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일기였다. 기억에서 이미 멀어진 날들의 이야기를 몰아서 쓰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었다. 사실 글쓰기라는 것 자체가 주는 부담감도 적지 않다.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가끔 주변에서 꾸준히 일기를 쓰거나 직업으로 글을 쓰는 이들을 만날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방학 숙제로서의 일기에서 멀어지는 것과 함께 글쓰기에서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일기도 아닌, 서로 나누는 글쓰기를 하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갔다. 바로 대구참누리아이쿱생협 글쓰기 모임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이들을 대구 북구 동천동 생협 2층 동아리방에서 만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모임 회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연령대도 대체로 40대 초중반으로 비슷했다. 나중에 들으니 예전에 남자 회원이 한 명 있었는데 이사를 했다고 한다.

5년째 이어진 글쓰기 모임, 관계의 깊이도 두 배

다른 모임과 달리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지만 글로도 서로를 알아가기때문에 관계의 깊이가 두배라고 한다.
 다른 모임과 달리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지만 글로도 서로를 알아가기때문에 관계의 깊이가 두배라고 한다.
ⓒ 김지형

관련사진보기


모임을 시작한 지는 벌써 5년째다. 지난 2011년 7월경,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취미로 하던 맏언니인 천진경 씨가 주변에 소문을 내면서 시작하게 됐다. 현재 7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지 들어봤다.

모임 회원인 이영은(42, 북구 동천동)씨는 "언니들의 삶을 직접 듣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 다른 모임과 달리 만난 횟수나 나눈 이야기에 비해 친밀감이 배가 된다. 글을 통해 서로를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같은 시간을 만나더라도 글을 통해 서로 더 깊이 알게 돼 훨씬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평소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김은주(44, 북구 관음동)씨는 "글쓰기 모임은 한마디로 필터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일상에 찌들어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글은 이런 감정을 걸러주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라며 글쓰기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격주로 모임을 하고 있는데 모임 진행 방식은 간단하다. 각자 써온 글을 소리 내어 읽은 후에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글은 자유주제와 공동주제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모임 제안자이자 맏언니인 천진경(46, 북구 동천동)씨는 "글쓰기 모임을 한 지 벌써 5년째인데 (글쓰기는)삶을 가장 깊이 있게 정리하는 방법인 것 같다. 그동안 나누었던 글을 돌아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만나니 만남이 깊고 진솔하다. 또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책 읽기 모임도 많이 해봤지만 글쓰기가 삶을 나누는 측면에서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글쓰기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회원 장정희(42, 북구 읍내동)씨도 글쓰기에 대해 "글을 나누는 모임이다 보니 신중하게 쓰게 된다. 어떤 주제든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해를 거듭할수록 관계도 깊어지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글은 미처 못 썼어도 모임에는 오고 싶어져

모임은 각자 준비해온 글을 돌아가며 읽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은 각자 준비해온 글을 돌아가며 읽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 김지형

관련사진보기


정기 모임 외에도 이들은 가끔 함께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간다고 한다. 지난가을에는 충북 괴산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꼭 글을 써오지 않아도 참석은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모임 지기를 맡고 있는 도주현(42, 북구 동천동)씨는 "재작년 가을부터 함께 했다. 사실 그동안 글을 많이 써오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 신선하다. 주고받는 느낌이 좋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것 같아 글을 쓰지 않았더라도 꼭 참석하고 있다"라며 모임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이 모임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부담 없이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모임을 잘하자면 아이들이 없는 편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회원이 비슷한 또래 엄마들이라 아이를 데리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야 오히려 엄마들이 마음 편하게 모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사실 엄마들은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다양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마침 이날 모임에 새로운 회원이 처음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두 아이와 함께 온 최혜영(32, 경북 칠곡군 동명면)씨는 "공동육아 등을 통해 마을의 다양한 활동을 접하긴 했는데 정작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싶었다. 그런데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에 소개를 받아 참여하게 됐다"며 첫 참가 소감을 전했다.

그동안 모인 글로 문집 낼 계획

그동안 써서 모은 글들을 올려놓으니 상당한 양이었다.
 그동안 써서 모은 글들을 올려놓으니 상당한 양이었다.
ⓒ 김지형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동안 서로 나눈 글을 모은 꾸러미를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는데 그 두께가 상당했다. 오랜 시간 모임을 하면서 남은 자취이니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들은 언제가 되던 그동안 나눈 글을 모아 함께 문집을 낼 계획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결국 글쓰기는 글이 아닌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혼자가 아닌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마음을 나눌 공간과 방법이 부족할 뿐이라고 말이다.

결국, 마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건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작은 모임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만들 문집이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작은 언론인 대구강북신문(www.kbinews.com)에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글쓰기, #작은모임, #대구 북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