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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죽음학'(death studies)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죽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정년하고 내 나이도 70줄에 접어들었고, 재작년 여름 형님이 80세를 넘기고 운명하신 게 나로 하여금 '죽음' 문제를 좀 더 현실적으로 떠올리게 한지도 모르겠다. 아버님이 예순 아홉에 돌아가셨으니, 그 시절 기준으로 보면 내 나이가 어느덧 자연사(自然死) 무렵에 접어든 게다.

지난 해외여행 길에 나는 최준식(한국죽음학회 회장) 교수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2014)라는 책을 장거리 비행에 대비해서 챙겨 갔다. 그러고도 이 책을 세 번이나 더 읽고  내친 김에 '죽음공부에 대하여'는 글도 한 편 내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또 최준식 교수의 죽음학에 대한 이런저런 저술과 번역서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죽음학 책들은 거의 탐독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의 <The Map of Heaven>(2014)이라는 책도 하나 구입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작년에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 1위에 올랐다는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Being Mortal>(2014)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한 <어떻게 죽을 것인가>(2015, 김희정 옮김)를 발견하고 단박에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죽음학에 관심을 가지고 정리한 글은 철학적·종교학적 측면에 치우친 나머지 너무 추상적이라는 감이 들었다.

의료인들도 잘 모르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다루는 법

삶의 마지막 단계 성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의 마지막 단계 성찰 <어떻게 죽을 것인가>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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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화와 질병문제 그리고 의료완화와 호스피털 지원(hospital care) 문제 등을 미국의 현실과 최근 동향 중심으로 전문 의사이자 윤리철학자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가완디는 과학기술 시대에 인간의 죽음 과정이 의학적 경험으로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이렇게 말한다.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은 삶을, 더 오래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이 들어 죽어가는 과정은 의학적 경험으로 변질되었고, 의료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의학계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이 문제를 다룰 준비가 놀라울 정도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현실이 대체로 주목받지 못하는 까닭은 삶의 마지막 단계가 점점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1945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자 이 비율은 17%로 떨어졌고,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에서 노화와 죽음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겪는 일이 일상화 되어 버렸다.

변화 속도가 좀 더 빨랐을 뿐,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 집 경우만 해도 1969년에 아버지가 운명하실 때 병원에 가는 걸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온가족과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아버지 장례를 눈 덮인 들판과 낙동강을 건너 5일장으로 장엄하게 치러 주었다.

그러나 90대 중반을 넘기기까지 장수한 어머니는 약 10년 전에 구미병원에서 우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짚불 사그라지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둘째 형님은 의학적으로는 벌써부터 한계를 넘은 육신을 이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하며 술고 담배도 끊지 않는 등 당신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병원에 가지도 않고 재작년에 집에서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형님의 삶은 내가 봐도 파격적인 면이 있었고,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비관적인 상태였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삶의 존엄을 지켜냈다. 하여 나는 형님의 삶보다 죽음을 존경하게 되었다.

의학계는 질병에 대한 공격적인 처치에 급급한 나머지 노년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마무리하도록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고민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 의사로서 저자는 죽음은 정상적인 일이고 사물의 자연스런 질서라는 걸 추상적 수준에서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들이 격리된 의료체제에서 가망 없는 치료를 강요당하는 걸 문제 삼지만, 어찌하든지 죽음을 기피하거나 미루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미련도 문제다. 결국 이게 서로 맞물려 본의 아니게 아주 잘못 돌아가는 꼴이 된 게다.

죽음학 연구자인 정현채(서울대 의대 내과) 박사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하지만, 나이 들고 병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필요한 건 '삶에는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라 했다.

저자는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 혹은 자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심각한 질병이나 노환이 덮칠 게다. 그건 해가 지는 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부자연스러운 고령사회의 문화

미국의 의료계는 늙은이의 신체기능에 등급을 매기는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신체 독립성을 판정하는 8가지 기준으로 화장실 가기, 밥 먹기, 옷 입기, 목욕하기, 머리 손질 등 몸단장하기,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기, 의자에서 바로 일어나기, 걷기 등이 포함 된다. 또한 일상생활의 8가지 독립활동으로 쇼핑, 요리, 가사일, 빨래, 약복용, 전화사용, 외출, 재정관리 등을 혼자서 해내지 못하면 자립해서 살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판정한다.

노인병 전문의에 의하면, 노화과정에 관한 한 단일하고 일반적인 매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인간의 노화 과정은 점차적이면서도 가차 없이 진행된다. 노인병 전문가인 실버스톤 박사는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이라 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노인들이 허물어지는 기간은 점점 더 늦춰지면서 그 속도도 완만하다.

노인들은 상태가 악화되어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순간 이외로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노년은 항상 내리막길이고, 결국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시점이 오고 만다. 노령은 의학적으로 진단명이 아니다. 우리는 현대 의학의 힘으로 여기저기 보수하고 기워 가며 겨우 생명을 유지하다가 신체기능이 종합적으로 무너지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다.

나이 듦(노화)은 우리 몸이 여기저기 노쇠해진다는 의미다.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 치아인데 나이 들면 가장 먼저 닳는다. 선진국 사람들은 60세가 되면 평균해서 치아의 3분의 1을 잃고, 80대 중반을 넘어서면 약 40%가 치아를 모두 잃는단다. 65세 즈음에는 인구의 절반이 고혈압이고, 50세 이후부터 골밀도는 해마다 평균 1%씩 떨어지기 마련이다.

건강한 60세의 망막에 도달하는 빛은 20세 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80대 중반에 접어들면 약 절반은 교과서적 의미의 치매 증세를 보인다.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지금 우리 인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너무 오래 살고 있다. 하여 노화현상은 자연스럽지만, 그 문화는 부자연스런 과정이 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이른바 세대 간 인구구성의 '직사각형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는 50세 성인과 5세 유아의 숫자가 맞먹지만, 30년 후가 되면 80세 이상 인구와 5세 이하의 인구가 맞먹을 게다. 그런데 노인병과 성인 1차 진료 분야의 수입은 의학계에서 가장 낮아, 미국에서는 1996년과 2010년 사이에 노인병 전문의 수가 25%나 줄었단다.

노인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관리하는 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노인들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낙상(落傷), 곧 넘어지는 일이다. 미국 노인의 약 35만 명이 매년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는데, 그 중 40%가 결국 요양원에 들어갔고, 20%는 다시 걷지 못했다. 노인이 넘어지는 주요 원인 세 가지는 균형감각 쇠퇴, 네 가지 이상 처방약 복용, 그리고 근육 약화다. 이런 위험요인을 가지지 않은 노인이 1년 사이 낙상할 확률은 12%지만, 위 세 가지 요인들을 모두 지닌 노인의 낙상 확률은 100%에 가깝단다.

노화는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몸 의 마지막 예비 장치마저 모두 고장 날 때까지 어떤 의학적 도움을 받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며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쪽이 더 좋은 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늘그막에 자손들이나 차세대에게 부담만 안겨주면서 구차하게 연명해서 살아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양원은 없어져야 마땅하지만, 대안이 없다

하지만 노쇠한 상태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독립성 혹은 자율성을 가능한 한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저자는 미네소타대학 연구원들의 보고 사례를 든다. 건강상의 고위험군(70세 이상 568명)을 무작위로 선택한 절반은 노인병 전문의와 간호사의 지원을 받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통상적으로 의사들 진료에 맡겼다.

18개월간 양쪽 그룹에서 모두 10% 정도가 사망했으나, 노인병 전문 팀의 진료지원을 받은 팀은 상대 그룹보다 장애발생이 4분의 1 적었고, 우울증 환자도 절반이나 적었다. 또 의료진의 왕진을 요하는 경우도 40%나 적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놀라운 결과다. 이를 두고 가완디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과학자들이 생명을 연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요양원에 가거나 우울증에 걸려 비참하게 마지막을 보낼 확률을 줄이는 장치-자동 노쇠 방지 장치라 하자-를 개발한다면 모두들 그걸 사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의사가 갈비뼈를 열어 그 장치를 심장에 꽂아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75세 이상이면 누구나 그걸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의회에서는 40대가 그 장치를 장착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라며 청문회를 열 것이고, 의대생들은 자동 노쇠 방지 장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며, 월스트리트에서는 이 장치를 생산하는 회사의 주가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저자는 현실에서 그 상상의 장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병 전문팀이란다. 그러나 재정적자라는 이유로 아직은 병원에서 노인병 전문의 역할은 퍽 제한적이다. 실버스톤 박사는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노인병학계의 최고 권위자였지만, 여든일곱 노인이 된 그는 부인과 함께 매사추세츠주 캔턴에 있는 은퇴자촌(Orchard Cove)에 살고 있다. 실버스톤 부부는 숲이 내려다보이는 침실 두 개가 딸린 널찍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일흔다섯 넘은 노인들만 돌아다닌다는 점을 빼면 고급 호텔 같은 분위기란다.

거실에는 피아노가 있고, 책상에는 그가 '영혼을 위해' 여전히 구독한다는 의학 저널들이 널려 있다. 청소, 시트교환, 저녁식사가 기본적으로 제공되지만, 필요한 시기가 되면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의료와 생활지원을 해 주는 거주방식) 형태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러면 매일 세끼 식사가 제공되고 날마다 최대 한 시간까지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단다.

근데 이곳은 일반 은퇴자촌보다 비싼 것이 흠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인 빈곤이 50% 이상으로 OECD 국가(29개국) 중 가장 높은 나라이고, 이런 은퇴자 촌에 입주할 수 있는 고액연금 수급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우리가 노인이 된다는 걸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운이 좋고 꼼꼼하게 자기 관리-건강한 식습관, 운동, 혈압 조절, 적절한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를 한 사람은 오랫동안 그럭저럭 살아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이가 들면서 점점 많은 것들을 잃어가다 보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충족하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버거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삶의 상당 기간을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다.

노화과정은 길어져도 아무런 준비 없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떻게 살 것인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가 뭔가 해 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에 이르게 된다"는 게다. 나이가 들어 복합 노인 주거 단지 같은 곳에 살더라도 그곳 노인들이 "여긴 집이 아니야"라고 느낀다면 그건 실패한 시설과 다를 바 없다.

저자가 강조하듯, "진짜 집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척 소중한 문제다. 물고기에게 물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노인의 입장에서 요양원은 없어져야 마땅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요양원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남아 있는 게 가족이지만, 가족들은 모두가 제 살기에 바쁜 세상이다.

미국에서 어시스티드 리빙은 독립 주거와 요양원의 중간 정도 단계로 간주된다. 2010년에는 이런 주거형태에 사는 노인들의 수가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의 수와 거의 맞먹을 정도가 됐단다. 여기서는 소위 '연속성 있는 보살핌'이 강조되지만, 그것은 노인들을 유치원생 취급하는 상황을 영속 시키는 개념일 뿐이다.

저자는 이런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다. 이제 우리 시대의 노인들은 이런저런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게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게 설계된 삶이라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가완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쇠약해지고 의존적인 노인이 되면 그러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저자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이 자율성을 갖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례 중심으로 제기한다. 흔히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疫病)으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든다. 인간은 어떤 대의(大義)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 자신을 넘어선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걸 우리는 흔히 '충성심'(loyalty)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내면의 심층에 자리 잡은 '초월'(transcendence), 즉 초월적 욕구가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종교는 이런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일 터.

사람들은 나이 들어 그가 직면하는 한계와 역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율성-자유-을 누리고 싶어 한다. 가완디는 이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핵심적 가치라 했다. 그는 드워킨(R. Dworkin, 1986)의 논문을 인용해 "자율성의 가치는 우리가 일관성 있고 분명한 각자의 개성, 확신, 관심 등에 따라 자신의 삶을 구체화할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자율성은 우리가 남에게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며 살도록 한다"는 게다.

사람은 잘 살면 잘 죽는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산다는 건 곧 자신의 삶을 본래의 모습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조용한 투쟁의 과정이다. 정년 후에 집사람이 나더러 혼자서 시간을 얄밉게 잘 보낸다고 했지만, 사실 난 혼자 있는 시간을 나름대로 즐길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루 할아버지는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내지만 행복해 한다. 그는 아침식사 후에는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 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본단다. 즐겨 보는 체널은 MSNBC를 보는 리버럴이다.

그는 민주당이라면 드라큘라한테라도 표를 던질 사람이란다. 아직도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과 <뉴스위크>를 정기구독하고 여전히 책도 읽는다. 그는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단다. 저녁식사 후에는 침대에 누워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루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동양에 '카르마'라는 게 있어요.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지."

저자는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의학적 충동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강조한다. 말하자면 너무 깊이 개입해서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이겨내야 한다는 게다. 그러면 대체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정해진 답이 없다. 미국에서는 메디 캐어(medical care) 비용의 25%가 생의 마지막 1년에 접어든 5%의 환자에게 사용되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최후 1〜2개월에 집중된다는 게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쯤에서 가완디는 의료완화 조치와 호스피스 캐어(hospice care)를 권고한다. 호스피스 캐어는 간호사, 의사, 성직자, 사회복지사 등을 동원해서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 삶을 최대한 편안하게 누릴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호스피스 지원을 받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원을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에서도 호스피스지원을 의료보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미국에서 호스피스 지원을 받는 빈도가 점차 늘어나 2010년에는 사망자의 45%가 이 서비스를 받다가 임종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들 중에 절반 이상은 집에서 호스피스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관계가 지배해 왔고, 그 다음 유형이 '정보제공적' 관계다. 세 번째 유형은 '해석적'(interpretive) 관계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의사-환자 관계 유형은 해석적 관계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다른 하나는 그 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는 해석적 관계의 의사가 절실하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 Kahneman) 박사는 '정점과 종점 규칙'(peak-end rule)을 제기하면서 우리에게는 매 순간을 동일한 비중으로 견뎌 내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시간이 지난 후 최악의 시점과 종료 시점 단 두 군데에만 비중을 두어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평가할 때는 단순히 매순간을 평균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험하는 자아와는 달리 기억하는 자아는 기쁨의 정점이나 비참함의 심연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해석하려 한다. 이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결말이 중요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중요하다.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마침내 저자는 자신처럼 좋은 의사였던 아버지(인도 출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을 끝맺는다.

"우리 아버지는 자신의 충성심이나 정체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뜬 후의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밝혀 두었다. 우선 아버지는 시신을 화장해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세 곳에 재를 뿌리라고 했다. ...(중략) 아버지는 늘 인생은 짧고 한 사람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아주 작다는 걸 이해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또 자기 자신을 역사의 한 고리로 생각했다."

아버지의 평화로운 죽음은 저자인 아들에게도 평화를 안겨 줬을 게 틀림없다. 이제 우리도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선택할 때가 되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란다. 사람은 잘 살면 잘 죽는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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