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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은 잿빛 ①] 고시원 총무는 시체 썩는 냄새를 안다

[지난 이야기: 대학 2학년 때, 나는 주거비용을 아끼려고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야간에 고시원 총무 일을 한다. 주거빈곤 시설인 고시원에는 세상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이 모여 살지만, 외국의 슬럼가와 같은 연대와 저항은 구조적으로 막혀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고시원에 입실료가 1년 치나 밀린 성훈(가명)씨의 방에서 악취가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나는 비상키로 그의 방문을 열고, 그가 숨져 있는 것을 목격한다.]


1.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나는 성훈씨 죽음의 최초 목격자, 신고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담당 형사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신은 5일 정도 방치된 상태라고 했다. 시신이 빨리 부패했고 냄새가 심했던 이유는, 9월 초여서 날씨가 여전히 덥고 고시원이 폐쇄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성훈씨의 시신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자신은 구더기가 득실득실한 변사체들도 목격했다고 했다.

내가 정작 궁금한 건 단순한 '사망의 원인'(자살)이나 '시신의 부패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성훈씨의 죽음의 '이유'(≠원인), 즉 '성훈씨는 왜 목숨을 끊었는가'가 궁금했다. 하지만 형사도 원장도 이 문제에는 무관심했다. 형사는 변사 사건의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게 더 중요했다. 소방서에서는 성훈씨의 사망 확인을 하고 갔고, 경찰 감식반이 시신을 가져갔다. 형사는 이 과정을 총괄한 뒤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 조서를 작성했다.

경찰서 전경.
 경찰서 전경.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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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고시원 내 주변 인물들에게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를 하려는 형사와 실랑이를 한 터였다. 원장은 형사가 손님들을 자극해, 손님들이 퇴실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원장이 궁금한 건 성훈씨 유가족의 연락처였다. 성훈씨의 방에는 그가 남긴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시취와 혈흔, 부패액들은 매우 독한 냄새를 내뿜는다.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벽지 등에 스며들었을 경우 상황은 더 나쁘다. 원장이 이를 제거하기 위해 부른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전문업체 사람들이 전한 말이다. 원장은 그 비용을 유가족에게 받아내려 했다. 원장은 형사를 통해 성훈씨에게 형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형사는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리고 시신 인수를 요청할 것이지만, 관계단절을 이유로 거부할 경우 어쩔 수 없다고 통보했다.

원장은 내게 "난 걔가(성훈씨가) 날 엿먹이고 간 거라고 생각해. 우선 401호를(또 다른 장기체납자) 당분간 자극하지 말아야지. 또 송장 치우기는 싫다"고 했다. 원장 딴에는 분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입실료를 1년 치나 못 받았고 어쩌면 특수청소 비용까지 부담해야 했으니까. 원장 스스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자살과 돈 문제라는 빈곤한 팩트 몇 가지가 그의 삶에 대한 설명을 모두 채워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그의 삶을 이해해야 어떤 가치판단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도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형사와 원장은 그의 '사망'은 구체적으로 취급했을지 몰라도 '죽음'은 추상적으로 남겨뒀다.

2. '처리되는 죽음'

형사가 성훈씨의 자살 이유에 대해 '신변비관'이라는 네 글자를 써 조서를 종결짓고, 원장이 성훈씨의 입실서류를 '폐기처분'할 수는 있다. 문제는 한 인간의 삶이란 우주 전체를 통틀어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말한다(관련 기사: 무연고 사망자 1008명 종로 '쪽방촌'의 특별한 장례식).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빈곤한 사회적 감수성은 기껏해야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상상 이상을 해낼 수가 없다. '성훈씨'라는 우주적 사건은 소멸했지만, 그 서사를 일단은 있는 그대로 수용한 뒤 추억이든 비판이든 할 사람들이 부재했다. 형사로부터 성훈씨의 유가족이 시신을 인수했다는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시신의 인수는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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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제 .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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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씨의 시신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의 무연고 시신 '처리' 규정에 따라, 시장 등의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이 10년간 매장 또는 화장해 봉안한다. 그 후에는 다른 무연고 시신들과 일정 장소에 '집단으로' 매장된다. 성훈씨는 죽어서도 '처리'됐을 뿐 최소한의 장례도 못 치렀다. 곧 가을이 왔고 원장은 다른 일로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나와 손님들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 고시원의 고질적인 단점이 폭로된 것이다. 폭로자는 날씨가 추워지자 고시원 여기저기서 기어 나온 바퀴벌레들이었다. 그럴 만했다. 고시원 건물은 노후했고 이들이 안락하게 느낄 만한 틈새들이 많았다. 나는 몇 개월 뒤 일을 그만뒀고 몇 년이 흘렀다. 그러다 최근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시원에서 목격했던 사회적 현실들은, 이 소설의 내용과 기묘하게 닮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서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3. <변신>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신하기 전에는 영업사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파산 후 무기력했고 어머니는 천식을 앓았다. 여동생은 열일곱밖에 안 되어서, 결국 그레고르가 경제적 가장의 짐을 짊어졌다. 그가 열심히 돈을 벌어오자 가족들은 처음에는 고마워했고, 가족들이 행복했기에 그도 행복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점점 예전만큼 고마워하지 않았고 그도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가족에게 자신의 삶을 맞춘 그였기에, 정작 자신이 실현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했다. 다만 그레고르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친근하게 대하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때가 좋았다.

그에겐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진학시키고, 5~6년 뒤 부모의 빚을 다 갚으면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싶은 '소박한 바람'만 있었다. 그래서 잦은 출장, 열차 시간의 압박, 불규칙적이고 나쁜 식사, 가볍고 진정성 없는 인간관계, 권위적인 상사 등을 견뎌냈다. 그런 그가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해버렸다.

다음 카카오가 모네상스와 제작한 '고전 5미닛' 프란츠 카프카 <변신>편 캡쳐.
 다음 카카오가 모네상스와 제작한 '고전 5미닛' 프란츠 카프카 <변신>편 캡쳐.
ⓒ 모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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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비유적이다. 독자들이 그레고르의 사례를 그에게만 국한해 해석하면 별로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그레고르가 '갑자기' 벌레가 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도 직장, 사회, 가정으로부터 나름대로 요구받는 역할들이 있다는 점이다(그게 꼭 '경제적 가장'일 필요는 없다). 고시원의 원장은 성훈씨에게 '월세가 밀리지 않는 원생'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성훈씨는 장기체납자가 됐고, 벌레가 된 그레고르도 돈을 벌어올 수 없었다. 우리에게도 질병, 경제적 파산 등. 삶의 변수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때 우리가 혐오나 배제의 대상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레고르는 확실히 불행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도, 외근 기차 시간을 놓친 걸 더 걱정할 정도였다. 벌레로 변한 몸을 겨우 가눠 출근을 하려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직장생활 중 딱 한 번 기차를 놓친 그를 다그치러 온 지배인은 질겁해 도망가고, 어머니는 실신한다. 아버지는 그를 신문지로 두들겨 패 방으로 밀어 넣는다.

그후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걱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경제적 궁핍을 더 불안해한다. 여동생은 벌레가 된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을 점점 소홀히 한다. 어머니는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 또다시 실신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마구 던졌다. 아무도 성훈씨의 '죽음의 이유'를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듯, 그레고르의 가족들도 벌레가 된 그를 단 한 번도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다.

"슬프면서도 역겨운 그레고르의 현재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가 가족의 구성원이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한 듯했다. 그를 적처럼 취급하거나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가족의 의무이고, 결국 '그의 존재 자체를' 참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변신> 80쪽.

4. 물화(物化)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이후, 그레고르는 시름시름 앓았고 음식을 잘 입에 대지 못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음식은 육신의 생명 연장을 위한 음식이 아닌, 정신적 양식이었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하숙생들을 들였고, 여동생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레고르는 음악에 이끌려 서서히 방을 나섰다.

"음악에 사로잡힌 그는 과연 짐승일까? 마치 갈망하는 낯선 음식으로 가는 길이 그에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는 여동생이 있는 데까지 기어가서 그녀의 치마를 잡아당겨 그녀가 바이올린을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그렇게 그녀의 연주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변신> 92쪽.

소설 <벌레>를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의 일부분
 소설 <벌레>를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의 일부분
ⓒ 모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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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레고르는 하숙생들의 눈에 띄었고, 그들은 불쾌해 하며 방값을 지불하지 않고 떠나기로 한다. 여동생은 작심한 듯 "저는 이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중략)...우리는 이것에서 벗어나야만 해요"라고 가족들을 설득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가족에게 불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희망의 끈을 놓는다. 그리고 방으로 기어들어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죽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 여행을 떠난다.

<변신>은 현대 사회와 많이 닮았다. 가정부가 그레고르의 사체를 빗자루로 쓸어버린 뒤 "옆방에 있는 것을 어떻게 치워야만 할지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처리되었어요"라며 그레고르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듣기 싫어하는 그레고르의 가족의 모습은, 성훈씨의 유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현대인들의 결속감과 주의력이 결핍돼 인간을 물건이 아닌데도 물건처럼 여기는 현상을 '물화'(物化)라고 부른다.

빗자루로 '치워지는' 그레고르와 장례도 못 치르고 '처리된' 성훈씨는 물화된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레고르와 성훈씨는 변신하거나 사망하기 전, 이미 주변의 시선에 의해 물화 당한 게 아닐까. 진정한 가족이 아닌 돈 버는 기계, 이웃이 아닌 월세 체납자... 우리 주변에서도 물질적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보다, 이해타산이 배려와 사랑보다 우선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 사회 자체가 이미 '거대한 고시원' 아닐까.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참고한 글
<변신>(프란츠 카프카 / 더클래식 / 2015 / 4400원)
<물화>(악셀 호네트 / 나남 / 2006 / 9000원)



태그:#고시원, #프란츠 카프카, #악셀 호네트, #그레고르 잠자,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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