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창·오재원 언쟁 '벤치클리어링'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5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초 넥센 공격 1사 1, 2루 때 희생번트를 친 서건창과 오재원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 서건창·오재원 언쟁 '벤치클리어링'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5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초 넥센 공격 1사 1, 2루 때 희생번트를 친 서건창과 오재원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가 포스트시즌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넥센과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1·2차전까지 3경기 연속 1점 차 승부가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각 팀의 치열한 승리욕과 팬들의 응원 열기도 점점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승리를 향한 과도한 열정은 종종 빗나간 오해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매 경기, 매 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포스트시즌은 선수·감독·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민해진다. 올해 가을야구에서도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두산의 2연승으로 끝난 잠실 시리즈에서 양 팀은 경기 중은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우천 뒤 조명 가동 문제를 둘러싸고 시작된 실랑이는 다시 넥센 서건창과 두산 오재원의 1루 설전과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염경엽 넥센 감독이 두산을 향하여 "야구를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상대가 자꾸 자극한다"는 '저격 발언'으로 기름을 부었다.

경기가 끝난 후 야구팬들도 이날 승부를 둘러싸고 온·오프라인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을 펼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반적인 경기 내용이나 승부처보다 벤치클리어링과 양 팀 감독들의 설전 등 주로 자극적인 '기 싸움'에 관한 내용이 더 주목받았다는 사실이다. 벤치클리어링의 빌미를 제공한 오재원이나 서건창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랫동안 오르내리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기 싸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은 각 팀의 승리욕과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야 하는 무대다. 자연히 신경전과 기 싸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대를 도발하고 아군의 투지를 고취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으로 기 싸움을 활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정규시즌 같았으면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도, 언론과 팬들에 의하여 주목받아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다. 과거에 비하면 프로의식이 성숙해지면서 선수도, 팬도 이제는 기 싸움을 '승부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기 싸움이 종종 선을 넘어서면 감정싸움으로 변질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가 2007년 한국시리즈다. 당시 SK와 두산의 대결에서 빈볼 시비에서 시작된 양 팀의 갈등은 3차전에서 급기야 수차례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지며 집단 충돌로 퍼졌다.

보통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더라도 십중팔구는 팀의 단합을 위한 보여주기식 제스쳐일 뿐 실질적인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선임 선수들은 앞장서기보다 적당히 상황을 봐가며 분위기를 추스르는 역할을 맡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두산 김동주와 SK 채병용은 말 그대로 난투극 일보 직전까지 갔고, 양 팀 선수들이 모두 흥분하여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때만큼은 그야말로 동업자 의식도 스포츠맨십도 실종된 '전쟁터' 그 자체였다. 시리즈의 최종 승패를 떠나 '이렇게까지 해서 이겨야 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선을 넘어선 양 팀의 갈등은 야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한국시리즈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았다.

2009년 기아와 SK의 한국시리즈에서도 내내 기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3차전에서는 기아 서재응이 SK 정근우와 말싸움을 벌이다가 욕설을 내뱉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도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양 팀 감독들도 번갈아가며 '사인 훔치기' 공방으로 장외 설전을 주고받았다. 2007년 한국시리즈처럼 물리적 충돌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한껏 달아오른 두 팀은 그해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불꽃 튀는 승부를 연출했다.

중요한 것은 기 싸움이 비록 승부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야구 그 자체의 본질을 헤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야구는 야구로서 경쟁해야지, 정도를 벗어난 플레이나 불필요한 신경전은 오히려 경기력을 망치고 수준 높은 야구를 보고 싶은 팬들의 볼 권리마저 침해하는 행위다.

감정싸움은 모두에게 안 좋다

항의하는 염경엽 감독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5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 초 염경엽 넥센 감독이 전일수 구심에게 라이트를 다시 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항의하는 염경엽 감독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5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 초 염경엽 넥센 감독이 전일수 구심에게 라이트를 다시 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앞선 사례들과 비교하면 이번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는 오히려 아직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화약고는 곳곳에 존재한다. 몇몇 특정 선수들의 이름이 집중적으로 자꾸 두드러지는 현상은 좋지 않은 징조다. 2차전 이후 벤치클리어링의 빌미를 제공한 두산 오재원은 가장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선수였다. 1루 수비 과정에서 타자 주자 서건창의 주루 동선을 명백히 방해한 오재원의 플레이를 둘러싼 비판은 '비매너' 논란으로 번졌다.

사실 다른 선수 같았으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그 장면만 놓고 봤을 때 당시 오재원의 플레이가 결코 정석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의로 다치게 하거나 다른 계산된 의도가 있었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 자리에 있었던 선수가 하필 오재원이라서 더 문제가 커졌다. 오재원은 과거부터 플레이스타일이나 과도한 승리욕을 둘러싸고 몇 차례 구설수가 있었던 데다 본인이 벤치클리어링의 중심에 선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더구나 넥센 서건창은 불과 몇 달 전 두산전에서 비슷한 상황에 큰 부상을 하여 몇 달을 재활해야 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당사자인 서건창의 입장에서 그 정도 어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재원 역시 박빙의 승부에 한참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성급한 대응이 더 큰 소동을 불렀다.

넥센 측이 이미 앞선 장면에서부터 몇 차례 두산 측에 기분이 상해있는 상황에서 오재원의 플레이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타이밍에 터졌다. 부적절한 플레이와 성급한 반응으로 일을 키운 것은 물론 오재원의 책임이 맞지만, 경기 후 선수들 간 대화로 차분히 오해를 풀고 갈 수 있을 만한 장면을 두고 특정 선수에게 계속 과도한 비난의 초점이 돌아가야 할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오재원이 논란을 감당하기 좋은 '악역' 캐릭터에 부합하는 선수였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마침 넥센은 1차전에 이어 2차전도 이틀 연속 1점 차로 패했다. 넥센 입장에서는 경기는 경기대로 풀리지 않고, 흐름으로도 상대적인 피해를 봤다고 느낄만한 장면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웬만하면 민감한 발언을 삼가던 염경엽 넥센 감독이 이례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은 경기를 치르면서 양 팀 사이에 감정이 계속 쌓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염 감독의 발언 역시 경기 패배나 갈등의 책임을 상대 팀에게 돌리면서 내부 결속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를 떠나서 오해가 오해를 부르고 갈등이 갈등을 누적하는 불편한 긴장관계가 오래 지속하는 것은 결국 양 팀 선수나 팬들에게 모두 좋지 않다. 상대와의 대립구도를 통한 감정싸움이 일시적으로 선수단에 자극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곧 경기력으로 반영된다는 보장은 없다. 최고의 경기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복 없이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냉철함에서 나온다. 선수들도 팬들도 조금은 예민함을 누그러뜨리고 야구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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