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대박은 아니더라도 몇 개의 팀들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했던 손아섭(롯데 자이언츠)에게 관심을 보인 메이저리그 구단이 단 한 팀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던 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KBO리그 사무국에서는 11월 24일 오전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손아섭에 대한 포스팅 시스템 신청 결과를 받았다. 한국 시각으로 23일이 미국 시각으로는 22일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하루 늦은 24일 오전에 최고 응찰액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류현진(2573만 7737달러 33센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계약)이나 박병호(1285만 달러, 미네소타 트윈스 협상중) 같은 대박까지 기대하지는 않아도 강정호(500만 2015달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계약) 정도의 금액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아섭의 소속 팀 롯데는 그에 대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들의 무관심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신청 과정에서 결여된 자신감, 결과 발표도 늦었다

사실 손아섭은 포스팅 시스템 신청 과정부터 자신감이 결여된 요소들이 보였다. 손아섭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뒤, 같은 팀 동료인 황재균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는 바람에 선수와 구단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KBO리그 사무국 사이에 맺어진 규약에 따르면, 포스팅 시스템은 소속 구단의 허가를 받아 신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시즌에 1명의 선수만 메이저리그 구단과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계약을 맺고 이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단, 2명 중 먼저 신청한 1명이 계약에 실패할 경우 대기자가 바로 신청할 수는 있으며 FA 대상자는 이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 때문에 롯데는 내부 회의 끝에 최근 3년 동안 더 나은 성적을 보였던 손아섭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로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황재균도 신청을 최대한 빠르게 할 수 있게 손아섭은 11월에 신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서 손아섭은 포스팅 시스템의 모든 절차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12월에 신청하고자 했다. 손아섭은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았고, 2015년 시즌과 프리미어 12가 종료되자마자 4주 기초 군사 훈련을 위해 현재 모 사단 신병 교육부대에 입소한 상태다. 이 훈련까지 끝나고 포스팅 시스템을 진행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롯데 구단은 생각이 달랐다. 소속 팀 선수 한 명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을 것을 자신했다면, 다른 한 명은 내년을 기다리게끔 분위기를 이끌어줘야 했다. 그러나 손아섭이 계약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황재균도 상황을 기다리게 했다. 황재균도 손아섭과 마찬가지로 4주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KBO리그 사무국을 거쳐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한 시점은 11월 16일이었다. 그리고 당초 1주일이었던 기간이 끝난 뒤 바로 첫 평일이었던 24일 오전 7시(한국 시각)에 결과가 전달되어야 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KBO리그 사무국에 결과를 전달하는 것부터 늦어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막상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서 보다 결과를 신중히 검토하다보니 결과 전달이 늦었던 것이다. KBO리그 사무국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롯데 구단 측에 결과를 전달했다.

예상 금액은 커녕 관심 구단도 없었던 결과를 받아들자 소속 팀 롯데는 당초 내부 회의를 거쳐 결과 수용 여부 발표를 하는 데에 있어 결과를 받자마자 바로 발표했다. 어차피 관심을 보인 구단이 없어서 더 이상의 과정은 밟을 수 없었다. 포스팅 시스템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경우는 진필중 이후 13년 만이다.

포스팅 신청 시기도 문제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한 시기도 문제였다. 손아섭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2500타석 이상을 출전했던 선수들 중 타율이 가장 높았다(0.329). 출루율도 0.419로 훌륭했다. 파워보다는 컨택트에 집중했고, 빠른 발을 통한 주루 플레이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리그 홈런왕이었던 박병호는 시즌이 끝나고 바로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했다. 박병호는 FA 시장에 있는 A급 선수들과 경쟁해도 꿀릴 요소가 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손아섭의 경우 박병호보다는 다소 기량이 특출난 점이 적었던 선수로, A급 선수들이 어느 정도 빠지는 12월 즈음에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었다.

12월 초에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단장을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이 한 곳에 모여 대규모 회의(윈터 미팅)를 실시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큰 거래들이 많이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 해에 김광현(SK 와이번스)과 양현종(KIA 타이거즈)이 계약을 하지 못하거나 포스팅 시스템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도 윈터 미팅과 시기가 겹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반면 강정호는 윈터 미팅이 끝난 뒤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했다. 그리고 내야수 보강을 원했던 피츠버그와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물론 피츠버그는 강정호를 내야수의 또 다른 옵션 요소로 생각했으나 강정호는 실력으로 팀의 중심 타선에 들어갔다.

게다가 손아섭은 현재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함에 있어 분명 선수도 미국으로 가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필요한 경우 메디컬 테스트도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훈련소에 있으니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는 데 제약이 생긴 것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손아섭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훈련소에 들어간 선수를 상대로 협상을 하고자 하는 구단은 없었다. 사실상 계약이 안 될 것으로 계산했던 타이밍에 손아섭은 무리한 포스팅을 신청한 것이다. 물론 손아섭과 황재균은 훈련소에서 이 소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프리미어 12에서의 활약 임팩트 부족

박병호의 경우는 정규 시즌 내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면서 종종 경기를 보러 오는 스카우터들이 있을 정도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 정규 시즌에 손아섭을 지켜보러 경기장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결국 손아섭을 보기 위해 일부 스카우터들이 프리미어 12를 관전하기는 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대호(FA), 김현수(두산 베어스) 그리고 황재균 등에 대한 관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아섭은 일단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회는 잡았다.

손아섭은 프리미어 12 대회 성적에서 3할 대의 타율을 기록하긴 했다. 다만 출전 횟수가 적어 임팩트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 선수인 황재균이 대회 베스트 11에 들었던 점을 감안하면, 손아섭은 보다 임팩트가 큰 모습을 많이 보였어야 했다.

이대호의 경우는 프리미어 12에서 성적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NPB 정규 시즌 내내 꾸준한 모습을 보여왔고 재팬 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며 사실상 검증이 더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대호도 4강전에서 극적인 결승 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게다가 김현수는 대회 내내 타점을 쓸어 담으며 대회 MVP에 올랐다. 이미 정규 시즌 내내 KBO리그 FA 예정자들 중 가장 주목 받았던 김현수는 프리미어 12 MVP까지 수상하면서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손아섭에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말앗다. 게다가 김현수는 손아섭과 포지션이 같은 코너 외야수였다. 김현수에게 밀려 출전 기회마저 적었던 손아섭이 프리미어 12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은 적었다.

결국 손아섭에게는 여러 가지 요소에 있어서 포스팅 시스템을 신청할 최적의 시기가 아니었다.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는데, 성급하게 준비하다보니 신청 날짜부터 갈등이 생겼고, 프리미어 12라도 집중했어야 했는데 이러한 상황이 집중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일단 롯데 측은 황재균에게 의사를 물어본 뒤 포스팅 시스템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손아섭의 전례를 거울 삼아 다른 선수들이 해외 진출에 있어 보다 신중하고 착실하게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 강정호와 같은 전략적 성공 사례가 다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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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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