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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9일 KBS는 경영직군으로 26년간 근무했던 신기섭씨를 해고했다. 그의 해고 사유는 ▲ 공사 경영진에 대한 욕설 및 폭언 ▲ KBS의 보도와 방송 폄훼 및 비방 ▲ 공사 전자게시 관리지침 상습 위반 등이었다.

신씨는 사내 게시판이 개설된 1998년 즈음부터 KBS 보도의 문제점을 꾸준히 올려왔다. 그는 특히 "2008년 이후 권력에 굴종하는 방송 행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존재의의를 잃어 가는 것을 보며 치욕과 분노를 느껴 혼자서라도 발버둥 쳐보자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신씨가 글을 올려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그가 '욱'해서 보도본부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에 욕설을 섞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신씨는 사과문을 올리고 보도본부장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KBS 인사위원회는 결국 그를 해고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는 상태에서 당한 해고는 꽤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신씨의 심경을 듣기 위해 지난 3일 언론노조 KBS 본부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은 신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욕설 게시는 잘못이지만 해고는 과잉 징계"

신기섭씨
 신기섭씨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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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9일 KBS에서 해고됐잖아요.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처음에는 충격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죠. 두렵기도 해서 생각이 없었죠. 저는 사안에 대해 제가 가진 권리와 의무를 온당하게 법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재차 이런 부당한 해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일 가슴이 아플 때는 신분증을 회사에 반납하는 순간이었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알리는 과정이었습니다. KBS 선후배·KBS 본부노조·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의 응원과 도움으로 매사에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KBS 본부노조 사무실에 출근하며 조합 일을 도우면서 방송 민주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 해고 원인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었는데, 어떤 내용이었어요?
"국정원 의혹에 대해 탐사·심층보도를 방송해 달라고 몇 번을 요청했지만 묵살되었어요. 국정원의 입장만 대변하는 보도행태를 보며 일순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게시판을 통해 JTBC 뉴스와 비교하며 KBS 뉴스를 욕설과 함께 비판한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KBS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13건의 게시물을 추가하여 형량을 키워서 '해고'라는 과잉 징계를 하였습니다.

이번 징계의 진행사항을 보면 해고는 이해되지 않아요. 제가 게시판에 욕설을 섞어 글을 게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욕설을 게시한 것은 잘못된 행위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즉각 게시판에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하였습니다. 제가 올린 문제의 게시글은 법무실에서 신속히 삭제하여 30여 명도 채 열람하지 않았습니다. 제 사과문은 2200여 명이 읽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입니다.

욕설에 관련한 당사자인 보도본부장을 두 번이나 찾아갔어요. 처음엔 면담을 허락하지 않아 사과문만 전달했고, 그 다음번엔 지원관리국장과 같이 찾아갔어요. 저는 면담이 안 되고 재원관리국장만 보도본부장을 만났어요. 면담한 재원관리국장을 통해 보도본부장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도본부장은 '신기섭씨의 사과문을 읽었고,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 이번 특별인사위원회 위원에게 잘 이야기하겠다. 신기섭씨도 인사위원회에서 잘하기 바란다'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전해 들으며 당사자 간 개인적인 화해는 이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KBS 선후배 8백여 명이 '해고는 과하다'는 탄원서를 올렸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해고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조대현 사장 퇴임 4일 전에 해고가 즉각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해고 결정에 모두 당황했습니다."

- 게시판에 글 올린 게 이번이 처음 아니라던데요?
"게시판이 개설된 1998년 즈음 이후로 게시판에 KBS의 경영정책이나 방송내용에 대해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제시하는 내용을 게시해 왔습니다."

- 꽤 오랫동안 글 올리셨는데, '올려봤자 뭐하나' 하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회의도 들고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인의 양심을 외면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에 KBS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8년 이후 권력에 굴종하는 방송행태를 보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존재 의의를 잃어가는 것을 보며 치욕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혼자서라도 발버둥 쳐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KBS 방송 비판과 방향 제시에 관한 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이유는 언론인의 양심을 믿기 때문이죠. KBS가 권력에 굴종하여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직원이 언론인으로서 스스로 알고 느끼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물론 경직된 관료적 방송조직 체계 아래에서 선뜻 용기를 내어 행동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난 돌로 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많은 선후배로부터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심적으로 동의한다'는 교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성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KBS에서 희망을 보다

지난 11월 19일 KBS에서 해고된 신기섭씨
 지난 11월 19일 KBS에서 해고된 신기섭씨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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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은 해고 사유를 "취업규칙 제4조(성실), 제5조(품위유지)를 위반해 인사규정 제55조 제1호 법령, '정관 및 제 규정에 위반하거나 직무상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경우', 제3호 '공사의 명예를 훼손하였거나 공직자가 지녀야 할 품위를 더럽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하던데요.
"KBS의 해고사유엔 7개가 있어요. 그중 적용된 것은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것과 공직자로서 품위 유지를 못했다는 거예요, 제가 되묻고 싶은 게 뭐냐면, KBS가 공영방송인데 국민을 대변하지 않으면 무슨 품위가 있느냐는 거죠. KBS의 품위가 저의 품위고 KBS 명예가 저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KBS는 권력 지향 방송을 하므로 공영방송으로서 명예와 품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조직문화에서 저에게 품위유지를 묻고 잘못된 명령에 복종하라고 한다면 논리에 안 맞습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실천하는 품위와 명예가 있다면, 저도 비판을 안 했을 것이고 그에 걸맞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명령에 복종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KBS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서 명예를 유지해야 저도 명예롭고, KBS가 민주적 방송행태를 지향하는 품위가 있어야 저도 공영방송인이라는 자긍심에 의한 품위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측이 생각하는 공영방송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공영방송은 진실을 바탕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방송입니다. 그러나 지금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와 입맛에 맞는 관제적 방송입니다.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이 없으면 그만큼 언론을 장악하여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우민화 정책을 씁니다. KBS도 그런 의미에서 정권의 홍보 기관화에 동원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조대현 전 사장이 퇴임식에서 "마지막으로 제 재임 동안 신변의 불이익을 받으신 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겠다. 인간으로서 악업을 쌓았다는 생각으로 속죄하며 살겠다"고 발언하던데.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앞으로 조대현 전 사장의 인생 행로를 지켜보겠습니다."

- 한국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요. KBS 내부에서는 어떻게 보나요?
"내부에서도 개인의 목소리는 흔하지 않지만, KBS본부노조를 비롯하여 기자협회, PD협회, 경영협회, 방송기술인협회 등 각 직종단체를 통해 자성과 각성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KBS는 조직 체계를 여러 번 바꾸었으나 아직 권위적 관료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의사소통의 통로가 차단되어 있어요. 사고와 이념의 다양성이 조화되지 못하고, 경영진의 일방향적 의사결정 구조입니다. 위로부터 일방적인 지시에 따른 목표 설정이 이뤄지고, 획일적인 방송방향이 제시되는 등 비민주적 조직체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 KBS에 희망이 있을까요?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이 마찬가지지만 KBS 역시 방송 민주화의 역사가 짧습니다. 이미 독재정권을 넘어 민주정권의 방송 민주화를 경험했어요. 그러나 다시 억압적이고 퇴행적인 보수정권의 통치 행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KBS는 국민의 기본권 확보, 건전한 사회통합,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했습니다. 그때문에 올바른 공영방송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KBS인들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망을 봅니다."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도 언론 분야의 일원으로서 진실을 바탕으로 공정한 국민의 방송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게 도움과 용기를 주시는 KBS 선후배, KBS본부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에 감사드립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신기섭, #KBS , #조대현,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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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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