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이런 뒤집기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패색이 짙었던 홈 팀은 연장전 후반전 추가 시간에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활짝 웃었다. 아니, 그라운드는 눈물 바다로 변했다.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단짝 골키퍼 둘이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기구한 운명이 야속할 뿐이었다.

최인철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현대제철이 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아시아드경기장에서 열린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이천 대교와의 홈 경기에서 연장전에 한 골씩 주고받았지만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김정미가 마지막 골을 터뜨리며 4-3으로 이겼다. 여자축구 통합 챔피언 3연패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골키퍼 김정미의 높은 벽 실감

일주일 전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놀라운 순발력으로 무실점 선방을 기록했던 인천 현대제철의 골키퍼 김정미는 여전히 인천 현대제철의 든든한 수호신이었다.

키다리 골잡이 박은선을 센터백 자리에 둔 원정 팀 이천 대교는 과거 챔피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활동량으로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했다. 이현영과 김상은이 매우 공격적으로 움직였으며 중앙 미드필더 권은솜이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예상했던 대로 권은솜에게 세컨 볼 중거리 슛 기회가 여전히 주어졌다. 28분에 첫 번째 고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남자 선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발리 킥 순간이었지만 오른발 중거리 슛 능력이 뛰어난 권은솜은 회심의 오른발 스윙을 자랑했다.

하지만 인천 현대제철의 골문 앞에는 최고의 골키퍼 김정미가 버티고 있었다. 김정미는 권은솜의 오른발 끝을 떠난 발리 슛을 향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정확히 잡아냈다. 1차전 명승부의 주역이 건재하다는 장면이었다.

김정미는 후반전 시작 후 4분 만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기막히게 실점 위기를 넘겼다. 49분, 이천 대교의 골잡이 이현영이 상대의 오프 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며 달려가 오른발 슛으로 골을 노렸지만 각도를 줄이고 달려나와 몸을 내던진 김정미의 손 끝에 걸리고 말았다.

'슈퍼 세이브' 전민경도 있다!

득점 없이 시작한 후반전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공격 장면의 연속이었다. 여자축구가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한번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명장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는 인천 현대제철 김정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반대편 골문을 지키고 있는 이천 대교의 골키퍼 전민경도 못지 않은 실력자였다. 김정미의 그늘에 가려 있던 그녀였기에 그 활약은 남달랐다.

전민경의 슈퍼 세이브는 57분에 빛나기 시작했다. 오른쪽 끝줄 가까운 쪽에서 인천 현대제철이 직접 프리킥 기회를 얻었고 왼발잡이 주장 이세은이 절묘하게 감아찼지만 전민경이 몸을 날리며 손끝으로 정확하게 쳐냈다.

전민경의 순발력은 87분에 더 빛났다. 인천 현대제철 오른쪽 날개공격수 따이스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낮게 날아왔지만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멋지게 막아냈다.

그리고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후반전 종료 휘슬도 울렸고 더 이상 양보 없는 연장전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64분에 인천 현대제철의 골잡이 비야가 찬 회심의 왼발 감아차기가 이천 대교 골문 왼쪽 기둥을 때리는 순간이 자꾸만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연장전 믿기 힘든 드라마 그리고 승부차기

양팀 선수 여러 명이 근육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연장전 시작 후 8분 만에 원정 팀 이천 대교의 멋진 선취골이 터졌다. 지난주 월요일 이천종합운동장에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고도 김정미의 슈퍼 세이브에 가로막혔던 김상은이 비로소 웃었다.

교체 선수 김아름의 절묘한 패스가 제대로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렸다. 이 기회를 김상은이 달려가며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지은 것이다. 아무리 김정미가 뛰어난 순발력으로 대응해도 김상은의 발등에 제대로 실린 공을 쳐낼 수는 없었다.

경기는 이대로 끝나가는 듯 보였다. 이천 대교 선수들은 라인을 내리지 않고 정상적인 밸런스를 유지하며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연장전 후반도 거의 시간이 다 흘러가고 있었다.

대기심이 마지막 추가 시간 2분을 표시했고 인천 현대제철의 마지막 공격이 왼쪽 측면을 따라 이어졌다. 비야의 재치있는 드리블과 패스가 빛났다. 그 순간 오현정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페널티킥을 선언한 것이다. 선취골을 도운 김아름이 인천 현대제철 주장 이세은을 고의적으로 밀어 넘어뜨리는 장면이 그대로 적발된 것이었다.

추가 시간도 다 지나갔으니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은 비야의 왼발 끝에 모두 모아졌다. 그녀의 11미터 킥은 침착하게 오른쪽 구석으로 날아가 그물을 흔들었다. 기적의 동점골이 연장전 후반 추가 시간 3분에 터진 것이다.

경기는 곧바로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축구도 실수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이 비정한 승부차기가 말해주고 있었다. 먼저 실수를 저지른 쪽은 이천 대교였다. 불혹의 노장 미드필더 쁘레치냐가 찬 오른발 킥이 왼쪽 기둥에 맞고 반대쪽으로 벗어난 것이다.

인천 현대제철의 네 번째 키커 김나래도 오른발 인사이드킥 방향을 잘못 트는 바람에 이 마지막 승부도 다시 원점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가 등장했다. 그런데 양팀 감독은 똑같이 골키퍼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먼저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선수는 이천 대교의 골키퍼 전민경이었다. 그녀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낮게 굴러서 왼쪽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장갑으로 얼굴을 감싸는 장면이 안타깝게 전해졌다.

그리고 인천 현대제철의 마지막 키거 김정미 골키퍼가 공을 내려놓고 오른발 킥을 날렸다. 그녀의 오른발 끝을 떠난 공은 정확하게 왼쪽 구석으로 날아가 꽂혔다. 끝이었다. 김정미의 수많은 슈퍼 세이브와 마지막 페널티킥이 팀의 3연패 위업을 알렸다.

3개월 차이로 태어나 친구나 다름없는 두 골키퍼의 기구한 운명은 이렇게 갈라지고 말았다. 이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는 이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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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5 W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 결과(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아시아드 경기장)

★ 인천 현대제철 1-1 이천 대교 [득점 : 비야(연장30+3분,PK) / 김상은(연장8분,도움-김아름)]
- 1, 2차전 합산 결과 1-1 무승부, 승부차기 4-3으로 인천 현대제철 우승[통합 3연패 달성]

◎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
FW : 비야
AMF : 정설빈(72분↔전가을), 이민아(53분↔유영아), 따이스(연장17분↔신지혜)
DMF : 이세은, 조소현(53분↔김나래)
DF : 김두리, 김도연, 임선주, 김혜리
GK : 김정미

◎ 이천 대교 선수들
FW : 아현영(78분↔쁘레치냐)
AMF : 김상은, 김지영, 문미라
DMF : 권은솜, 김희영(65분↔김아름)
DF : 이은미, 박은선, 이은지(86분↔김혜영), 서현숙(46분↔이세진)
GK : 전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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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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