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다>의 한 장면 타인의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시은(이유영)은 장우(주원)을 도와 용의자의 뒤를 밟는다.

▲ <그놈이다>의 한 장면 타인의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시은(이유영)은 장우(주원)을 도와 용의자의 뒤를 밟는다. ⓒ 상상필름


<그놈이다>의 배경은 21세기 OECD 국가의 상식이 조금도 닿지 않는 2015년의 어느 대한민국 어촌입니다. 교복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닌 것이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또 거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그런 마을이요. 어지간한 마을 주민들끼리는 서로의 이름부터 웬만한 가정사까지 다 아는 그런 폐쇄적인 동네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장우(주원)는 이 폭력적인 동네에서 부모 없이 착한 여동생을 자식처럼 키우며 사는 청년입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네,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합니다. 장우는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동생의 천도재를 치릅니다. 그러던 도중,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의식에 사용된 놋그릇이 동네 약국 주인장(유해진) 앞에 딱 멈추는 일이 생겨요. 그리고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는 능력 탓에 주민들에게 '재수 없는 년' 취급을 받는 동네 처녀 '시은'은 여동생의 죽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경찰은 사건을 대충 마무리 지으려고만 하는 상황. 범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우는 '놋그릇 사건'과 시은의 초능력을 근거로, 약국 점장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스스로 수사를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참신한 소재, 진부한 설정... 아쉬움 크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천도재 도중 어떤 이 앞에서 놋그릇이 멈추었다'는 이유로 어떤 누군가를 범죄 용의자로 확신하고, 또 마을 사람들이 재수 없는 여자로만 취급하는 어떤 여성의 말을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로 취급하는 주인공의 태도였습니다. 저는 이 태도가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잘 쓰인 각본 탓이면 굳이 '흥미롭다'고 표현하진 않았겠죠. 사실 각본 자체에선 영화의 비과학적 설정을 관객에게 구태여 설득하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아요. 대신, <그놈이다>의 리얼리티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생합니다. '영화 속 마을에 대한 사실적 묘사' 말입니다. '치안은 극도로 열악하고, 경찰의 무능과 무책임함은 극에 달해 있으며, 여성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있고, 결국 어느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되어도 책임은 다시 그 여성에게로 돌아가는' 그런 마을이요.

관객들은 이런 마을이 실제로도 존재함을 알고, 또 영화는 그것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지요. 바로 그 과정에서 다른 '말도 안 되는 설정'들까지 덩달아 사실성을 얻는 모양새가 된 겁니다. 아닌 말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소녀 귀신의 존재가, '생글생글 웃고 다녔다'는 이유로 여성을 살인하는 범죄자들이 실재하는 '현실'보다 딱히 더 초현실적일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잘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구조입니다. 영화는 사건의 진범을 찾는 추리물의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진범이 약국 점장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죠.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작품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영화는 '수사에 비과학적인 요소들이 동원된다'는 사실로 재미를 주고 싶어 하지만 사실 '물증을 모아 용의자가 범인임을 밝혀내는 과정'이란 점에서 장우와 시은이 하는 것은 '과학수사'와 그렇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소녀 귀신이 애를 써도 이야기는 한없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약국 점장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도, 그전까지의 복선이 느슨해 그저 갑작스럽게만 느껴지고요.

또 다른 문제는, 악역인 약국 점장의 캐릭터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관객들은, 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약국 점장이 '동네에서 평판 좋고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실상은 양어머니로부터 받은 아동학대 탓에 여성혐오 연쇄살인범이 돼 버린 사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놈이다> 속 약국 점장을 실재하는 존재로 믿고 무서워하기엔, 우린 '알고 보니 미치광이 살인범인 옆집 아저씨' 캐릭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놈이다>의 약국 점장은 다른 공포영화에서 잠시 출장 나온 연쇄 살인마처럼 보여요. 양어머니 학대 탓에 여성혐오자가 됐다는 설정은 진부합니다.

결국 <그놈이다>는 그럴싸한 설정만 하고 100분 이상의 러닝타임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사실만을 증명해낸 '범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놈이다>는 CGV아트하우스 배급 영화로서는 드물게 10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이 나라의 후미진 곳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어떠한 폭력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절실한 고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영화적인' 장점으로 보긴 어렵겠지요. 단편 영화계에선 명성이 자자한 <목두기 비디오>의 윤준형 감독이라,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 작품입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그놈이다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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