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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이나 예술은 금광을 캐는 것과 같습니다. 예술가는 삶과 상상의 세계를 파지만, 자신이 무엇을 발견할지는 잘 모릅니다. 그것은 모험입니다. _ 모디캐이 저스타인

'오마이뉴스 박진희 기자님' 이름으로 책이 한 권 날아왔다. 보도자료까지 첨부한 소포는 '리뷰를 부탁해'라는 어필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여러모로 (어느 누구에게는 오마이갓뉴스이기도 한)오마이뉴스 덕에 나의 30대 초입은 참 생소하고 특별한 일이 많이도 일어난다.

파란 정사각형 안에 노란 제목
▲ 책 파란 정사각형 안에 노란 제목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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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부업이 기자이고 본업은 출판사 에디터인걸.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책도 조심스러운 마당에 내가 어찌 남의 출판사 책을 홍보하겠냐고"라고 중얼거리면서 포장을 뜯으니, 헉, 동화책이다.

나는 동화책을 매우 사랑한다. 어릴 적에 읽은 기억보다, 다 커서 감동하며 읽은 동화가 더 많은 정도다. 읽는 데 시간을 최소화시키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책이 '동화'라는 장르인 것 같다.

출판 쪽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한 달에 두어 번, 머리털이 쭈뼛 서는 스트레스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제목을 지을 때나 카피문구를 써야 할 때다. 컨펌을 갈망하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순간에 가장 위안이 되고, 힘이 되고,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도 바로 동화책이었다.

<엄마 마중>이라는 동화책을 읽고 눈물 펑펑 흘린 뒤로, 이 책은 1년 동안 모든 지인의 생일 선물이 되기도 했고, <찐찐군과 두빵두>는 친구 삼고 싶은 사람에게 작정하고 읽힌 필독서였다. 내 남친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조건 중에 하나, '서점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한동안 남친이 없는 바람에 요즘은 써먹지도 못하고 있지만, 이 괴팍한 심사는 여전히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여하튼, 내가 동화책 앞에서는 한없이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이 책을 만든 편집자는 알고 있었을까? 어떻게 내게 동화책 보낼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아, 역시 이 책은 예사롭지 않았다.

나를 올려다보며 크고 빵빵한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주인공
▲ 독자 나를 올려다보며 크고 빵빵한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주인공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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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책>. 하늘색 정사각형은 자신이 책이라는 것을 투박하고 두껍고 노랗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책 속에 등장하는 꼬마 주인공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했는데 자신이 이 책 속의 주인공이며, 가끔은 나를 올려다보며 '빵빵한 얼굴을 가진 독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다음 장, 또 그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모험을 즐기면서 우리가 아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되어달라는 유혹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내 책에 담을 수 있을까. 가끔 옆길로 새긴 하지만, 연재하고 있는 아프리카 여행기가 내 인생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일까? 몇년 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밥줄이므로 놓지 못하고 있는 편집자의 삶이 내 진짜 이야기일까?

기자이기 전에, 출판사 에디터이기 전에, 글 쓰는 사람이기를 그토록 갈망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만난 책이 기적 같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많아봤자 여덟 살 아이들이 읽는 책에 이렇게 심오한 이야기를 이토록 간결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조차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장래희망이나 꿈, 비전 같은 말은 여덟 살 아이에게는 어려운 단어이고, 서른 살을 넘긴 내가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조금 민망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 매일매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고 굳게 다짐한 소녀 주인공이 침대에 누우며 "이제 그만 책뚜껑을 덮어달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책의 진정한 타깃층인 어린이도, 그리고 곁눈질로 흘끔흘끔 볼 수밖에 없는 노처녀도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편집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삶은 한 권의 책이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책의 주인공이 될까.

글. 니콜키드박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보림(2013)


찐찐군과 두빵두

김양미 지음, 김중석 그림, 문학과지성사(2006)


태그:#책, #삶, #이야기, #박진희박, #독자없는책은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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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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