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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김영호 감사위원(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오후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영호 감사위원(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오후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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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제3공화국 시절인 지난 1963년 3월 공식 출범했다. 감사원법(법률 제13204호)을 제정‧공포해 정부의 회계를 검사하는 '심계원'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감찰위원회'를 통합한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지위'는 미묘하다. 대통령이 감사원장을 임명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반드시 국회에 보고해야 하지만, 그 지위가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국가의 세입·세출 결산검사, 국가·지방자치단체·정부투자기관 회계감사, 공무원의 직무감찰 등이 감사원의 주요임무인데 이것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감사원법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제2조 1항),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 조직 및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제2조 2항)라고 규정한 이유다.

감사원이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감사원의 감사정책과 주요 감사계획 등을 결정하는 7인의 감사위원은 감사원법에 의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제10조)'. 그런데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도는 김영호 감사위원의 행보는 감사원의 존립 근거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몹시 위험하다.

페북 활동, 지역행사 참석, 이사... 치밀한 총선 출마 준비

경남 하동군 옥종면 출신인 김영호 위원은 감사원에서만 '30년'째 근무하고 있다. 재정금융국 총괄과장, 특별조사국장, 재정경제감사국장, 기획관리실장, 제2사무차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고, 이후 '27개월'이라는 최장수 사무총장(차관급)을 거쳐 지난 7월 감사위원(차관급)에 올랐다.

김 위원의 총선 출마설은 사무총장 시절부터 나왔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3선에 성공한 진주을 지역구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사위원에 임명제청되면서 그의 총선 출마설은 잦아드는 듯했다. 4년 임기가 보장된 감사위원을 중도에 사임하고 총선에 출마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4년 임기의 감사위원으로 임명되면 20대 총선 출마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신임 감사위원으로 제청됨에 따라 선거 출마는 어렵게 됐다" 등의 보도들이 나왔다.

하지만 김 위원은 이러한 언론의 관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사위원에 임명제청되기 전후로 진주 방문을 늘려갔다. 진주 지역의 한 인사는 "지난 6월부터 거의 매주 진주에 내려왔다"라고 전했다. 지역정가에서는 "김 위원의 동생이 스님인데, 그 스님이 아는 사람들에게 '형의 총선 출마를 도와 주라'고 부탁하고 다녔다"라거나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사무실까지 마련했다"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비슷한 시기 김 위원이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진주농산물도매시장, 경남도 서부청사추진단 주관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식, 봉원초등 동창회, 장재천변, 초장동 자원봉사단체협의회 주최 짜장면 봉사활동과 일일호프 등 진주 방문과 관련한 사진들을 올렸다. 특히 지난 8월 16일에는 페이스북에 '진주로 이사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위원 임명장을 받은 지 9일 뒤였다.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결과, 김 위원은 진주을 지역구인 초전동의 한 고급 아파트로 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페이스북을 통한 홍보, 잦은 진주 방문 등 내년 총선 출마를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이다. 이는 최근 김 위원의 친구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에서도 확인된다. 김아무개씨는 "감사원에 있는 김영호라는 친구가 진주로 이사를 왔습니다"라며 "내년에 국회의원 출마하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으면서 법 때문에 아직은 말할 수 없다네요"라고 썼다. 이런 평가도 곁들였다.

'내 친구 김영호 '진짜 괜찮은 놈'입니다. 공직자로서는 청렴하고 친구들에게는 의리있고 항상 약자 편에 서서 옳은 길을 주장하다 승진에서 물먹은 적도 있지만 감사원에서 최장수 사무총장까지 한 걸 보면 감사원 직원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모양입니다. 암튼 앞으로 '썩 괜찮은 우리 이웃'이 된 김영호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알려드릴게요.'

"총선 출마를 고민중이다"라는 놀라운 답변

김영호 감사위원이 진주시 초장동에서 열린 일일호프에 참석했음을 알린 페이스북 글과 사진.
 김영호 감사위원이 진주시 초장동에서 열린 일일호프에 참석했음을 알린 페이스북 글과 사진.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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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계기로 김 위원의 '정치행보'가 막판에 감사원의 국감쟁점으로 떠올랐다(관련기사: 총선 출마설 김영호 감사위원, 8월에 진주로 이사).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한 감사원법 제10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임내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4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오마이뉴스> 보도내용을 근거로 "(진주농수산물도매) 시장 운영을 살피고 짜장면 나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다"라며 "이는 현직 감사위원 신분으로 할 수 없는 것으로 감사원법 위반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위원은 "저는 (감사원법)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봉사활동이다"라고 반박했다. 김 위원의 답변에 어이가 없었든지 임 의원은 "웃습니다, 출마할 거면 사표 쓰고 나가라"라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우윤근 의원도 "정치하려면 사표 내고 하라"라고, 박지원 의원도 "감사원장이 사표를 받든지 정치활동하지 못하게 경고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면 감사위원이든 누구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휴가를 내거나 주말을 이용해 지역에서 봉사활동해 왔다면 높이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김 위원은 국감장에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드러냈다. 임 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거냐?"라고 묻자 그는 "고민중이다"라고 답변했다. 김 위원은 진주로 이사했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에는 "(지역에서) 출마 요구가 있어서 이사는 아니고 방을 구했다"라고 해명했다.

국정감사라는 제도가 시행된 이후 감사원의 고위간부가 국감장에서 "총선 출마를 고민중이다"라고 답변한 경우는 전무하다. 이석제‧이회창 등 외부인사가 감사원을 거친 뒤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사례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의 '놀랍게도 솔직한' 답변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의 답변은 '나는 새누리당 사람이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존립 근거인 '정치적 중립성'은 안중에도 없다.      

우윤근 의원은 14일 감사원 국감에서 "(현직 감사위원이)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오마이뉴스>) 보도는 감사원에 치명적이다, 심각한 중립성 훼손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그의 총선 출마 계획을 몰랐나?

박근혜 대통령이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차관·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나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차관·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나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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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이 감사위원에 임명제청된 때는 지난 7월 16일이고,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때는 지난 8월 7일이다. 그는 감사위원 임명장을 받은 앞뒤로 진주농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고, 진주시 초장동 자원봉사단체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일일호프 등에도 참석하고, 주소지도 진주을 지역구인 초장동으로 옮겼다.

김 위원이 이렇게 활동하며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위원 임명제청을 받아들였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총선 출마 계획을 몰랐다면 '인사검증'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알고도 감사위원 임명을 강행했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특히 김 위원이 총선 출마를 위한 경력 쌓기용으로 감사위원직을 수용했다면 이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하는 행위다.

감사원 안에서조차 김 위원의 감사위원직 수용을 곱지 않게 본다. 그가 감사위원직을 고사했다면 애초 사무총장에 내정됐다가 외부인사에 밀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정길영 제1사무차장이 감사위원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길영 차장이 일찌감치 '사무총장 외부인사 기용' 기류를 감지하고 감사위원직을 바랐다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두고 감사원 안에서는 "김 위원의 정치적 야망이 감사원 인사를 꼬이게 만들었다"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진주지역의 한 여권인사는 "김 위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감사원의 현직 고위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역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본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김 위원의 총선 출마를 묵인했든가, 아니면 총선 출마 계획이 없는 듯 인사권자를 속이고 총선 출마를 위한 경력 쌓기용으로 감사위원 임명제청을 받아들였든가다"라고 꼬집었다.

16년 만에 외부인사(이완수)가 감사원 사무총장에 임명됨에 따라 감사원의 1인자(감사원장)와 2인자(사무총장)가 모두 외부인사다. 거기에 두 차례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감사위원(김영호)은 내년 총선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자존심이 센 조직'인 감사원이 지금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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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김영호, #감사원, #진주을, #임내현, #감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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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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