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라오페라단은 국내초연작 <안나 볼레나>에서 국내 출연진만으로도 대작을 멋지게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안나 역의 박지현, 퍼시 역의 신상근.

라벨라오페라단은 국내초연작 <안나 볼레나>에서 국내 출연진만으로도 대작을 멋지게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안나 역의 박지현, 퍼시 역의 신상근. ⓒ 문성식 기자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안나 볼레나>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국내 초연되었다.

오페라 <안나 볼레나>는 작곡가 도니제티를 벨리니, 로시니와 함께 벨칸토 오페라의 3대 작곡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영국 왕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앤 불린 왕비의 1000일간의 비극적인 사랑과 궁정생활을 그렸으며, 영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로도 만들어졌다.

유독 아리아가 많고, 등장인물 수가 많은 오페라로 좋은 작품임에도 흔하게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컸고, 결과도 만족이었다. 공연 전후 공연장 로비의 관객 수와 분위기가 기대와 만족감, 성취감 등으로 가득했다. 단장의 크나큰 배포와 결단, 추진력이 또 한 번 주목되는 공연이었다.

훌륭한 배역진, 아름다운 의상, 충실한 무대

 왕 엔리코(박준혁)의 두번째 부인인 안나(박지현)는 왕의 모함으로 결국 하녀인 죠반나(김정미)에게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왕 엔리코(박준혁)의 두번째 부인인 안나(박지현)는 왕의 모함으로 결국 하녀인 죠반나(김정미)에게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 문성식 기자


1막 1장 윈저 성은 넓고 높은 고풍스러운 궁정 벽과 기둥에 금색 왕비의 의자가 덩그러니 화려하고도 고독함을 상징한다. 2장 윈저 성 공원에서는 무대를 가득 채운 높은 나무들을 실감 나게 그렸다. 2막 1장 감옥과 연결된 대기실 장면은 높은 3단 층과 계단으로 감옥의 살벌함과 어둠을 드러냈으며, 2막 2장은 붉은 조명으로 죽음의 기운과 그 속에서의 신비로움을 나타냈다.

배역진도 모두 훌륭하게 벨칸토 아리아들을 막힘없이 불렀다. 지난 11월 28일 공연에서 안나 역의 소프라노 박지현은 뛰어난 외모와 카리스마, 높은 고음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첫 번째 왕비 캐서린의 자리를 빼앗았지만 결국 자신도 자신의 하녀 죠반나에게 그 자리를 뺏길 운명에 대한 회한에 찬 감정을 훌륭히 연기와 노래로 표현했다.

죠반나 역시 1막 시작 안나보다도 먼저 등장하는 만큼, 안나와 엔리코의 갈등관계를 조성하는 중요 인물이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안나와의 듀엣, 왕 엔리코와의 듀엣 등에서 높고 안정된 기량을 선보였다. 안나가 독백이 많은 데 비해, 조반나는 듀엣이 많았다. 엔리코 역의 베이스 박준혁은 훌륭한 외모와 충실한 가창력으로 엔리코를 위엄에 넘치는 왕으로 표현했다.

오페라 <안나 볼레나>의 특징은 많은 인물의 동시 등장이다. 5중창 심지어 7중창까지 있다. 1막 3장에서 안나와 엔리코, 스메톤과 퍼시, 로슈포르 등이 안나를 계략에 빠트리는 장면의 7중창을 부르는데, 7명의 노래가 음역별로 동등하게 다 들릴 수 있는지 신기하다. 스메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순미, 허비 역의 테너 김성천, 로쉬포르 역의 베이스 이용찬도 극에 중요한 인물인 바 제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이번 공연에서 왕과 왕비들 외에 눈에 띄는 배역은 퍼시였다. 퍼시 역의 테너 신상근은 힘찬 고음과 추진력을 가졌다.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배역에 잘 어울렸으며 돋보였다.

의상 또한 극을 잘 살리는 데 한몫했다. 합창단의 경우, 모든 단원의 의상이 색채와 질감이 통일되어 있으면서도 조금씩 섬세함이 달라서 더욱 풍성한 감을 주었다.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충실한 소리와 타이밍으로 성악가들의 연기와 노래를 안정되게 받쳐주었다. 메트 오페라 합창단(단장 이우진) 역시 2막에서 정적인 움직임이지만 성악가 각자의 표정이나 섬세함이 살아있는 연기로 극의 부피감을 살려주었다.

종합적으로 라벨라오페라단의 <안나 볼레나>는 충실한 무대 세트나 7인 주·조연 성악가 수들, 오케스트라 그리고 연출 방향까지 합이 잘 맞았다. 국내에서 처음 만나는 앤불린 이야기를, 계속되는 아리아에도 질리지 않고 막힘없이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우리나라 웬만한 젊은 성악가들은 이제 노래와 연기를 다 잘하는구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출중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라벨라오페라단 뿐만 아니라 국내 성악가들에 대한 인식을 격상시켜주는 좋은 무대, 좋은 시도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플레이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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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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