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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王宅裏尋常見 기왕의 집에서 늘 그대를 만났고
崔九堂前幾度聞 최구의 집 앞에서는 몇 번이나 그대의 노래를 들었던가?
 正是江南好風景 지금 이 강남은 풍경이 좋은데

落花時節又逢君 꽃 지는 시절에 다시 그대를 만났구려."

두보의 절구,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는 단순히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안사의 난으로 나라와 시대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졌고, 개원 시기(당 현종 초 태평성대) 문화 예술가들의 유명한 살롱, '기왕과 최구의 집'마저 몰락해 버린 때에 온 중국을 떠돌던 시성 두보와 절창 이구년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것이다. 풍경 좋은 강남에서 이미 백발이 성성해진, 늙고 병든 '꽃 지는 시절'에 말이다.

시 내용은 대체로 그렇다 치고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이구년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시를 발표한 그해 두보는 세상을 떠났고 이구년은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두보의 경우는 알다시피 아직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구년의 '노래' 즉 가락과 목소리는 당연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리스트의 피아노를 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리스트의 피아노를 들을 수 없는 것과 달리 이구년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시의 몰락이다.

대중은 이제 시에 의탁해 정서를 노래하지 않는다

시는 애초에 노래였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시경(詩經)의 시들은 주대(周代)의 민요였고, 소네트도 이탈리아와 영국의 민요였다. 독일의 민네징거와 마이스터징거는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당시(唐詩, 당나라의 시) 역시 특수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초야의 목동과 기녀들까지도 향유한 노래였다. 시와 노래는 단순히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김현의 말처럼 '내용형식', 즉 '침전된 내용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구년의 실종' 이후 – 물론 상징적 사건이다 – 당시는 더 이상 노래로 불리지 못했고, 송사(宋詞) 즉 사악(詞樂)은 전문화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시는 외국어였던 탓에 더더구나 노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정은 가락에 담겨야 했고 그 목마름은 사대부들로 하여금 경기체가나 시조, 가사를 만들어 노래로 부르게 했다. 물론 백성들은 이런 것과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노래를 속요, 민요라는 형식으로 이어갔다. 심지어 백성들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조와 가사마저 자신들의 노래로 바꾸었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시와 노래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가사(歌辭)는 사라졌고 서양악곡에 가사(歌詞)를 붙인 창가를 거쳐 일본의 대중가요 비슷한 노래가 대중들의 정서를 파고 들었다. 일본을 통해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배운 시인들은 노래로 불리기 힘든 율격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시다. 물론 김소월 같은 이들이 우리의 정서를 우리의 가락에 담으려고 노력했지만, 김소월은 외로웠고 단명했다. 그즈음 시는 이미 모더니즘에 심지어 리얼리즘까지도 흡수해 전문화, 산문화되기 시작했다.

"아이유의 "밤편지"를 한 번 들어보라. 그 쉬운 가사가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호흡과 아름다운 가락과 만났을 때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유의 "밤편지"를 한 번 들어보라. 그 쉬운 가사가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호흡과 아름다운 가락과 만났을 때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원더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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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구미에서 수입된 대중음악은 훨씬 더 다양한 형식과 감성으로 대중들의 정서에 파고들었고, 그에 비해 시는 극히 일부 계층-문학소년, 문학소녀-에서만 향유되기 시작했다. 시인들은 근거없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생활과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으며 고립되어 갔다. 그리고 왜곡된 입시 교육 체제 속에 시가 국어교과서에 실리면서 시는 더 이상 정서적 향유물이 아니라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학습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결정타였다. 그로 인해 시는 완전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시에 의탁해 자신들의 정서를 노래하지 않는다. 어쩌다 펴본 시집의 시들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고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문장은 어렵기만 할 뿐이다. 그에 비해 노래는 대중가요는 훨씬 더 직접적이다. 오히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쉽게 자신들의 감정을 대변해 준다. 거기다가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와 호흡을 아름다운 가락에 실어 들려준다. 아이유의 '밤편지'를 한 번 들어보라. 그 쉬운 가사가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호흡과 아름다운 가락과 만났을 때 어떤 힘을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래는 시각적으로 인지된 후 복잡한 사유 과정을 거쳐야 되는 시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감각적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거다.

시가 사는 길, 우리의 영혼이 위로받는 길

우리는 안다. 시인들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는지. 조사 하나에도 몇 날 밤을 고민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시집 한 권을 엮어도 함민복처럼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하며 자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시대 시인의 현실이고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그것은 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처음 접한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한다. "이거 노래 아니에요?"라고... 여기가 바로 김소월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 시는 이제 다시 노래로 불려야 된다. 그것도 대중들과 가장 가깝게 말이다. 시가 대중을 따라가서야 되겠느냐고 볼멘소리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여 오히려 시는 더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노래로 시를 쓰는 이들도 이미 많다.

"가지처럼 여윈 몸 / 낙엽처럼 마른 몸 / 도망치듯 사라진 계단 위로 / 부는 칼바람보다 / 더 내가 두려웠는지도 몰라 / ... / 같이 울자 우리 집에서 / 나랑 같이 울자 나란히 앉아서 / 같이 울자 / 우리 집으로 오너라." - 루시드 폴 '검은 개' 중

그리고,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는가? 밥 딜런이 대중을 따라갔는가?

"얼마나 많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당신은 그를 참된 인간이라 말할까? /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얀 비둘기는 모래밭 위에 쉴 수 있을까? / 얼마나 많은 탄환이 날아다녀야 영원히 탄환이 멈춰질까? / 친구는 말했지. / 친구여! 그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그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밥 딜런 "Blowin'in the wind" 중

그렇다. 밥 딜런은 이미 가수가 아니라 노래하는 시인이다. 현대판 민네징거다. 노벨상이 인정하지 않았는가? 스웨덴 한림원은 보수적이지 않았다. 더 이상 시와 노래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인들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시인들이 모두 노래할 필요도 없다. 시는 원래처럼, 두보의 시대처럼 이구년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슈베르트를 만난 빌헬름 뮐러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와 음악과 손잡고 노래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빌헬름 뮐러는 "나는 악기를 연주할 줄도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시를 짓는다면, 그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면서 연주를 하는 것이다. 멜로디를 내 힘으로 붙일 수 있으면 나의 민요풍 시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질 것이다. 그러나 확실컨대, 나의 시어에서 음률을 찾아 그것을 내게 되돌려줄, 나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였다. 이것이 시가 사는 길이고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위로받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acloudtardis 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태그:#밥딜런, #노벨문학상, #시와노래, #두보,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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