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백준호와 박무택의 실화를 담아낸 영화 <히말라야> 포스터.

산악인 백준호와 박무택의 실화를 담아낸 영화 <히말라야> 포스터. ⓒ JK필름


"만약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무택이도 나를 구하러 갔을 겁니다."

본부와 무전을 끝낸 사내 하나가 베이스캠프를 나선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기온. 단시간만 노출돼도 코와 발가락이 새까맣게 변색되는 동상의 위험,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불과 수m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절벽의 어둠...

청춘의 한때를 형제처럼 보냈던 후배 산악인들을 위해 백준호(1967~2004)는 단독으로 지구 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가장 위험한 지역인 데드존(Dead Zone)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정상 정복 후 조난당한 계명대학교 산악회 박무택(1969~2004), 장민(사망 당시 26세)과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황정민, 정우, 김인권 주연의 <히말라야>가 파죽지세로 관객몰이 중이다. 이미 670만 명(1월 7일 현재)이 관람했고, 어쩌면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영화의 뼈와 살을 이룬 실화 '2004년 계명대 산악부 에베레스트 등반 스토리'도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산악인 박무택(정우 분)과 백준호(김인권 분·영화에선 박정복이란 이름으로 출연)의 생사를 함께 한 우정이 새삼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사라질 줄 알면서도

 <히말라야>에서 박무택과 백준호(박정복) 역할로 출연한 정우(좌)와 김인권.

<히말라야>에서 박무택과 백준호(박정복) 역할로 출연한 정우(좌)와 김인권. ⓒ JK필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의 손끝에 흐르는 피보다 큰 우주는 없다'고 썼다. 이는 인간은 본래 '이기심'로 뭉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르기로 약속했던 산악부 아우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백준호의 '이타심'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크고도 깊다.

그런 까닭에 한국 등반사(登攀史)는 2004년 5월 20일(백준호, 박무택, 장민의 사망일)을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날인 동시에, 한국 산악인의 기상과 우애를 전 세계에 보여준 날로 기록하고 있다. 백준호는 산악인 최초의 '의사자'이기도 하다.

영화 <히말라야>는 계명대 산악부원들이 겪은 에베레스트에서의 비극과 해발 8천m가 넘는 만년설 속에서 영면한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그 '악마의 산'을 오르는 휴먼원정대(원정대장 엄홍길)의 이야기를 큰 틀로 나눠 전개된다.

많은 관객들이 핍진성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장엄한 히말라야의 설산이 주는 압도적인 풍광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히말라야>가 흠 잡을 데 없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시시때때로 명암을 달리하는 에베레스트의 모습이나 눈사태 등을 보여주는 촬영기법은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하고(물론 투여된 제작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박무택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배우 정유미를 통해 눈물을 유도하는 다소 신파적인 연출 역시 영화평론가들의 눈에는 거슬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단점들이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완벽히 무너뜨리지는 못한 듯하다. 영화를 선택하는 한국 관객들의 수준은 이미 평론가나 영화담당 기자들 이상으로 성장해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그들의 선택이 <히말라야>를 향하고 있으니까.

알피니스트의 심정, 그 단면을 이해하게 해주는 영화

 <히말라야>는 알피니스트들의 심정을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게 해준다.

<히말라야>는 알피니스트들의 심정을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게 해준다. ⓒ JK필름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알피니스트들은 답한다. "거기 산이 있으니까". 결국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생의 모든 것을 건다.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그게 인간과 여타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지점이다.

또 하나. 인간은 때로 자신의 목숨보다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 이것 또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긍휼지심'이다. 서른일곱 백준호는 이를 실천하다 우리 곁을 떠나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히말라야 하늘의 별로 빛나고 있다.

이와 관련, 백준호의 대구 대건고등학교 후배이자 <연합뉴스TV>에서 영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이승환 PD는 "영화는 박무택씨의 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백준호씨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며 "백준호 선배의 삶과 죽음에 포커스를 맞춘 또 다른 '히말라야'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후속편 제작을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와 동시에 영화 외적인 것까지 주목받고 있는 <히말라야>가 언제까지 관객들의 관심권 안에 머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이번 영화까지 1천만 관객을 동원한다면, 엄홍길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국제시장>과 <베테랑>에 이어 3연타석 홈런을 치게 된다.

히말라야 백준호 박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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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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