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프로야구에서 가을 잔치 티켓이 걸린 치열한 5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화와 KIA의 맞대결이 장군 멍군으로 끝났다. 이번 2연전에서 양 팀은 사이좋게 1승씩 나눠 가졌다. 승차없는 두 팀의 순위 다툼은 일단 제자리 걸음을 유지했다.

올 시즌 만날 때마다 명승부를 펼치고 있는 두 팀은 이번에도 포스트시즌을 연상케 하는 혈전을 치렀다. 특히 양 팀의 시즌 14차전은 종반까지 쫓고 쫓기는 팽팽한 추격전이 이어지면서 양 팀 모두 주력 투수들을 모두 동원하는 소모전 양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6연패 수렁에 빠져있던 KIA는 14차전에서 에이스 양현종을 조기에 투입하는 강수를 선택했다. 양현종은 지난달 28일 케이티 위즈전 3회말 1사 2루에서 타자의 타구에 왼쪽 손목 윗부분을 맞고 교체됐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판명났으나 조심스러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애당초 양현종은 이번 주 후반인 롯데나 삼성 전 등판이 예상됐다. 하지만 팀이 전날 한화 전마저 2-8로 완패하며 승차가 벌어질 위기에 처해 연패 스토퍼로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마운드에 올랐다.

한몫 해낸 양현종, 한숨 돌린 윤석민

결과적으로 양현종은 자기 몫을 해냈다.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3볼넷 7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요건을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총 103개의 공을 던져 투구 수 관리가 아쉬웠다. 하지만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팀을 위해 등판을 강행하며 쉽게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팀원들에 큰 의지가 됐다.

마무리 윤석민의 조기 투입도 KIA의 또 다른 승부수였다. 양현종이 내려간 후 KIA는 최영필-심동섭을 거치며 7회 4-2로 앞선 상황에서 2사 1, 2루의 위기를 맞이하자 마무리 윤석민을 지체 없이 투입했다. 윤석민은 한 달 전 한화 전에서도 7회에 등판하여 3이닝 세이브를 챙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날은 KIA 6연패의 시작을 알린 지난달 26일 SK전 9회 역전 결승 홈런의 악몽 이후 첫 등판이었다. 일주일만의 등판이라 힘은 충분히 비축했다고 해도 박빙의 승부에서 마무리 투수의 조기 투입은 엄청난 부담이다. 이는 이 경기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김기태 감독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SK 전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는지 윤석민은 경기 내내 다소 위태로웠다. 등판하자마자 김태균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았고, 팀이 5-3으로 다시 점수 차를 벌린 8회에는 최진행에게 솔로홈런을 내주며 또 추격을 허용했다. 9회에도 2사 1, 2루의 위기를 초래했다. 투구 수는 이미 50개를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타자 조인성과 8구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3루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윤석민은 비로소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KIA의 6연패 탈출과 양현종의 시즌 13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윤석민은 시즌 26번째 세이브를 올림과 동시에, 투구수 56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이번 시즌 한 경기 최다 투구 기록을 경신했다.

양현종과 윤석민, 두 투수들의 부담을 이겨낸 투혼과 집중력이 팀을 벼랑 끝 위기에서 구하는 순간이었다. 이기면 다행, 지면 엄청난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었던 상황에서 김기태 감독의 과감한 배짱도 돋보였다.

한화도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다. 한화 타자들은 KIA가 자랑하는 두 최고 투수 양현종과 윤석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투구 수를 소모했다. 김성근 감독도 특유의 총력 전을 바탕으로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과 끝이 좋지 않았다. 선발 배영수는 불과 1.1이닝 동안 4피안타 4실점으로 무너지며 조기 강판됐다. 1회는 삼자범퇴로 마쳤으나 비 때문에 경기가 30분 넘게 중단됐고 이어 한화의 공격까지 거쳐야 해, 배영수가 2회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한 시간에 육박했다. 배영수의 식어버린 어깨는 오히려 KIA 타자들을 살려주는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송은범과 함께 올 시즌 한화 선발진의 애물 단지로 전락한 배영수는 올해 유난히 우천과 연결된 잦은 악연으로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권혁이 또 무너진 것도 한화로서는 뼈아팠다. KIA에 윤석민이 있다면 한화에는 권혁이 마지막 보루였다. 두 선수가 이날 경기에서 내준 자책점은 나란히 1점이었지만 내용과 무게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종전까지 4.2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하던 김민우의 뒤를 이어 권혁은 8회 2사 주자가 없는 가운데 마운드에 올랐으나 나오자마자 김원섭과 브렛 필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1실점을 내줬다. 하필 이 득점이 이날 경기의 결승점이 되었다.

박준태마저 볼넷으로 내보낸 권혁은 세 타자를 상대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결국 투구 수 9개 만에 교체됐다. 한화의 마지막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었다. 권혁은 7월 자책점이 6.27, 8월 5.50으로 후반기들어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도 김성근 감독은 권혁의 투입을 통해 강력한 역전 의지를 드러냈으나 권혁은 그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다. 이날의 승부처는 결국 윤석민과 권혁이라는 두 필승맨의 활약에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경기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두 팀 모두 만만치 않은 출혈을 안은 것은 마찬가지다. 역시 마운드 소모가 너무 컸다. 필승조를 모두 투입하고도 아쉬운 패배를 당한 한화는 숨돌릴 틈도 없이 넥센-두산 등 강팀들과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홈경기이기는 하지만 한화는 올 시즌 넥센에 4승 7패, 두산에 4승 8패로 유난히 두 팀에 약했다. 선발진이 불안한 가운데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의 복귀가 임박하고 있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음 주나 돼야 등판이 가능하다.

KIA 역시 연패는 탈출했지만 한화 전에서 소모된 양현종과 윤석민은 이번 주 추가 등판이 불투명하다. 5강 경쟁 팀인 롯데-선두 삼성과의 어려운 4연 전을 앞두고 있는 KIA는 양현종-윤석민 없이 이번 주 남은 일정을 버텨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한 고비를 넘겨도 여전히 5위 경쟁팀들에게는 하루 하루가 위기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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