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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떠나는 날 아침, 서둘러 짐을 싸고 체크아웃한 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오전 중에 '피사(Pisa)'에 다녀왔다가 다시 '볼로냐'행 밤 기차를 타야 합니다. 전날은 종일 비가 내리더니 구름이 걷혀 가고 있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볼로냐로 가기 전 아직 만나지 못한 '미켈란젤로 광장'과 '산타크로체 성당'에 가려고 합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피사 중앙역'까지는 1시간 15분 정도 걸립니다. 일찍 길을 나서서 그런지 예상보다 일찍 피사에 도착했습니다. 피사. 지금은 오직 사탑의 도시로 알려졌지만, 피사는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제노바, 베네치아, 아말피와 함께 지중해 최고의 강국 중 하나였죠.

그 시기 피사는 아랍 함대를 격파해 동방 무역을 장악하고, 사르데냐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할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기, '두오모(Duomo)'와 함께 건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피사는 유럽 최고(最古) 대학 중의 하나인 '피사 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탈리아의 상징, 두오모와 사탑입니다.
▲ 피사의 두오모와 사탑 이탈리아의 상징, 두오모와 사탑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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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역할 수 없는 피사의 명소

어쨌든 여행자들, 혹은 관광객의 모든 관심이 사탑에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탑'과 '두오모'와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두오모 광장(Piazza Duomo)'이 피사 여행의 핵심임은 거역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술 기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왔지만 나도 그들과 별 다르지 않은, 여행자임을 잊지 않고 '두오모 광장'으로 향합니다.

'피사 중앙역'에서 '두오모 광장'까지는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을 통해서 갈 수 있는데 나는 우선 왼쪽 길을 택합니다. 엠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있는 중앙 광장을 지나 한참을 걸어 아르노 강(피렌체에서의 아르노 강이 피사로 이어지고 있었다)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넙니다.

잠시 후 어느새 비스듬히 기운 사탑의 꼭대기가 건물들 너머로 보였습니다. 사탑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소매치기나 노상강도를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중간 중간 험상궂게 나를 노려보는 이들도 있었으나 인상을 잔뜩 쓰고 걸었던 탓인지(아니면 그들이 그냥 선량한 동네 젊은이였기 때문인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11시에 사탑에 오르기로 예약을 한 탓에 먼저 '세례당(Battistero)'과 '두오모'부터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앞 '조반니 세례당'이 공사 중이라 그 외관을 제대로 못 본 아쉬움을 피사의 '세례당'이 달래주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는 '세례당'은 유물들을 대부분 박물관으로 옮겨서 그런지 실내는 좀 휑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소리(심지어 생수 페트병이 딸깍거리는 소리까지)도 크게 울려 퍼져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특유의 음향 효과를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공지돼 있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세례당'을 나왔습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세례당. 보통의 경우 성당 안에 두는 세례당을 성당 바깥에 이처럼 거대한 규모로 만들었다는 것만 봐도 당시 피사의 국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세례당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 있는 세례당. 보통의 경우 성당 안에 두는 세례당을 성당 바깥에 이처럼 거대한 규모로 만들었다는 것만 봐도 당시 피사의 국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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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당과 마주 보고 있는 피사의 '두오모'는 기본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화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두오모'는 1036년에 착공해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완공했다고 하는데(물론 여러 재정적, 정치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천천히 건물을 짓는 유럽인들의 전통이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위해 국보 1호와 최고 궁궐의 정문, 광화문마저도 날림으로 복원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같으면 '두오모' 공사가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두오모'는 외부 못지 않게 내부도 화려합니다. 바로크 시대의 그림이 장식된 측면 회랑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비잔틴 양식의 주 제단 천장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옵니다. 중세의 마지막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치마부에의 주도로 제작한 모자이크입니다.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조반니 피사노의 설교대와 현대 작가의 반 추상 조각까지 눈길을 끕니다.

비잔틴 양식에서 출발해 로마네스크, 바로크를 거쳐 현대까지, 오랜 시간을 두고 성당을 완성한 전통이 성당 내부에도 이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예술이란, 문화란, 저렇게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흐르고 흘러서 커다란 물결을 이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사의 두오모 안 설교대로 고딕 조각의 대가인 조반니 피사노의 작품입니다.
▲ 설교대 피사의 두오모 안 설교대로 고딕 조각의 대가인 조반니 피사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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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미술의 최후의 대가인 치마부에의 주도로 만들어진 피사 두오모 중앙 천장의 모자이크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나는 모자이크인데 그 섬세함이 놀랍습니다.
▲ 천장 모자이크 중세 미술의 최후의 대가인 치마부에의 주도로 만들어진 피사 두오모 중앙 천장의 모자이크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나는 모자이크인데 그 섬세함이 놀랍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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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에서 나와 배낭을 보관함에 넣고 '사탑'으로 향합니다. '사탑'은 생각보다 많이 기운 상태입니다. 어떻게 저런 상태로 그 오랜 세월 동안 버티고 서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원칙적으로 '두오모'의 종탑인 '사탑' 역시 기본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각 층에 수 십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탑의 상층부에 또 다른 작은 탑이 있는 특이한 양식의 종탑입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아치와 기둥들이 마치 레이스 장식처럼 꾸며져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해 줍니다.

'사탑'은 1173년에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3층 쯤 지어졌을 때부터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에 1mm 정도 기울어 현재는 수직에서 5.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보강 공사를 한 탓에 더 이상 기울어지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옆으로 쓰러질까 봐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옆의 두오모와 비교해 보면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피사의 사탑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옆의 두오모와 비교해 보면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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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탑'을 오르는 것은 다른 두오모나 탑에 오르는 것과는 색다른 기분입니다. 명성도 명성이지만, 당연히 탑의 내부도 기울어져 있어서, 오랜 세월 탑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대리석 계단에 탑의 기울기대로 나 있는 것입니다.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오르막 계단이 평지를 걷는 것처럼 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그곳은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는 계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니 주위를 완전히 가린 안전 철망 때문에 생각보다 전망이 좋지 않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십자가 모양의 '두오모'와 그 너머 보이는 '세례당'의 웅장함이 손에 잡힐 듯 한결 가깝게 느껴집니다. 비록 잘못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물체의 자유 낙하에 관한 실험을 했다는 갈릴레이도 떠오릅니다.

피사의 사탑에서 내려다 본 두오모와 세례당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두오모와 세례당 피사의 사탑에서 내려다 본 두오모와 세례당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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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 아세요?" 거리의 악사에게 부탁하다

사탑에서 내려와 '두오모 광장' 이곳저곳을 거닐었습니다. 공동 묘지인 '캄포산토(Camposanto)'와 두 곳의 박물관이 있기는 했지만 어쩐 일인지 들어갈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사실 피렌체에서도 충분히 시간이 있었음에도 '바르젤로 국립 박물관'과 '베키오 궁전'을 비롯한 몇 군데는 들어가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너무 많은 감동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일까요? 아니면 다음을 위해 아껴 두어야 할 곳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서였을까요? 어쩌면 변덕스러운 내 마음, 나도 잘 모를 일입니다.

'두오모 광장'을 나와 역까지, 아까와는 반대 방향의 길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피사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길이었나 봅니다. 작은 규모지만 화려한 쇼핑몰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피사 대학이 있어서인지 유난히 젊은이가 많습니다.

천천히 길을 가다 어느 순간 문득 낯익은 첼로 선율이 귀를 파고듭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무작정 소리의 진원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는 중년의 거리의 악사였습니다. 연주를 마치고 내가 박수를 치자 그는 바흐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바흐를 알고 당신이 연주한 곡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중 첫 곡이라는 것도 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척 반가워하며 혹시 듣고 싶은 음악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주저 없이 마스카니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안다고 했습니다. 나는 다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인터메조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피사 거리에서 만난 첼로 연주자. 내 부탁으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인터메조를 연주해 주고 있습니다. 두오모에서 중앙역까지 이르는 피사 거리에는 여러 명의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거리의 악사 피사 거리에서 만난 첼로 연주자. 내 부탁으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인터메조를 연주해 주고 있습니다. 두오모에서 중앙역까지 이르는 피사 거리에는 여러 명의 거리의 악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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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삑사리'가 몇 번 나기는 했지만 즉흥 연주 치고는 무척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나는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곳,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나만을 위한 연주'를 들은 것이니까요. 비록 거리의 악사의 소박하고 초라한 연주라 하더라도, 그 연주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음악회였습니다.

나는 그의 첼로 케이스에 기꺼운 마음으로 남은 동전을 모두 던지고 '그라치에'를 외쳤습니다. 여행이란, 때론 이렇게 기대도 하지 않은 곳에서 특별한 행복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피사의 거리에는 유난히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기타를 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던 청년부터, 방금의 첼로 연주자, 멋진 자세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잘생긴 청년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존 바에즈의 노래를 부르던 여인까지. '두오모 광장'에서 역까지 걸어오는 내내 그들의 음악으로 나는 행복했습니다.

피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돌아 왔습니다. 볼로냐 행 기차 시간까지 아직 세 시간 남짓 여유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피렌체를 가슴에 새기려고 빠르게 걸어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으로 향합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피렌체 최대의 성당이었던 '산타 크로체 성당' 광장에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작은 시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피렌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당 중 하나인 '산타 크로체 성당'.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과 비슷한 느낌의 파사드 제일 위 '다비드의 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성당 앞에는 일본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교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사진 찍기보다 성당 앞에 우뚝 선 석상을 보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석상의 주인공은 바로 '단테'입니다. 다시금 소름이 돋아 오릅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성당입니다.
▲ 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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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석상, 소름이 돋았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인문학적 씨앗을 뿌렸던 위대한 작가 단테. 피렌체에서 태어나 평생 피렌체를 사랑했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 19년에 걸친 망명 생활 끝에 결국 라벤나에서 죽음을 맞은 단테.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피렌체는 단테의 유골이라도 모셔 오길 바랐지만 라벤나의 거부로 피렌체는 결국 자신들의 영웅의 무덤을 이곳 '산타 크로체 성당'에 가묘로 만들 수밖에 없었죠.

학창 시절 읽었던 단테의 <신곡>. 제대로 문학 공부가 되지 않았지만, 강렬한 그의 문장들에 마구 가슴이 뛰었던 문학 소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후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단테의 '신곡'은 방대한 주석과 해설서를 참고해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이며, 그의 치열한 인문 정신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인들에게 단테는 어떤 존재일까요?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고향 피렌체에 묻히지 못한 단테의 석상이 서 있습니다.
▲ 단테의 상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고향 피렌체에 묻히지 못한 단테의 석상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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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몰라도 영국인들에게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무지막지한 식민주의적 인식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묻는 것과 같은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단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현대 이탈리아어의 근간을 확립했다는 점입니다.

통일 국가가 아니었던 당시 이탈리아에서 피렌체의 일상어로 쓰인 <신곡> 덕분에 피렌체 지방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죠. 이후 피렌체어가 현대 이탈리아어의 바탕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단테의 가묘 앞에 잠시 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렌체가 낳은 위대한 영웅들,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롯시니 등. 한 명 한 명 그 이름만으로도 숨 막히게 하는 이들의 무덤들. 나는 또 스탕달이 느꼈다는 그 현기증 비슷한 것이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스탕달이 느꼈다는 그 현기증의 원인이 바로 이곳 '산타 크로체 성당'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비록 스탕달을 어지럽게 했던 구이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로마 국립 회화관 소장)은 만날 수 없었지만 영웅들의 무덤에 이어 지오토와 브론치노의 그림들, 그리고 도나텔로의 조각 <수태고지>까지... '산타 크로체 성당'은 나를 충분히 어지럽게 합니다. 

산타 크로체 성당 안의 미켈란젤로의 무덤입니다.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이외에도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롯시니 등 피렌체가 낳은 위대한 인물들의 무덤과 단테의 가묘가 있습니다.
▲ 미켈란젤로의 무덤 산타 크로체 성당 안의 미켈란젤로의 무덤입니다.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이외에도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롯시니 등 피렌체가 낳은 위대한 인물들의 무덤과 단테의 가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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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로체 성당'을 뒤로 하고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 오릅니다. '두오모'와 '베키오 궁전'과 '베키오 다리'와 '산타 크로체 성당'이, 그리고 피렌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이가 감탄해 왔던 피렌체의 풍경.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빛나는 '두오모'를 꿈꾸었던 나는 피렌체에서의 마지막을 흐린 하늘 아래 만나는 이 풍경과 함께 합니다. 또 언제 이 자리에서 '두오모'와 피렌체를 마주할 수 있을까요?

나는 '두오모'와 피렌체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여행객의 셔터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려옵니다. '두오모'와 피렌체는 그저 신비로운 고요함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그 자체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한 폭의 거대한 수채화 같습니다. 그것은 피렌체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덮어버리는 감동입니다. 그렇게 나는 피렌체와 행복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만나는 피렌체의 전경입니다. 베키오 궁전과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그림처럼 서 있습니다. 이 풍경을 끝으로 나는 피렌체와 작별했습니다.
▲ 피렌체 전경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만나는 피렌체의 전경입니다. 베키오 궁전과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그림처럼 서 있습니다. 이 풍경을 끝으로 나는 피렌체와 작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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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볼로냐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피사, #사탑, #산타크로체성당, #미켈란젤로광장,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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