등록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대통령선거 포스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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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문재인과 '2016년'의 문재인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표는 단순히 한 명의 초선 의원이 되어보기도 했으며, 친노에 대한 보수언론의 비판도 받았었다. 그러던 중 문재인 대표에게도 자신의 카리스마를 형성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의 당대표 등극이었다.

당시 선거과정 중 문재인 대표는 전당대회, 20대 총선, 19대 대선이라는 세 개의 난관이 남아있고, 이를 넘어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에게 카리스마를 입증할 기회가 왔고, 그 주요 포인트 역시 명확했다. 그러나 그는 당을 장악하지 못한듯 보였다. 정당 지지율은 하향 답보 상태였고, 대권후보 지지율 1위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실패한듯이 보였다.

그러나 김상곤 혁신위원회 체제 수립 이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비주류 측 탈당 직후 정당 지지율과 본인의 대권 지지율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나 이후 당에 대한 전권을 차지하고 당을 운영했다. 당명 개정, 인재 영입, 새누리와 국민의당의 실수 등 호재도 계속되었다. 한마디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잘 나간다'.

더민주를 상향세로 전환시키고, 그는 당대표 사퇴를 선언했다. 그 역시 '카리스마'를 구축했다고 평가할만한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 인해 비관적이기만 하던 더민주의 20대 총선 판세 역시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에 따라 문재인은 확고한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도 있는, 소위 말하는 판돈까지는 모아놓은 상태인 것이다.

2017년 문재인과 경쟁자들의 '카리스마'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현역 정치인들 중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은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 리더십을 구현하고, 서울시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권위를 가지고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장기간 대권 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2016년 현재까지의 정국만을 놓고 본다면, 새누리당에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표에 준하는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잠재적 후보군인 오세훈, 남경필, 김무성이 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험지출마를 통한 카리스마 형성 기회가 있었지만 이것을 거부했다. 남경필 지사 역시 누리과정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비범한 양태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김무성 대표는 그 행보 자체가 카리스마 형성과는 멀어보인다. 잠재적 여권 후보로 분류되는 반기문 총장 역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제에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2017년 19대 대선판에서 가장 선두에 서있는 것은 문재인 대표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노무현의 카리스마'가 남아있다. 물론 문재인 대표의 대권 행보에 역시 몇 가지 난제가 남아있지만. (관련기사: ''잘 나가는' 더민주의 역습, 그 마지막 난제' )

자신의 카리스마를 입증하기 좋은 정국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8부능선이 20대 총선이다. 문재인 대표에게 2016년 20대 총선은 국회의원도, 당대표도 아닌 '대권주자'로서의 문재인을 심판하는 로도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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