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선수들은 '오렌지군단'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 보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무적함대' 스페인에게 아쉽게 0-1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브라질을 3-0으로 주저앉히며 당당히 3위를 차지했던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

다니 블린트 감독이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4일 오전 3시 45분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EURO(유럽축구선수권대회, 아래 '유로') 2016 예선 A조 마지막 10라운드 체코 공화국와의 홈 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최종 4위로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전반전 2골 실점, 멀어진 꿈

3위 터키와 승점 2점 차이로 벌어져 있던 4위 네덜란드의 목표는 무조건 승리뿐이었다. 같은 시각에 콘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키와 아이슬란드의 경기에서 터키가 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네덜란드와 터키를 상대하는 체코 공화국과 아이슬란드는 승패와 상관없이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바람은 충분히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냉정한 현실이 점점 느껴졌다.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체코 공화국 선수들에게 설렁설렁 뛰는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갈 길 바쁜 네덜란드 선수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듯 효율적인 역습 전술을 펼치며 전반전에만 두 골을 먼저 터뜨리고 달아나버렸다.

경기 시작 24분 만에 체코 공화국의 오른쪽 풀백 파벨 카데라벡이 오른발 감아차기로 선취골을 넣었다. 스칼라크의 공간 패스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경기 전까지 아홉 경기를 치르며 11골이나 내준 네덜란드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11분 뒤 네덜란드는 더 어이없는 실점을 기록했다. 체코의 왼쪽 옆줄 던지기 공격 상황에서 토마스 네치드의 패스를 받은 요세프 슈랄이 네덜란드 센터백 판 다이크를 쉽게 따돌리고 오른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네덜란드가 창시하며 현대 축구의 상징적인 전술로 자리잡은 토털 사커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네덜란드의 다니 블린트 감독은 빠른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39분에 자이로 레이발트를 빼고 골잡이 로빈 판 페르시를 들여보내 보다 공격적인 전술 변화를 주문했다.

판 페르시와 멤피스 데파이의 불편한 관계

네덜란드 벤치가 판단한 과감한 공격 주문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빛났다. 43분에 체코 공화국의 마렉 수키가 다미르 스코미나(슬로베니아)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다. 네덜란드 날개 공격수 멤피스 데파이의 단독 드리블을 고의적인 반칙으로 멈추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약 50분 동안 네덜란드는 1명 적은 체코 공화국을 상대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그런데 후반전 중반에 홈팬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믿었던 골잡이 로빈 판 페르시의 헤더 슛이 자신들의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66분, 체코 공화국의 오른쪽 측면 프리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수비에 가담한 판 페르시가 이마로 동료 골키퍼에게 백 패스한 공이 골문 오른쪽 구석에 제대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팬들로서는 얼마 전 알려진 판 페르시와 멤피스 데파이의 훈련장 충돌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멤피스 데파이가 43분에 상대 선수 퇴장을 유도하는 활약을 펼친 것과 판 페르시가 66분에 자책골을 헌납한 것은 너무나 대조적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관중석을 박차고 경기장을 나가는 네덜란드 홈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분 뒤 네덜란드 주장 스네이더르의 오른쪽 코너킥을 받은 골잡이 훈텔라르가 이마로 만회골을 터뜨렸고, 자책골을 넣었던 판 페르시가 83분에 교체 선수 도스트의 헤더 패스를 받아 왼발로 2-3 펠레 스코어를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의 뒷심은 거기까지였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터키 콘야에서 벌어진 경기 결과가 전해졌다. 터키가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아이슬란드를 이겼다는 소식이었다. 네덜란드가 대역전 뒤집기 드라마를 만들었어도 소용없다는 말이었다.

이제 네덜란드는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2016년 9월부터 시작하는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도 A조에 들어간 네덜란드가 강팀들과 섞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스웨덴, 불가리아, 벨로루시, 룩셈부르크를 상대해야 한다.

A조 3위 터키, 본선 직행 티켓 쥐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슬란드를 극적으로 이긴 터키가 승점 18점을 얻고 A조 3위를 차지했지만 다른 조에서 승점 19점을 얻은 3위 팀(C조 우크라이나, H조 노르웨이)을 따돌리고 유일하게 3위팀에게 주어지는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이는 마지막 I조가 모두 다섯 팀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나머지 조의 3위 팀 성적에서 해당 조 최하위 팀과의 상대 전적을 제외하고 3위 팀간의 승점 계산을 해야한다는 대회 규정 때문이었다. A조 3위 터키로서는 카자흐스탄이 마지막 경기에서 라트비아를 1-0으로 이겨주었기 때문에 라트비아가 최하위 6위가 되었고 터키는 라트비아와의 무승부로 인한 승점 2점만 삭감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이로써 유로(EURO) 2016 본선 진출국은 개최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체코 공화국, 아이슬란드, 터키, 벨기에, 웨일스, 스페인, 슬로바키아, 독일, 폴란드, 잉글랜드, 스위스, 북아일랜드,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알바니아가 추가되었다. 이제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는 티켓 4장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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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EURO 2016 예선 A조 10라운드 결과(14일 오전 3시 45분, 암스테르담 아레나)

★ 네덜란드 2-3 체코 공화국 [득점 : 얀 훈텔라르(70분,도움-스네이더르), 로빈 판 페르시(83분,도움-도스트) / 파벨 카데라벡(24분,도움-스칼라크), 요세프 슈랄(35분,도움-네치드), 판 페르시(66분,자책)]

★ 터키 1-0 아이슬란드

◇ A조 최종 순위표
1 체코 공화국 22점 7승 1무 2패 19득점 14실점 +5 *** 본선 진출!
2 아이슬란드 20점 6승 2무 2패 17득점 6실점 +11 *** 본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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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터키 18점 5승 3무 2패 14득점 9실점 +5 *** 본선 진출!(조 3위 중 가장 좋은 성적 / A조 경우 최하위 팀과의 상대 전적 제외 규정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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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덜란드 13점 4승 1무 5패 17득점 14실점 +3
5 카자흐스탄 5점 1승 2무 7패 7득점 18실점 -11
6 라트비아 5점 5무 5패 6득점 19실점 -13
축구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네덜란드 체코 공화국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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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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