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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 6월 22일 오후 3시. 수사를 개시한 지 71일 되는 날이었다. 구본선(대구지검 서부지청장) 특별수사팀 부팀장이 기자들과 티타임을 열었다. 그는 먼저 수사팀이 얼마나 열심히 수사하고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오늘 새벽 3시까지 근무한 팀도 있다. 수사팀은 여전히 풀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이어 구본선 부팀장은 "수사팀은 경남기업 자금 흐름을 시기별로 모두 들여다 보았다"라며 "수사로 연결될 수 있는 모든 부분 하나하나 면밀하게 살펴봤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사팀은 성완종 리스트에 기초해 경남기업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고, 의혹 하나하나를 모두 수사해왔다"라는 것이다.

구 부팀장은 "수사팀은 다른 사항을 고려하거나 신경쓸 겨를이 없다"라며 "수사팀의 관심은 오직 조속하게 본건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성완종 리스트'로 상징되는 정관계 로비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을 반드시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이어진 구 부팀장의 발언이 참석한 기자들을 집중시켰다. 그는 "추가 의혹과 관련해 몇 가지 더 확인할 것이 생겼다"라며 "변화가 조금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적시된 8명 이외에 추가로 조사할 정치인이 있다는 것인가?'

구 부팀장은 "경남기업 계열사 모든 자금의 최종 사용처를 일일이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라며 "당사자 조사 등이 마무리돼야 결론을 알 수 있어서 당사자 조사가 중요하고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정치인 두 분이 계신다."

이인제·김한길 소환 통보... 다시 여의도로 향한 검찰의 칼끝

구 부팀장은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정치인 두 분'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두 분의 소환일정을 정하는 과정에 있다"라며 "(출국금지 등 조치 여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통상 소환일정을 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2명의 정치인'에게 소환을 통보했다는 얘기다. 또한 검찰이 이들의 범죄 혐의를 어느 정도 입증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소환해야 할 정치인이 '현직 국회의원'이라면 범죄 혐의가 더욱 확실해야 한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 진술도 있나?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 국회의원 아니냐?
"말씀드릴 수 없다. 국회의원이라고 말씀드린 적 없다."

- (성완종 리스트는) 국민적 의혹인데...
"소환일정을 정하는 단계에 있다."

- 그러면 아예 말하지를 말든가.
"소환일정을 정하는 단계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 정치인 소환은 국민적 관심사 아닌가
"그런 점 고려하겠다."

기자들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구본선 부팀장은 끝까지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정치인 두 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타임 이후 언론들은 "특별수사팀이 새로운 금품수수 의혹의 단서를 잡고 정치인 2명에 소환조사를 통보했다"라며 소환을 통보한 정치인으로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과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특정해 보도했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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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의원은 여당 최고위원으로 6선 의원이고, 김한길 의원은 야당 대표를 지낸 4선 의원이다. 이들이 여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헤아리면 검찰이 거물급 여야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잡은 것이다. 여의도로 향한 검찰의 칼끝에 정치권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중간수사 결과 발표 4개월이 지났지만 '재소환' 소식 없어

검찰이 두 의원에게 소환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의혹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인제 의원은 지난 2012년 4월 총선 당시 측근 정치인 선거 지원 명목으로 2000만 원을 받았고, 김한길 의원은 지난 2013년 5월 옛 민주당 당 대표 경선 당시 3000만 원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이인제 의원의 경우 처음에는 그의 측근인 류승규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이 전달됐다고 알려졌으나 나중에는 이 의원과 류승규 전 의원에게 각각 1000만 원씩 전달됐다는 얘기까지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두 의원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 의원은 "단돈 1원도 받지 않았다"라고 했고, 김 의원도 "황당한 이야기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은 지난 6월 이 의원과 김 의원에게 총 세 차례 소환을 통보했다. 하지만 두 의원은 모두 검찰의 소환을 거부했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27일 검찰에 출석하기로 했다가 연락하지 않은 채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6월 30일 대구고검에서 기자들을 만나 "본인들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더 정확하다"라고 강한 소환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7월 2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적힌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는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 홍문종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 6명은 불기소했다.

특별수사팀은 "수사과정에서 금품거래 의혹이 제기된 김한길·이인제 의원이 소환에 불응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라며 "계속 수사키로 했다"라고 밝혔다. 수사할 여지를 남긴 발언이었다. 하지만 특별수사팀은 사실상 해체됐고, 일부 검사들만 공소유지(이완구·홍준표)에 관여하고 있다.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특별수사팀이 축소돼 홍준표·이완구 재판에만 참여한다"라며 "(나머지 의혹 수사는) 대검 반부패부로 넘어갔다"라고 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현역 의원으로서 불체포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계속 출석을 거부할 경우 이들을 강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서면조사한 뒤 기소할 것이다"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두 의원을 소환할 것이라는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국정감사, 예산심사 등 국회 일정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검찰의 소환의지가 사실상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경남기업 전 고문 "'이인제 요청으로 측근에게 2000만 전달' 진술"

검찰이 이인제·김한길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포착한 것은 '성완종 금고지기'로 불리는 한장섭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 덕분이었다. 경남기업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한장섭 전 부사장이 검찰에서 김한길, 이인제 등 다 불어버렸다"라며 "경리담당 부사장이었으니까 그런 일을 잘 알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한장섭 전 부사장은 지난 2009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경남기업의 계열사인 대아레저산업과 대원건설산업 등의 회사자금 130억여 원을 성 전 회장의 개인 명의 통장으로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11월 13일).

특히 한 전 부사장은 검찰에서 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인사로 A씨를 지목했다. A씨는 경남기업에서 고문을 지냈다. 경남기업의 한 전직 임원은 "A씨는 통일민주당 때부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는데 이인제 의원과 친했다"라고 전했다.

한 전 부사장이 A씨를 지목한 뒤 검찰은 그를 10차례 이상 소환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16일과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난 6월이었다"라며 "검찰이 소환조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당장 사달을 낼 것처럼 저를 열 몇 번이나 불렀다"라고 전했다.

"원래 이인제 의원건으로 부른 건데 검찰은 더 캐려고 했다. '당신이 이인제 의원 말고 더 돈 심부름한 거 있을 것 아니냐? 심대평 대표나 변웅전 전 의원에게도 돈 심부름한 것 다 불라'고 말이다. 다른 건에서는 드러난 게 없었고, 이인제 의원 건만 검찰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A씨가 검찰의 소환조사에서 자신이 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A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성 전 회장이 지난 2012년 4월 총선 당시 이 의원의 요청으로 그의 측근인 류승규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한 전 부사장이 검찰에서 'A씨가 이인제 의원을 준다며 돈을 가져갔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검찰은 내가 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봤다"라며 "하지만 나는 검찰에서 '이인제 의원의 요청으로 류승규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라고 주장했다.

대검 반부패부장 "법대로 한다"... 김수남 후보자는 과연?

A씨가 검찰에 진술한 내용 가운데 "이인제 의원의 요청으로 전달했다"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이 이 의원을 소환조사해야 할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의 진술이 나왔다면 검찰은 A씨 진술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 의원을 소환조사해야 한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A씨의 진술에 의심의 여지가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2000만 원을 전달받았다는 류승규 전 의원과 류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인제 의원 모두 소환조사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A씨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을 소환하지 않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이자 여당 인사 봐주기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검찰도 성 전 회장이 제공한 2000만 원이 류승규 전 의원이 아니라 이인제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확신하면서 A씨를 10차례 이상 소환했다는 점이다. A씨는 "내가 이 의원이 아니라 류 전 의원에게 2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하니까 (진술을 바꿔보기 위해) 검찰이 그렇게 10차례 이상 부른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A씨는 "김진태 총장도 당시 대구에서 '이인제.김한길 의원은 짚어볼 게 있기 때문에 소환해야 한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그 이후 흐지부지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를 열 몇 번씩 불렀는데도 (소환조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수사가) 용두사미된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의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김수남(56, 대구) 검찰총장 후보자
 김수남(56, 대구) 검찰총장 후보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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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서는 ▲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사건 ▲ MB 사돈 효성그룹 총수 일가 비자금사건 ▲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사건 ▲ 유유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사건 ▲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개인정보 불법조회사건 ▲ MB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사건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딸 교수 채용 특혜 의혹사건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사건 ▲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유출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다루어진다.

여기에다 국무총리까지 사퇴로 몰고 간 성완종 리스트사건도 포함시켜야 한다. 김수남 후보자는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검찰총장을 보좌하던 대검 차장(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이었고, 지금은 검찰 총수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공명정대했는지, 이인제·김한길 의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남은 의혹들을 어떻게 수사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일단 윤갑근 대검 반부패부장은 16일 기자단과 한 만찬 자리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이인제·김한길 의원은) 법대로 처리한다"라며 "그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여환섭 대검 대변인도 "성완종 사건은 수사가 다 끝난 게 아니다"라며 "계속 진행중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서게 될 김 후보자의 답변이 기다려진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성완종 리스트, #이인제, #김수남, #김한길, #경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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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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