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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득 쌓인 매장 안
 책으로 가득 쌓인 매장 안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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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을 따라 3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헌책 특유의 조금은 퀴퀴한 종이 냄새가 가득했다. 그런데 냄새보다도 시야를 가득 채운 책더미가 주는 광경이 먼저 시선부터 압도했다. 마치 책으로 가득한 숲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겨우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남기고는 모든 공간에 책이 가득했다.

지난 14일 월요일 오후, 십여 년 만에 헌책방을 찾았다. 경대교 건너편 경북대 서문 방향 도롯가에 있는 합동서점이다. 책으로 만들어진 숲에서 주인장 김창호(63)씨를 만날 수 있었다.

35년 된 헌책방, 한때 유명세 날려

주인장인 김창호씨는 35년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주인장인 김창호씨는 35년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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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지 벌써 35년 된 이 헌책방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15년 정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익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한 주문을 통해 나오고 있다.

"책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정서가 변했다. 불안한 현실에서 돈만 좇아가며 살다 보니 책을 읽지 않게 된다. 가까운 경북대만 하더라도 요즘은 책 사러 오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매출 대부분은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을 찾는 인터넷 주문으로 채워진다."

합동서적은 같은 건물 1층과 3층 그리고 다른 건물 지하 창고까지 곳곳에 책이 나누어져 있다. 모두 합하면 100만 권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전국에서도 두세 손가락으로 꼽히는 규모다. 사실 실제로 보면 서점이라는 느낌보다는 책으로 가득한 창고 같은 느낌이다. 주인아저씨가 주로 있는 3층 매장에만도 20만 권이 말 그대로 쌓여있다.

책방을 열기 전부터 책을 수집했다고 하니 오래된 책은 40년 넘게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그나마 정리가 된 3층 매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주인아저씨도 잘 모른다.

"한때는 하루에 헌책 한 트럭이 들어오면 그걸 하루 만에 다 팔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동화책, 참고서, 대학교재는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찾는 사람이 없다. 엄마들은 동화책도 새 책만 사고, 대학교재의 경우 멀쩡한 거의 새 책이 들어오는 경우도 많은데 찾는 학생들이 없다."

그야말로 책을 통해 세월과 세태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인터뷰 중에도 전화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요즘은 주로 인터넷 주문이 많아 문의도 배송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인터뷰 중에도 전화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요즘은 주로 인터넷 주문이 많아 문의도 배송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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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독수리 오형제> 등 30년 이상 된 희귀 만화책, 1930년대 책도 있어

장사가 안된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전화벨이 자주 울렸다. 인터넷 판매가 많아지다 보니 전화 문의도 많은 모양이다. 하루에 200권가량을 새롭게 등록하는데 현재 2만 권 정도의 목록이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다. 검색 건수로만 따져도 하루 4만 건 이상이다. 다른 곳에서 못 찾은 책을 찾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장 도서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어디론가 다녀왔다. 바로 비밀창고다. 잠시 후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가져온 책은 놀라웠다.

발간된지 30년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어릴적 보던 기억이 새로웠다.
 발간된지 30년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어릴적 보던 기억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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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985년에 나온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기공룡 둘리>가 연재되던 시절이다. 두껍고 큰 특유의 생김새를 보자마자 그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또 다른 만화책도 보여서 봤더니 <독수리 오형제> 단행본이다. 1983년도에 발간된 것이었다.

이어서 1930년대쯤으로 보이는 노래 목록 책도 자태를 선보였다. '콜롬비아'라고 영문으로 적힌 책 안에는 가수로 보이는 사람의 사진과 노래 가사가 실려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가요 악보책 정도가 될 듯하다.

독수리 오형제 단행본, 역시 희귀 서적이 됐다.
 독수리 오형제 단행본, 역시 희귀 서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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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장군 애니매이션의 OST 음반
 똘이장군 애니매이션의 OST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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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보물 중에는 책만이 아니라 오래된 LP판도 있었다. '은방울자매', '검은고양이 네로'같은 옛 가요에서부터 심지어 <로봇태권V>와 <똘이장군> OST 앨범도 있었다. 옛 추억의 책과 물건들로 전시회를 열어도 될 듯싶었다. 보물들을 보여주는 동안 주인아저씨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김창호 씨는 요즘 책읽는 사람이 너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창호 씨는 요즘 책읽는 사람이 너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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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만이 아니라 서점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직접 책을 고르는 즐거움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남은 서점들도 베스트셀러 팔기에 급급하다.

시간 여유가 되는 날 꼭 한 번쯤 합동서점의 책 숲으로 산책을 떠나보길 권해본다. 그저 그 숲을 걷는 것도 즐겁지만, 추억의 책이라도 발견하면 생각지도 못한 행복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앞으로 이 책 숲이 오래도록 건재하기를 바란다.

헌책 보유량만 100만권 가량 된다. 전국 최대 규모다.
 헌책 보유량만 100만권 가량 된다. 전국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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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작은 언론 <대구강북신문>(www.kbinew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합동서점, #헌책방, #경북대학교,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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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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