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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언론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못하다. 지난 2008년 MB 정부 출범 이후 황폐해진 언론은 제 기능을 회복하기는커녕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많은 언론인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2년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 언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는 총선이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언론 상황에 대한 평가와 올해 전망을 짚어보고자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를 지난 4일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의 문제, 메르스 사태에서 반복됐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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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이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에서 크게 나아지리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전망하셨는데 되돌아보니 그 예측이 정확했던 듯합니다.
"예측이라 할 것도 없는 일이었죠.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가 거기에 대처하고 관리해 나가는 체계가 제대로 잡혔는지를 볼 수 있는 시험대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였어요.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안전·재산과 생명 보호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그런 약속들이 얼마나 입에 발린 소리였는지 메르스 사태 때 확인됐죠.

당시 정부는 메르스 환자 감염병원이나 경유병원을 숨겼고, 언론에도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일종의 보도통제 지침을 내렸습니다. 대다수 언론사는 고분고분 정부의 지침을 잘 따랐죠. 사실 감염이나 경유 병원을 초기에 명확하게 공개하고 철저하게 방역을 했다면 조기에 상황을 수습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부의 비밀주의와 무능, 그리고 언론의 무기력함이 합쳐져서 여러 달 동안 온 국민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상황이 오고 만 것이죠.

언론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병리 현상이 보이면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면서 시스템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지적하고, 개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메르스 사태를 되돌아보면 정부나 언론이 세월호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난 2015년 말에 세월호 청문회가 있었잖아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특별법이 제정됐죠. 특별법에 근거해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첫 시동을 건 게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였어요.

청문회를 다룬 주류 언론의 태도를 보세요. 지상파들은 청문회를 아예 외면하다시피 했고, 종편 같은 경우는 단순 해프닝을 반복해 보여주며 청문회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데 열중했죠. 세월호 참사 때의 숱한 반성이 벌써 깊은 망각 속에 묻혀버린 느낌입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언론 상황이라고 봅니다."

- 언론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왜 교훈을 얻지 못했을까요?
"기본적으로 한국의 주류 언론사들은 정부의 말이라면 그대로 맹종하고, 그 권위에 너무 쉽게 복종합니다. 오랜 세월 형성된 체질이 쉽게 안 바뀌는 거죠. 또한, 주류 언론사들은 갈수록 정치권력이나 재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보도는 피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나 재벌에 대해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다는 것이죠.

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잔혹할 정도로 짓밟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었잖아요. 당시 1차 집회 때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지금까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요.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거리에 나온 사회적 약자들을 또다시 불법·폭력 시위로 매도했습니다. 정말 웃기는 얘기지만 KBS 보도국 같은 경우엔 기사에서 '물대포' 대신 '물줄기'라는 말을 쓴다고 해요. 실제 한번 찾아보니 '물줄기'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가 있을 때 한 위원장을 마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괴물처럼 묘사한 일련의 보도들은 정말 역겹기 그지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언론은 사회적 약자나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게 핵심 역할 중 하나인데 그런 역할을 내팽개친 거죠. '언론이 왜 교훈을 찾지 못했을까'라고 질문을 하셨는데 못 찾은 게 아니라 안 찾는 거죠. 교훈을 찾을 의사가 없는 겁니다."

"가토 전 지국장 무죄 판결, 국제적 망신거리"

-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지난해 언론을 두고 '유신 시대로 회귀했다'고 평가하던데.
"얼마나 언론 상황이 답답하면 그런 평가까지 나올까요. 사실 제가 볼 때 '유신으로 회귀'라는 표현은 현 언론 상황을 볼 때 오히려 과분한 평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 언론 역사를 보면 일제와 독재권력의 모진 언론탄압에도 불구하고 사주와 경영진, 기자들이 혼연일치로 권력과 맞서 싸운 전통이 있습니다. 고문과 체포·테러 심지어 사형까지 각오했고, 많은 훌륭한 신문들이 폐간되거나 강제매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현재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들은 그런 시기를 권력과 타협하며 요리조리 잘 피해온 매우 기회주의적 신문이라고 할 수 있죠. 박정희 유신정권에서도 폭압적인 권력의 물리적인 탄압 때문에 굴종의 길을 간 언론이 대다수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저항한 언론사와 언론인들도 많았어요.

지금은 물리적인 폭압 등은 많이 없어졌잖아요. 그런데도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는 건 현재 언론이 권력에 투항한 게 아니라 권력과 한통속이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몇몇 주류 언론사를 보면 사주·경영진·기자·PD 등이 혼연일치로 지배권력과 한편이 돼 있습니다."

-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방'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이 박 대통령의 명예 훼손 혐의로 기소된 바 있죠. 지난 2015년 12월 17일 가토 전 지국장이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요.
"이건 애초부터 무리한 기소였죠. 검찰이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려서 한 기소였다고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겠죠. 검찰이 항소조차 포기했습니다. 사실 <조선일보>가 비슷한 내용을 먼저 썼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가토 지국장만 기소했죠.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데 그런 인식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대통령이라 하면 우리나라 공인 중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대한 최종 책임자인데 대통령의 명예를 따지며 검찰이 외신 기자를 기소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정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극우매체인 <산케이신문>만 더 기고만장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어요.

판결이 난 직후에 국제언론인협회(IPI)에서 성명을 냈어요.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는 내용과 함께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언론을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는 관행은 언론탄압이자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꼬집었더군요. 한국의 현행법 체제에서 명예훼손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나 언론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긴급하게 구제를 할 수 있는 언론중재 제도 등의 민사로도 충분히 책임을 물을 제도가 있어요.

그런데도 형법으로까지 명예훼손 책임을 묻는 건 이중삼중으로 언론의 목을 죄는 것이죠.  공인이나 공적 기관에 대한 비판적 보도에 대해 형법까지 동원해 명예훼손책임을 지우겠다는 것 자체가 국제적인 망신거리죠."

- 2016년 2월이면 박근혜 정부 3년 차입니다. 언론계에선 박근혜 정부가 언론 정책도 없어서 'MB 정부 8년 차'라는 표현도 나오던데요.
"언론정책이란 게 개념이 불분명하긴 한데요.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정부 정책이나 제도 마련은 표현의 자유를 신장·보호하고, 건강한 재정 모델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의 시선은 주로 산업적 측면에 모인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 당시 '종편 허가'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죠. 박근혜 정부는 더 나아가서 언론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언론을 보는 개념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종편을 허가해준 게 극우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의 일환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요즘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미디어 생태계가 이런 매체에 매우 심각하게 장악돼 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여기에 대고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이 있다, 없다'를 말하는 건 사치스러운 얘기고요. '미디어 생태계가 독과점화돼 가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는가'가 우리 사회의 큰 과제 중 하나죠. 이건 우리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언론의 역할, 올해 특히 중요하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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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뉴스타파>가 첫 방송을 시작한 지 4년이 돼갑니다.
"저희가 언론노조 회의실을 일터로 삼아 가정용 중고캠코더 한 대로 시작한 게 2012년이었죠. 2013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정식 조직으로 출범한 건 이제 3년 남짓 됐습니다.

저희는 비영리 비당파 독립 탐사보도 기관인데 지난 4년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회원들의 후원회비만으로 운영했어요. 독립매체의 지속 가능성을 명확하게 확인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와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도 있어요. 그래서 수만 명이 후원하는 독립매체의 존재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도록 하고, 황폐해진 미디어 생태계를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 지난해는 <뉴스타파> 영역이 넓어진 느낌입니다.
"재작년까지는 저희가 전통적인 탐사보도 위주의 하드한 뉴스를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해왔다면 작년엔 '목격자들'이란 독립 PD들과 협업을 통한 프로그램을 신설해서 라인업을 보강했어요. 중요한 현장을 지키는 르포와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등 잔잔한 감동을 주는 휴먼 다큐를 주로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타파스'라는 서브브랜드를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흥미롭고 재밌게 사회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포맷을 다변화했습니다. 올해 1월 중에는 토크쇼 형태의 새로운 프로그램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중요 현안을 바로바로 진단하고, 시민들에게 맥락이 담긴 정보와 깊이 있는 분석을 공유하려는 목적에서 기획했습니다.

사실 여러 방송사에서 수많은 토크쇼,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쏟아내지만 대부분 유사한 형태고 패널들의 수준이나 시각도 비슷해요. 뭔가 차별화된 토크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올해는 총선이 있어서 어느 때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아요.
"어느 해든 언론의 역할이 안 중요한 해가 있었겠습니까만 올해는 특별히 더 중요하죠, 4월에 총선이 있고 하반기가 되면 대선을 1년 앞둔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죠. 사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 주류 언론사가 이번에도 얼마나 민심을 왜곡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민심을 오도할지 걱정이 앞서는 한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선거 때마다 주류 언론사들은 유권자들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도리어 왜곡된 정보나 진영과 정파 논리에 치우친 뉴스를 쏟아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볼만한 징후는 전혀 없습니다.

주류 언론사 사주나 간부들이 갑자기 저널리즘의 정도를 찾아갈 리는 만무해서 언론사 내부의 기자나 PD 등 구성원들이 이제 나서야 합니다. 회사가 저널리즘의 정도에서 이탈하면 맞서 싸워야 합니다. 싸워서 해고되더라도 이젠 갈 곳이 있습니다. 바로 <뉴스타파>죠. 현장에서 힘을 합쳐서 더는 언론이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 시험대가 2016년 총선이라고 봅니다. 언론사 사주의 정파적 이해나 소속 언론사의 이윤 동기에 소속 언론인도 휘둘려버리면 더는 기성 언론에서 희망을 찾을 순 없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 많은 언론인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요. 영원히 기레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기자란 이름을 회복할 것인가, 그 중요한 분수령이 이번 총선보도가 될 것입니다."


태그:#김용진,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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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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