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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1월 26일 국회 운영위원회 앞으로 온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며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의 즉각 시행을 요구했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 11월 26일 국회 운영위원회 앞으로 온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며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의 즉각 시행을 요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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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웠다. 그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노동시장 유연화'를 비판하는 논문을 쓸 수 있는지…. 특히 <거대한 전환>(1944년)의 저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를 몇 차례 인용한 대목에서는 기자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가 김진태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종북몰이 전문꾼'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툭하면 파업 들어간다"며 앞장서서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의 인물탐구 기사(김태흠 의원의 '진짜 특기'를 아십니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이력을 발견했다. 김 의원이 41살이던 지난 2003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사회정책학과 사회복지 전공)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DJ정부 시기인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그는 총리실 근무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석사학위를 따낸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은 지난 1987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지역학 특수대학원'으로 알려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 내용이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세계화와 한국 사회정책의 이념적 배경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이 논문에는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국문초록에서 논문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논문은 '세계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현과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는 개별 국민국가의 다양한 전략적 대응을 배경으로, IMF 사태 이후, 김대중 정권의 각종 사회정책 프로그램이 초래한 사회적 파급효과와 '생산적 복지'의 이념적 배경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김 의원은 비판적 평가의 전제조건으로 '세계화(신자유주의)가 각 국민국가의 특수성과 대응양식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내세웠다. "세계화가 단일한 초국가적 정치체계나 경제체계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고 해서 시장일방주의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정치가 어떻게 대응하고 대안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주장(2007년 6월 16일자 <한겨레> 인터뷰)과 일맥상통한다.  

산업민주주의, 노동정치, 노동복지... 놀랍도록 '진보적'인 논문

김태흠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
 김태흠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
ⓒ 국회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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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DJ정부의 사회정책들이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에서 추진되었다고 보면서 DJ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전략'과 '구조조정', '생산적 복지'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가 논문에서 펼치는 주장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대량실업, 불평등의 심화, 빈곤층 양산,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조건의 확산, 노동시장에서 성적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그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목소리다. 논문의 논조가 상당히 '진보적'(혹은 '좌파적')이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논조를 직접 확인해보자.

"해방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정권에 의해 일관되게 유지된 '선성장 후분배'라는 전통적인 발전전략은, 복지영역은 제쳐두고서라도, 사회적 불평등을 둘러싼 분배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사회주의적인 혐의를 둠으로써,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 약속(?)이랄 수 있는 분배문제를 가장 첨예한 냉정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유폐시키는 모순을 거듭해왔다." (36쪽, 각주 34)

"(재벌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논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준거점은, 비록 엄청난 경제적 위기라는 현실적 제약이 가로놓여 있었기는 했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적 가치에 얼마나 더 가까이 접근하려고 노력했느냐 하는 것이다." (38쪽)

"'계급타협 혹은 협약'의 전통이 부재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노사정 위원회'의 출범은 조합주의에 입각한 산업민주주의와 노동정치 및 노동복지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44쪽)

"이런 맥락에서 이미 법제화되고 대량 실업사태를 낳고 있는 정리해고는 더 이상 확대해서는 안된다. 그 환류작용의 폐해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고 그것은 곧, 국민국가의 기반 자체를 잠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3쪽)

"비정규직 종사자가 거의 모든 항목에서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실업, 산업재해, 노령화로 인해 소득원 혹은 근로 능력 자체를 상실했을 때, 이들 중 공공부조 성격의 사회보호 프로그램에서도 제외된 집단은 이중의 '사회적 배제'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추진된 실업대책은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데 충분한(?) 것이었다." (73쪽)

'제3의 길' 노선에 강한 의구심 나타내

특히 김 의원의 주장이 압축돼 있는 논문의 '결론' 부분에 이르면 그의 진보적(혹은 좌파적) 논조는 더욱 도드라진다. 현재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동시장 유연화'('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는 물론이고, 정부의 불공정한 시장주의 대응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신자유주의에 편향된 각종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참여민주주의, 사회적 연대, 도덕경제에 기반한 공동체적 가치들을 '악마의 공장'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상품 '허구'와 시장이 자랑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신화'가 우리들의 '현실'적인 사회적 삶의 근간이었던 노동을 끊임없이 유연화시켰고 또 아예 밖으로 내몰기까지 했던 것이다." (110쪽)

"재벌개혁은 거대한 몸집으로 배수진을 친 재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지지부진했다. 이상한 것은, 부실기업과 금융개혁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공적자금을 투여하고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냉혹한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용하려 들지 않았지만,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는 '대외 신인도'를 고려하여 언제나 단호한 대처가 뒤따랐다.

대량실업은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처럼 얘기되었지만, 누군가에겐 애초부터 분담될 수 없는 고통이었고, 수출증대-경기회복-고용창출이라는 낯익은 커넥션은 우리 모두의 희망인 양 얘기되었지만, 누군가에겐 세대를 이어 강요되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불과했다." (110쪽)

김 의원은 "'생산적 복지'론의 출현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폐해를 정부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며 특히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추진했던 노선인 '제3의 길'에도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국 좌파진영에서 접근해온 시각과 비슷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삼아, 노동의 탈정치화·탈동원화를 철저하게 관철시키고, 국가복지를 기업과 가족(공동체)에 전가시킨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에서, 하루 아침에 복지병에 과도한 재정부담을 우려하며 '제3의 길'과 같은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대안인가 하는 것이다." (111쪽)

"'생산적 복지'론은 '제3의 길'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불평등과 관련된 소득재분배정책이나 조세제도 자체의 개혁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결국 '생산적 복지'론은…(중략)…복지영역 본연의 문제의식과 고유의 논리에 입각한 사회정책이 시장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111쪽)

그가 '칼 폴라니'를 끌어들인 이유

김태흠 의원은 그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칼 폴라니를 자주 인용했다.
 김태흠 의원은 그의 석사학위 논문에서 칼 폴라니를 자주 인용했다.
ⓒ 국회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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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 의원은 자신의 논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보성향으로 평가받는 학자들의 저술을 많이 인용했다. 그가 논문에서 주요하게 인용한 학자에는 강내희·강문구·강원택·김동춘·김민웅·김상조·김세균·노중기·손호철·신광영·유철규·유팔무·이병천·임혁백·정상호·정태인·최배근 교수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크게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까지 다양하다.

"국가개입의 공간을 최소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은 그들이 의도하고 있는 시장질서의 확립에도 역행한다. 문제의 해결책은 국가개입을 최소화한다거나 국가개입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민주화에서 찾아야 한다." (Przeworski, 1998; 임혁백, 1998)(41쪽)

"현재 정부와 재계가 추진하고 있던, '배타적 소유관계에 기반하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을 수반한다…(중략)…소유권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적 권리도 고려하는 '이해 관계자 자본주의' 혹은 민주적 협력 자본주의가 전제될 때, 구조개혁과 노동정책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에 기반한 의미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상조 1998, 이병천 1998)

김 의원은 폴란드 출신의 민주주의이론가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뿐만 아니라 특히 칼 폴라니를 여러 차례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을 통해 '시장이라는 신화의 허구성을 밝히고, 시장경제의 대안으로서 인격적 관계의 공동체, 길드 사회주의, 지역주의적인 세계 질서'를 주장한 경제사가다. 그런 칼 폴라니를 여러 차례 인용한 것은 그의 저서에 '21세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모든 이론적 흐름이 원형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DJ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들을 비판하기 위해 칼 폴라니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북한 외교능력 치켜세우기까지... 그도 한때 '종북좌파'?

특히 논문에는 참여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인 '동북아 균형자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비록 냉전체제는 해체되었지만, '떠오르는 중국'과 일본의 존재는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여전히 중요함을 말해준다, 이러한 구도는 조정자로서의 우리의 위상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라고 서술한 대목이 그렇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국의 보수우파진영으로부터 '한미동맹에서 벗어나려는 반미의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는 한국의 보수우파 진영에서 볼 때 '종북적 논조'라고 규정할 만한 대목도 발견됐다. 김 의원은 "이렇게 주어진 여건의 협소함을 '신자유주의적 지향' 일변도로 더욱 더 좁게 만드는 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 김대중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라며 이렇게 서술했다.

"적절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핵문제 처리 과정에서 북한의 정치·군사적 문제와 경제적 협력을 동시에 견지하는 외교능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46쪽)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DJ정부와 '벼량끝 전술'을 통해 경제분야 등에서 실리를 챙기는 북한을 대비시키면서 북한의 외교능력을 치켜세운 것이다. 김 의원이 통합진보당을 "종북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정당해체를 주장하는 등 '종북몰이 전문꾼'으로 활약해왔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서술이다.    

이렇게 김 의원의 석사학위 논문은 완전히 다른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텍스트다. 그가 이 논문을 온전하게 모두 집필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한국 보수우파의 눈에는 그가 '(종북) 좌파'로 비쳐질 수도 있다. 어쩌면 한때 진보좌파였던 그가 보수우파로 전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까지 이르니 원스턴 처칠과 칼 포퍼의 얘기가 떠오른다.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요,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
"젊어서 맑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이고, 그 후에도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는 것은 더 바보이다." (칼 포퍼)


태그:#김태흠, #석사학위 논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칼 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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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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