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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조선인 강제징용 공양탑 가는 길 정비를 위한 펀딩'에 동참하려고 학교에 임시 매점을 차렸던 광주 선운중 학생들에게 펀딩을 진행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선물을 보내왔다.
 지난 9월 '조선인 강제징용 공양탑 가는 길 정비를 위한 펀딩'에 동참하려고 학교에 임시 매점을 차렸던 광주 선운중 학생들에게 펀딩을 진행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선물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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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광주 선운중 학생 네 명이 학교에서 모금 활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역사 수업 도중 '일제 강제징용'을 다룬 MBC <무한도전> 영상을 접한 학생들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의 '조선인 강제징용 공양탑 가는 길 정비를 위한 펀딩'에 동참하려고 학교에 임시 매점을 차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모금 이틀째인 지난 9월 23일 선운중을 찾아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사에 담았습니다(관련기사 : "선생님, 하시마! 무한도전!" 야밤에 울린 카톡, 무슨 작당모의를?). 기사에는 "우리의 새싹들, 고맙고 자랑스럽다", "역사를 잊지 않은 너희가 있어 미래가 있다", "선운중에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네요" 등 응원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며칠 뒤, 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 교수 연구팀 측에서 "학생들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한다"는 연락이 온 겁니다. 전화를 받은 김태은 선운중 국어교사는 "기사를 보고 (서 교수 측에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취지로 전화를 해 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책에 담긴 사인에 연신 "대박, 대박"

1일 학생들이 서 교수에게 받은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1일 학생들이 서 교수에게 받은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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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 교수의 선물이 담긴 소포가 선운중에 도착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1일 학생들과 함께 소포를 열기 위해 선운중을 찾았습니다. 학생들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지난 기사에 실린 사진이 너무 이상했어요"라며 웃음 섞인 항의(?)를 하더군요.

드디어 소포 앞에 섰습니다. 가위로 테이프를 뜯어내면서 학생들은 연신 "대박, 대박"이라고 속삭였습니다. 상자 안에는 서 교수가 공저한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이 들어있었습니다. 모금 활동을 벌인 이슬비, 배은송, 강다희, 정경진(선운중 3학년)양은 물론, 김태은 교사의 몫까지 총 다섯 권이더군요.

책 표지를 넘기자 서 교수가 직접 한 사인이 보였습니다. "○○○ 학생! 정말 감사드리며 늘 도전하세요!"라고 적힌 글귀도 눈에 띄었습니다. 잠시 멈췄던 "대박" 소리가 학생들 입에서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해요. (서 교수는) <무한도전>에 나왔던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친필로 사인해 보내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웃음)." - 배은송양

당시 학생들은 나흘 동안 매점을 운영해 46만6000원을 모았고, 서 교수가 진행한 펀딩에 참여했습니다. 펀딩을 통해 약 1800만 원을 모은 서 교수는 지난 10월 다카시마 섬의 공양탑 가는 길을 깔끔히 재정비했습니다. 무성히 자란 풀 때문에 길인지, 숲인지 알 수 없었던 공양탑 가는 길은 비로소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 교수는 남은 돈을 공양탑 안내판을 설치하고 우토로 마을의 역사관 건립비용에 보탤 계획입니다.

서 교수의 책을 받아든 정경선양은 "처음엔 정말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공양탑 가는 길이 정비된 모습을 보고 사소한 게 모여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받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강다희양은 "역사는 교과서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참여하면 바뀔 수 있는 게 역사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라며 부끄러운 듯 웃었습니다.

책 표지를 가만히 보던 배은송양은 "(이번 경험을 계기로) 나 자신이 대한민국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이슬비양은 이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있는 탓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만났을 때 "(이 일을) 준비하면서 이불 옆에 펜이랑 종이를 두고 잘 정도로 고생했어요"라던 이슬비양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함께'하는 걸 배웠다"

1일 학생들이 서 교수가 보낸 선물을 뜯어보고 있다.
 1일 학생들이 서 교수가 보낸 선물을 뜯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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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쫑알대던 학생들을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숨은 공로자' 김태은 교사가 한 마디 보탰습니다.

"준비하면서 나눈 교사와의 대화, 매점을 찾은 친구들, 그리고 서 교수의 응답을 경험하며 학생들은 '내가 옳은 일을 하고자 할 때 함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아, 외롭지 않구나'라고 느꼈을 겁니다.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있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죠."

쌍문동 골목의 복작복작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까닭은 '함께'라는 단어가 갖는 힘 때문 아닐까요.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함께라는 말이 힘을 못 쓰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 함께를 경험한 선운중 학생들은 "사소한 것이 모여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고, 스스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습니다. 덕분에 기자도 선운중 학생들로부터 많은 걸 느꼈습니다. 우리, 함께할까요?

1일 학생들이 직접 개봉한 소포에는 서 교수가 공저한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이 들어 있었다.
 1일 학생들이 직접 개봉한 소포에는 서 교수가 공저한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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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광주, #선운중, #서경덕, #강제징용, #공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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