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전체 승률 2위(98승 64패)를 차지했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그리고 전체 3위(97승 65패)를 차지했던 시카고 컵스. 그러나 이들은 전체 1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00승 62패)가 같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 소속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지구 우승 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92승 70패)나 뉴욕 메츠(90승 72패)보다 승률이 월등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와일드 카드 자격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야 했다.

어찌보면 이들은 디비전 편제 때문에 억울하게 1라운드부터 모든 경기를 다 치러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피츠버그와 컵스 이전에 98승 이상으로 와일드 카드 자격을 얻었던 팀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있었다. 당시 같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뉴욕 양키스가 100승 이상을 거뒀던 까닭에 와일드 카드에 만족해야 했다. 와일드 카드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은 아무리 승률이 높아도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홈 어드밴티지를 적용 받지 못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와일드 카드 시리즈가 편성된 이후 대체로 리그 4위와 5위 팀이 시리즈를 치러왔으니(예외는 2003년 피츠버그 리그 3위), 와일드 카드 시리즈가 생긴 이후로 리그 2위와 3위가 시리즈에서 붙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러한 룰 때문에 3년 연속으로 와일드 카드 1위를 획득했던 피츠버그는 포스트 시즌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홈 어드밴티지 게임을 맞이하여 전의를 불태웠다. 공교롭게도 맞상대는 코리안 해적 강정호가 수비 도중 불의의 부상을 입어 시즌을 접게 된 계기를 제공한 컵스였다. 이에 피츠버그는 마침 홈 경기라서 벤치에 나와 있던 강정호를 소개하며 결의를 다졌다.

벤치 클리어링 위기 딛고 에이스의 진수를 보여준 아리에타

물러날 곳도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 두 팀은 에이스를 선발로 등판시켰다. 피츠버그의 에이스 게릿 콜과 컵스의 에이스 제이크 아리에타가 각각 팀의 운명을 짊어지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전날 아메리칸리그 와일드 카드 시리즈를 다시 보는 것처럼 승부는 의외로 쉽게 갈렸다.

컵스의 1번 타자 덱스터 파울러는 1회초 공격부터 안타로 출루하더니 2번 타자 카일 슈와버 타석 때 적시타가 터지자 바로 홈까지 달려 첫 득점에 성공했다(1-0). 파울러와 슈와버는 3회초 공격에서도 콜을 괴롭혔다. 1사 상황에서 파울러가 다시 안타로 1루를 밟았고, 다음 타자 슈와버는 사실상 승부를 가른 투런 홈런을 날리며 점수 차를 3점으로 벌렸다(3-0).

컵스의 5회초 공격, 이번에는 파울러가 콜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 날 컵스의 점수는 파울러와 슈와버 둘이서 모두 책임을 진 셈이다. 전날 뉴욕 양키스의 선발투수 다나카 마사히로가 홈런 2방에 무너졌는데, 이 날 피츠버그의 콜도 홈런 2방에 5이닝 6피안타(2피홈런) 1볼넷 4탈삼진 4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78구).

그러는 동안 컵스의 에이스 아리에타는 5회까지 앤드류 매커친에게 단 1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피츠버그의 타선을 봉쇄했다. 그러나 6회말에 선두 타자인 대타 트래비스 스나이더에게 안타를 허용한 뒤 아리에타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레고리 폴랑코를 3루수 직선타로 막은 아리에타는 조시 해리슨을 몸 맞는 공으로 내보내고 매커친을 유격수 실책으로 내보내면서 1사 만루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스탈링 마르테가 병살타를 날리면서 아리에타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피츠버그는 프란치스코 서벨리(5회말)와 해리슨의 사구에 대한 보복으로 7회초 아리에타의 타석 때 세 번째 투수 토니 왓슨이 보복성 빈볼을 던졌고, 아리에타가 공에 맞았다. 에이스가 공에 맞은 순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지만 션 로드리게스의 퇴장 이외의 더 이상 큰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 결국 아리에타는 9회까지 4피안타 무볼넷 2사구 11탈삼진 완봉승으로 경기를 혼자서 책임졌다(113구). 타석에서도 출루를 기록했던 아리에타는 도루까지 성공하면서 2009년 클리프 리(당시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서 도루를 기록한 투수가 됐다.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두 자릿수 탈삼진으로 완봉승을 기록한 선발투수들 중 볼넷이 없었던 투수는 이 날 아리에타가 최초였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와일드 카드 시리즈의 승리투수는 공교롭게도 각 리그의 사이 영 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선수들이 승리투수가 되면서 단판 승부에서 에이스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보여줬다.

마지막 월드 챔피언 1908년... 염소의 저주 풀어낼 절호의 기회

사실 컵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들 중 포스트 시즌에 대한 한이 가장 크게 맺힌 팀이다. 마지막으로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시즌은 1908년으로, 같은 시기 우리나라 역사는 대한제국 순종 2년이었다. 그리고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던 시즌은 1945년이었다.

컵스는 1945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 클라우드 파시우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는데, 이 완봉승이 아리에타가 승리하기 이전 컵스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 완봉승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에 컵스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빌리 사이어니스라는 관중이 리글리 필드에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 했는데, 당시 구단주였던 리글리가 그의 입장을 막았던 것이다. 이에 사이어니스는 강제 퇴장을 당하면서 "다시는 리글리 필드에서 월드 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저주가 현실이 되어 컵스는 1945년을 마지막으로 월드 시리즈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월드 시리즈에 그나마 근접했던 시기는 2003년이었다.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컵스는 4차전 맷 클레멘트의 호투(7.2이닝 3실점)로 3승 1패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컵스는 이후 3경기를 모두 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컵스는 2007년과 2008년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그 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다저스에게 모두 스윕패를 당하고 말았다.

포스트 시즌 도합 9연패를 기록하고 있던 컵스는 사이 영 상 후보까지 거론되는 아리에타의 역투로 지긋지긋한 연패를 끊어냈다. 포스트 시즌에 얽힌 징크스 하나를 깨뜨린 컵스가 향후 시리즈에서도 선전하며 무려 70년 동안 밟지 못했던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 그리고 107년 동안 들어올리지 못한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지 앞으로의 경기를 지켜보자. 컵스의 다음 상대는 내셔널리그 1위인 카디널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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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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