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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의 360년 된 느티나무와 그 사이로 보이는 정자
▲ 시정 동네 어귀의 360년 된 느티나무와 그 사이로 보이는 정자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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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광주에 나다닐 일이 많아졌다.

9월이 되자 새로 가입한 색소폰 합주단에서의 봉사 활동 양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흘 도리로 나다니다 보니 동네에 조그만 변화가 생긴 줄도 몰랐다. 아니, 동네에는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아쉬움과 함께 심각한 숙제 하나가 남았다. 열 살짜리 내 친구 영민이네가 이사를 간 것이다. 영민이가 떠날 때 못 본 것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열 살짜리 꼬마의 빈자리는 나뿐만 아니라 온 마을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꿰 신고 오랜만에 마을 길을 걸었다. 찬바람이 부니 마을 시정이 썰렁하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어르신들로 붐비는 시정을 1년 동안 지나치기만 했지 한 번도 올라 앉아본 적이 없다. 하여, 썰렁한 시정이 나는 더 좋다.

거짓말 좀 보태면, 하도 넓어서 운동장 같은 시정에 처음으로 발을 올리는 기분이 참 묘하고 신선하다. 우리 마을 어귀에는 360년 된 정자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떡 버티고 서 있고, 하늘을 가린 가지와 잎이 무성한 정자나무 옆에 시정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자를 이곳에서는 시정이라고 한다. 처음 시정이란 말을 듣고 나는 내가 시장을 잘못 들은 줄 알고, '우리 마을에 시장이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져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서울댁 섭섭하겠네"

사진 좀 찍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자 구부러진 허리 쭉 펴시며 포즈를 취해 주셨다.
▲ 시골을 지키는 어르신 사진 좀 찍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자 구부러진 허리 쭉 펴시며 포즈를 취해 주셨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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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시정 한 귀퉁이가 음식물 부스러기로 지저분하다. 조금 전 고등학생들이 앉아서 무엇인가를 먹었는데 학교에 들어가기 바빠서 못 치우고 그냥 갔나 보다. 속으로 '먹었으면 뒤처리는 하고 갈 것이지'라고 구시렁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을에 학교가 있어서 그나마 청소년들 얼굴이라도 보는 게 마을에 활력소도 되고 마을 기운도 좋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걸레를 찾아서 청소를 시작했다. 말끔해진 마루가 마음을 더욱 개운하게 해 준다. 주위를 살피니 아무도 없다. 다리를 쭉 뻗고 무념무상으로 먼 산 바라기를 하고 있자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사람들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초 갔던 타 동네 사람들 십여 명이 손에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오면서 정자에서 좀 쉬었다 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자리를 비켜 주면서 일부러 '방금 청소를 했으니 편하게 쉬시라'고 했다. 그러면 떠날 때 깨끗이 치우고 가겠지 하는 마음에서.

오다가 마을 회관에 들렀다. 할머니 몇 분이서 십 원짜리 동전을 앞앞이 놓고 동양화 놀이를 하고 계셨다. 방해가 될까 봐 인사만 하고 나오려는데 한 분이 말을 거신다.

"영민이네가 이사를 가서 서울댁 섭섭하겠네."
"영민이네가 이사를 갔어요? 언제요?"
"이, 벌써 며칠 되야써."
"얼마 전에 저랑 영민이 엄마랑 이야기할 때 이사 간다는 말 없었는데요. 이사 간 이유가 뭐래요?
"애들 학교 때문이라는 거 같드만."

아! 그런 이유로 기어이 영민이네도 떠났구나. 그렇게 부지런하고 긍정적이던 영민이 엄마의 노력에도 한계가 왔나 보다. 나는 서둘러 회관을 나와 영민이네 집으로 갔다. 대문이 잠겨 있다. 영민이네는 대문을 열고 놓고 살았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당을 서성이며 영민이네 집만 바라 봤다. 마음이 몹시 착잡하다. 영민이네가 떠나기 전부터 내 마음을 잡고 놓지 않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교육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교육자가 아니어서 어린이들을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는 간섭할 마음도 없고 논할 자격도 없다. 하지만 학부모로서 교육 시설에 관해서만은 할 말이 있다.

언제부턴가 시골에 초등학교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학생이 없어서, 학생 숫자가 적은 학교를 운영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바꿔 말하자면 낭비라는 말이 된다. 이 나라의 일꾼을 키우는 일,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는 일인데 낭비라는 말은 당치도 않다는 생각이다. 또, 이는 결코 평등한 지역 사회 운영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각 지자체장의 능력이 아무리 다르기로 서니.

여러 해 전 강원도의 어느 초등학교에 방과 후 강사로 나간 적이 있다. 그 학교는 학생 숫자가 적어서 분교로 있다가 드디어는 폐교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그 지역 출신의 한다 하는 인물이 모여서 학교 살리기 운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학교는 분교가 아닌 명문 초등학교가 되어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다섯 명의 학생으로 폐교 위기에 놓여 있던 분교는 불과 3년 만에 학생 200명이 넘는 명문학교로 우뚝 선 것이다. 물론 그 학교가 속해 있는 교육청에서는 수십억 원의 돈을 그 학교에 투자했고, 그 학교는 형편이 얼마나 넉넉했는지 천연자원인 흙으로 된 운동장을 화학 제품의 소재로 뒤덮기에 이르렀다.

나는 결코 그 학교를 꼬집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부러워서다. 그 학교를 살린 그 지역 출신들의 능력이 부럽고, 학교를 살릴 능력을 가진 교육청과 이를 실행에 옮긴 교육청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골 학교를 다 그렇게 만들었으면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다시 짓자는 말도 아니다. 있는 학교를 없앨 것이 아니라 잘 활용을 해서 학교가 멀어서 이사를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기존 학교의 활용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한 예를 들자면, 내가 사는 고장은 시골인데도 인구 대비 도서관이 참 많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좋은 도서관 시설이 이용객이 너무 적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머잖아 우리 마을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지나는 길손을 위해 담 밖에 꽃을 심는 어르신들의 깊은 배려심이 엿보인다.
▲ 맨드라미 지나는 길손을 위해 담 밖에 꽃을 심는 어르신들의 깊은 배려심이 엿보인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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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많은 것과 시설 좋은 것이 불만이 아니다. 도서관 짓는 돈의 몇 십분의 일이면 있는 학교를 폐교하지 않고 잘 수선해서 한 쪽은 도서관으로 쓰면서 학교를 살리면 어떨까? 한두 명의 학생이 있는 마을이라면 빈 집을 하나 사서 분교로 쓰는 것은 어떨까?

얼마 전 유럽 여행을 할 때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서너 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그곳의 명물이 되어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느 빌딩이 세계에서 최고면 뭐하고, 아시아 최대 크기면 뭐하겠는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 학교가 없어서 그들의 부모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데.

다음 날 아침, 60대 초나 중반쯤의 부부가 영민이네가 살던 집 마당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울타리 사이로 어른거렸다. 얼른 가서 인사를 청했다. 그분들은 곧 결혼을 시켜야 할 자녀 둘과 함께 산다고 했다. 자녀들이 곧 결혼을 하면 부부만 남게 되어 시골로 들어 왔다고도 했다. 그 댁의 젊은 청년들이 결혼해 이곳을 떠나면 우리 마을에 젊은이는 없다.

들어오는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이고 남아 있는 사람은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다. 머잖아 이 마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마을은 언제까지 마을의 구실을 할까. 이는 우리 마을에만 국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농촌에 해당하는 큰 숙제일 것이다.

열 살짜리 꼬마가 떠난 자리에 참으로 많은 아쉬움과 숙제가 남아 있다.

마을 회관이 저렇게 낡아도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대에서나 쓰지 이걸 누가 쓸까'라고 하셨다.
과연 우리 마을은 언제까지 유지가 될지 필자도 의문스럽다.
▲ 마을 회관 마을 회관이 저렇게 낡아도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대에서나 쓰지 이걸 누가 쓸까'라고 하셨다. 과연 우리 마을은 언제까지 유지가 될지 필자도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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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연재 천방지축 귀촌일기 13회 <이러다가 마을 없어질라>는 계간 서울문예에도 게재 됩니다.



태그:#이사, #폐교, #분교, #숙제, #농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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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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