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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4년 5월 28일 오후 2시 4분. 기자는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의 '전관예우 수임료' 의혹을 다룬 기사 한편을 출고했다. 기사에는 '칼만 휘두르다 칼날 검증 앞에 선 국민검사'라는 부제가 달렸다.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 검사(이를 '칼잡이'라고도 부른다)였던 안 후보자가 국무총리 후보에 내정된 직후 '전관예우 수임료' 검증 앞에 선 상황을 표현한 것이었다. 

기자가 이 기사를 출고할 때까지만 해도 안 후보자가 사퇴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날 대법관 퇴임 후 1년간 벌어들인 수임료 11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터여서 더욱 그랬다. 심지어 이날 오후 5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고액 수임료 의혹을 해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안 후보자는 당시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한 서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48일 만에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정치쇄신위원장을 맡았고(2012년 7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에 내정되면서(2014년 5월)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됐던 그였다. 하지만 돈과 권력, 명예까지 얻으려고 했던 그는 국민검사의 허상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도 접어야 했다. 그와 함께 '칼만 휘두르다 칼날 검증 앞에 선 국민검사' 기사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잊혀졌다 싶었던 안 전 대법관이 오는 14일 내년 총선 출마(부산 해운대구)를 선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홍보용 페이스북도 개설한 상태였다. 그런데 대법관 출신이 퇴임한 지 48일 만에 정치권에 입문하고, 3년 반 만에 총선 출마를 선언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대법관은 법관으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여서 물러난 순간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공익에 헌신해야 마땅한 '마지막 공직'으로 인식돼왔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검사'도 아니고, 이제는 명예로운 '전직 대법관'으로 남는 것도 스스로 거부한 그를 보면서 그날 빛을 보지 못한 기사를 다시 들추어본다.    

안대희 후보자는 3.7억 원을 할인받아 서울 회현동 소재 주상복합 아파트를 샀다.
 안대희 후보자는 3.7억 원을 할인받아 서울 회현동 소재 주상복합 아파트를 샀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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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 칼만 휘두르다 칼날 검증 앞에 선 '국민검사'

"국민정서에 비추어 봐도 제가 변호사로 활동한 이후 약 1년 동안 늘어난 재산 11억여 원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것까지 사회에 모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6일(2014년 5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의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 날이 선 듯한 긴장감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개혁은 저부터 하겠습니다"라고 한 대목에서도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마치 구호를 외치는 것 같았다.

안 후보자는 질의-응답도 없이 기자회견을 마쳤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바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따라붙어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11억여 원의 구체적인 환원계획을 묻는 질문에만 "다 내놓겠다는데 무슨 계획이 필요하냐?"라고만 짧게 답했다. 억울함이 묻어 있는 답변이었다.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수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불편한 칼날검증은 받지 않아도 됐다. 공직에 나가지 않은 다른 '전관예우들'이 그랬듯이 가족들과 안락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평생 칼만 휘둘러온 자신이 정작 칼날 앞에 서게 됐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국민검사로 띄웠다"

안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과 3학년 때(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17회 합격자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바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지난 1982년 8월에는 '학사제명'됐다. 이렇게 해서 그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 됐다.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대한민국 최고학벌이라는 '서울대'를 중퇴할 이유가 없었다.

이를 두고 25년간 한 아파트에서 살아온 '청빈검사'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나중에 얻은 '국민검사' 명성과 연결짓기도 한다. 하지만 안 후보자가 연수를 마친 뒤 판사가 아닌 검사를 선택했다는 점을 들어 '권력에 빨리 올라타고 싶어 대학을 중퇴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고검장 시절 조성식 월간 <신동아> 기자와 한 인터뷰에는 그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나온다.

"검사를 선택한 사람 마음 한구석에는 권력에 대한 욕구나 집착이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조성식, <대한민국 검찰을 말하다2>, 나남)

안 후보자는 지난 1980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부임한 이후 인천지검 특수부장,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3·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3·2·1부장, 대검 중수부장, 부산고검장을 거쳤고, 서울고검장을 마지막으로 26년의 검사생활을 마무리했다. 검사로 사는 동안 '칼잡이', 즉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 검사로서 "정의감이 남다르다"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특히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지휘했던 대선자금 수사는 안 후보자를 '국민검사'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을 밝혀냈고, 안희정·최도술·강금원 등 살아 있는 권력(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구속시켰다. 이후 '안짱', '대선자객', '국민검사' 등의 애칭이 따라다녔다. 심지어 송광수 전 검찰총장과 함께 검찰사상 처음으로 그의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안 후보자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받지 않고 정치권의 대선자금을 수사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사법시험 동기인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비서관인 박성수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했고, 청와대 불간섭을 원칙으로 삼았다"라며 "보통 검찰이 대통령 측근들을 수사하면 (청와대에서) 개입하게 마련인데 노 대통령은 안희정·강금원 등 측근들을 맘껏 수사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안 후보자는 국민검사로 떴다"라고 말했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재산변동 추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재산변동 추이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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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간 27억 원의 수임료 수수 추정"

그러한 명성은 대법관 임명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자신의 핵심측근들을 구속한 안 후보자를 임기 6년의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박성수 변호사는 "대통령의 측근들을 구속한 안 후보자의 경력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도) 끙끙 앓았다"라며 "하지만 검찰몫 대법관에 추천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고, 법원쪽에서도 국민 신망이 높은 안 후보자가 오기를 바랐기 때문에 결국 그를 임명했다"라고 전했다.

박성수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는 다르게 사적인 것에 좌우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안 후보자를 대법관에까지 임명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안 후보자는 지난 2012년 7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48일 만에 정치권에 입문했다. 같은 해 9월 박근혜 후보의 요청으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해친다"라는 지적이 뒷따랐다. 심지어 그의 '애제자'로 불렸던 '삼성킬러' 남기춘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까지 정치쇄신위원으로 끌여들였다. 한광옥 전 의원의 국민대통합위원장 인선문제를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도 거론됐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듯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 임명됐고,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2005년 <조세형사법>을 펴낼 정도로 조세형사분야 전문가여서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리는 쪽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지난 2006년 6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여부'를 묻는 김기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학교 교육에 관심이 많다"라고 답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안 후보자는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7월 서울 용산구에 '정법연구원 안대희 변호사 법률사무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대법관에서 퇴임한 직후 정치권에 들어간 데 이어 '전관예우 금지법'(2011년 개정 변호사법)까지 교묘하게 활용한 행보로 비쳤다. 그는 연봉 1억2000만 원(2명)과 연봉 9600만 원(2명)을 주고 변호사 4명도 고용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5개월 만에 수임료 16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 월평균 3억2000만 원, 일평균 약 1067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에는 올해 계약한 사건들의 수임료는 빠져 있다. 안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재산신고 관련 부속서류'를 보면, 2014년 1월부터 4월까지 19건의 사건을 수임했고, 총 4억400만 원에 해당하는 수임료를 반환하겠다고 신고했다. 단순계산만으로도 약 10개월 간 20억여 원의 수임료를 받은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쪽에서는 안 후보자가 지난해와 올해 낸 부가가치세가 2억7000만 원에 이른다는 점을 들어 10개월간 27억 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기식 의원은 28일 인사청문사전검증팀 연석회의에서 "안 후보자의 납세사실증명서를 보면 2013년도에 부가가치세 1억8700여만 원, 2014년도에 8900여만 원 등 총 2억7000여만 원의 부가가치세를 납부했다"라며 "이를 그대로 계산하면 안 후보자가 변호사 개업 10개월간 약 27억 원의 수임료를 수수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주장했다.

"대법관은 마지막 공직이어야 한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7월 변호사 사무실을 연 이후 '몇 건'의 사건을 맡았는지, 그에 따른 '수임료 총액'이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최소한 수십건의 사건을 맡아 20억 원 이상의 수임료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저의 소득은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26일)라고 항변했지만 '전관예우'가 아니면 불가능한 액수다.

그런데 안 후보자는 5억6000여만 원을 의뢰인들에게 반환하겠다고 했다. 그가 받은 수임료 가운데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비해 수임료 총액을 낮추기 위한 시도로 비친다. 특히 그가 '수임료 반환용도'로 총 5억1950만 원의 현금·수표(총 5억1950만 원)를 보유하고 있는 점도 의혹을 부추긴다. 

김기식 의원은 "소송채무를 반환할 목적인데 왜 계좌 이체가 아닌 현금 (반환)으로 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수임료 반환도 총리 지명을 염두에 둔 정치적 반환이 아닌지 규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자와 부산지검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2010년, 사회평론)에서 "그는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였다"라고 회고했다. 대통령과 재벌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강직하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전관예우로 20억 원 이상의 재산을 형성했다면 '청렴하다'는 평가는 철회되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안 후보자의 재산형성 과정이 낱낱이 밝혀질 경우 '국민검사'라며 그를 지지한 국민들도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야당의 한 의원은 "안 후보자는 권력지향적이고 자아도취형이다"라고 혹평한 뒤 "그는 한번도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라며 "칼만 휘두르며 남을 잡은 일만 했기 때문에 이런 현미경 검증 상황을 못견딘다"라고 꼬집었다.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28일 "안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벽을 못넘을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안 후보자는 "대법관은 사실상 마지막 공직이 되어야 한다"(27일, 페이스북)는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고언을 진지하게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는 것은 공적으로 헌신하지 않고,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려는 한국 주류사회의 속살뿐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안대희, #부산 해운대구, #국민검사,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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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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