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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컨셉진'의 9월호 표지
 잡지 '컨셉진'의 9월호 표지
ⓒ 컨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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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화보와 내용이 넘쳐나는 잡지계에서 그 흔한 광고 하나 없이 작은 몸집으로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는 잡지가 있다.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라는 슬로건의 잡지 <컨셉진>이 바로 그 주인공.

사연을 받아 모녀에게 잊지 못할 데이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1년에 한 번은 그간 좋았던 내용을 추려 특별호를 만드는 그들.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책을 만들고 싶다"며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컨셉진> 발행인 김재진(33)씨를 지난 10일 만나봤다.

작지만 알차게

월간 컨셉진은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알차다. 특히 삶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요소를 다룰 수 있도록 코너가 구성되어 있다. 나의 개성을 완성시켜주는 물건부터 시작해 장소, 사람, 여행, 사랑 그리고 요리법까지 담겨있다. 흔히 잡지 컨셉진의 독자들은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치유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발행인과 편집장의 치밀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한 꼭지 한 꼭지를 독자 분들의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실 수 있게끔 구성했어요. 그래서 저희 잡지를 읽으시고 힐링이 되었다고 하실 때마다 의도대로 잘 흘러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해요."

4000 원(인상되기 전까지는 3000 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해왔다)이라는 가벼운 가격 때문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컨셉진의 가치는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창간호부터 현재 28호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축구기자 꿈꾸던 취준생, 잡지 발행인 되다

원래 그의 꿈은 잡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채용공고가 거의 나질 않아 준비만 하다 나이만 먹었어요. 그때 차라리 내가 축구를 다룬 간행물을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딱딱하고 정형화된 기사가 아니라 개성도 있으면서 깊이 있는 글을 실으면 잘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여자친구가 편집장을 맡은 <컨셉진>에 합류하면서 축구를 다루는 잡지가 아닌, 우리의 삶과 청춘을 이야기하는 잡지를 만들게 됐죠."

우연한 기회에 그는 발행인이 됐고, 약 3년을 꼬박 투자해 여기까지 왔단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경험이 없었으니 처음에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죠. 게다가 출판시장이 불황이고 수요가 크지 않다 보니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광고주가 여럿 있는 유명한 잡지들도 휴간하고 폐간하는데 광고가 없는 저희 잡지라고 해서 사정이 좋을 리가 없었죠."

다음 호를 내야 하는데 인쇄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듣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취업 대신 창업을 한 그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직장인이 돼가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지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를 두고 '부럽다'고 했다지만, 그는 매달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잦았다고 한다.

"이제 뭔가를 조금 알 것 같기는 한데,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온 덕분인지 60~70% 정도의 위치까지는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1000만원 '통큰 기부', "진심은 통하는구나"

출판업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배울 것 투성이었다. 뭔가를 좀 알 것 같다 싶으면 또 다른 과제가 그의 앞에 놓였다.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그렇게 그는 '맨땅에 헤딩'하듯 3년을 보냈다. 하지만 절대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회라고 생각했단다.

"그런 시간들이 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의 문제점을 깨닫고 해결해나가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 <컨셉진>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꾀했다. 상수역 근방에 오프라인샵을 낸 것도 그 일환이었다. 매체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기구독료 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잡지에 소개된 소품들을 직접 보고 살 수 있는 매장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상수역 근방에 위치한 <컨셉진>의 오프라인 매장 '라이프 팩토리'
 상수역 근방에 위치한 <컨셉진>의 오프라인 매장 '라이프 팩토리'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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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골목 안의 작은 가게라지만 보증금·인테리어 비용은 그들의 힘만으로 감당하기에 벅찼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을 무렵, 펀딩을 통해 독자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기적처럼 돈이 보였다. 그중 1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한 분도 계셨다고 한다.

"처음에 너무 놀랐어요. 저희를 어떻게 믿고 저렇게 큰돈을 투자하시나하고 생각했죠. 사실 매장이 잘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 거고, 시쳇말로 망하면 그분은 손해 보시는 거니까 되레 걱정이 될 정도였죠. 하지만 그동안 저희가 만들어온 잡지를 보시면서 신뢰가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한 일이죠. 저희의 진심이 통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실패에 실패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라이프 팩토리'에선 각종 독립출판서적도 판매한다.
 '라이프 팩토리'에선 각종 독립출판서적도 판매한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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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휴대폰 케이스들.
 귀여운 휴대폰 케이스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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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점들이 사라지고 대형서점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뿐만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책부터 먼저 꺼내던 습관이 사라졌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카페를 다니면서 저희 책을 전시하고 판매해달라고 부탁드린 적이 있어요. 취지를 설명하니까 스무 곳 정도에서 허락을 해주시고 입고해주셨죠. 저희 잡지가 휴대하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눈길만 끌면 구매를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판매가 거의 되질 않았어요. 저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같은 가격에 책이 아닌 노트를 팔면 더 잘 팔릴 것 같다고 이야기했죠."

이건 아직도 그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 역시도 웃으면서 기꺼이 받아들일 거다. 또 한 번의 성장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가 그간 쏟았던 열정을 책이 아닌 다른 것에 쏟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희망찬 미래가 보장돼 있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로 들어섰다.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그런 쉽지 않은 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기꺼이 포기한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에 그들에게 달콤한 포상이 기다리고 있기를. 그건 바로 더 많은 사람들이 <컨셉진>을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것일 거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컨셉진, #라이프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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