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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애교가 많다더니, 이런 걸 두고 그런가 보다. 밥을 먹다가, 책을 보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밑도 끝도 없이 "아빠, 좋아" 하고 와락 달려드는 아이. 큰아이도 딸이지만 '이런' 애교는 보지 못했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아이 표정에, 남편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 된다. 딸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건가, 싶다. 그날도 침대에서 뒹굴며 "아빠 좋아"를 외치던 둘째에게 아빠가 물었다.

"아빠 말고 누가 좋아?"
"엄마."
"엄마도 없으면 누가 좋아?"
"언니."
"언니도 없으면?"
"그럼... 슬픈데..."

뜻하지 않은 대답에 한 번 놀라고, 이래서 가족인가 싶어 마음 한편이 찡했다. 그래, 다섯 살 아이에게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없는 건 당연히 슬픈 일이겠지. 그런데 하물며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마음은 어떨까.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엄마 마중> 겉표지.
 <엄마 마중> 겉표지.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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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이 짓고 김동성이 그린 <엄마 마중>은 엄마를 기다리는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시내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어느 추운 겨울. 코가 새빨개지도록 걸어온 한 아이가 전차 정류장으로 나와 사람들 무리에 섭니다.

이내 전차가 오고, 아이는 차장에게 묻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안 와요)?" 차장은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쌀쌀 맞게 대꾸하며 지나갑니다. 다음 전차 차장도 마찬가지 반응입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건만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그 다음 전차 차장은 전차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다칠라, 한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이릅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 해지고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는 꼼짝 않고 기다립니다. 전차가 다시 와도 "우리 엄마 안 오?" 묻지 않고 코가 빨개진 채로 그저 엄마만 기다립니다. 설상가상으로 기다리던 엄마는 오지 않고 하얀 눈만 소복소복 내립니다. 아이의 시야가 점점 흐려집니다. 눈 때문일까요? 울어서 일까요?

마지막까지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마지막 장면을 두고는 큰아이와 이견도 생겼다. "엄마를 만났나 봐" 내 말에 아이는 "눈이 오는데 햇빛이 있는 게 이상하다"며 "엄마를 만난 건 아이의 상상일 것"이라고, 제법 그럴 듯한 추측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셜록의 기운이라도 받은 건지 여러 가정이 쏟아질 때는 기발함에 물개박수가 절로 나왔다. 

"엄마, 그런데 혹시 어느 아줌마가 아이 혼자 계속 엄마를 기다리는 게 걱정되어서 데려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성냥팔이 소녀>처럼 엄마를 기다리다 너무 추운 나머지 아이가 죽어가면서 엄마를 만나는 상상을 한 건 아닐까?"

큰아이의 생각대로 엄마를 만난 게 상상이든, 사실이든 책장을 덮고도 여운이 남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 역시 십수년 전 엄마의 월급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두커니 앉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적이 있어서다. 아이의 애잔함과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통닭 한 마리 얻어 먹겠다고 내가 스쳐 보낸 그 수많은 버스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

ps. 이 그림책은 배경 설명을 알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1938년 <조선아동문학집>에 실린 소설가 이태준의 글을 김동성 작가가 그림을 더해 만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원작에는 없던 내용을 김동성 작가가 그려 넣은 것이라는데... 작가의 의도가 뭔지는 알 것 같다. 내 마음도 꼭 그러하니까.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보림(2013)


태그:#엄마 마중, #다다, #그림책, #이태준, #김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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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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