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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울분을 느낀다. 최근 '대학 구조조정'에서, 자신의 전공 학과가 대학 내에서 존립할 필요성이 없다고 무시당하는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지난 2010년 중앙대가 '기업 인수 합병(M&A)' 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받아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대 학과(부)로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급부상했다. 이는 앞서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에 선임될 때부터 사실상 예고된 일이었다. 박 전 이사장은 당시 "대학을 '산업'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의 정체성은 기업과 다르다'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구조조정은 불도저처럼 추진됐다. 이를 멈춰 세우려고 많은 학생이 유인물 배포, 현수막, 퍼포먼스, 협상, 학생총회, 삭발과 단식, 삼보일배, 현수막 등으로 항의했다. 분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2010년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김창인, 표석 학생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2010년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김창인, 표석 학생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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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농성장은 학교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학생들은 울분을 느꼈고, 중앙대생 두 명이 이사회에서 구조조정안이 통과되던 날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며 한강대교 아치 위로 솟아올랐다. 그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뚫고나온 송곳이었다. 이 글은 그 중 한 명인 김창인에 관한 이야기다.

다리에서 내려온 후 4년. 징계, 또 구조조정, 다시 투쟁, 또다시 징계…. '두산 1세대' 09학번 김창인에게는 고통스러운 굴레의 연속이었다. 이 굴레를 끊어야겠다고, 또 "대학 사회에 자극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자퇴를 결심했다. 그가 2014년 5월 7일,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자퇴선언을 하고 학교를 떠난 이유다(관련 기사: "두산대학 1세대... 난 중앙대를 그만둔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 웹툰 <송곳> 중 노무사 구고신의 독백.

자퇴선언하고 대학 떠난 그가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1년이 흘렀고, 김창인은 자신이 쓴 책 <괴물이 된 대학>을 들고 돌아왔다. 이 책에는 그가 한국 대학을 '괴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와 싸워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 담겼다. 대학 구조조정은 현재 중앙대뿐 아니라 고등교육 전반의 쟁점이 됐다. 이 책은 구조조정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전국의 학생들, 문제의식을 느낀 다양한 인터뷰이들(진중권·박노자·안민석 등)을 만나 사례를 수집하고 결산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또 실증적 자료를 논거로 대학 구조조정의 국가적 상황도 정확히 분석한다.

최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대학이 "산업수요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기본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희정 의원(새누리당, 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교육부가 대학에 구조조정을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까지 발의했다.

김창인의 <괴물이 된 대학> 표지사진.
 김창인의 <괴물이 된 대학> 표지사진.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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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3년에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보다 16만 명 많게 되므로, 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또 대학 간 '경쟁'을 강제하면 인원이 알아서 감축되고 교육의 질도 개혁(?)될 거라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교수들이 학생들 학점 주듯, 대학의 등급을 매기려고 한다. 정원 감축 비율이나 정부 재정 지원에 차등을 두기 위함이다. 낮은 등급일수록 재정난과 퇴출 압력이 늘고, 심할 경우 학생들의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까지 제한된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교육복지까지 볼모 잡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김창인은 "현재 한국은 (이미)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어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비공식적으로 존재해온 서열"을 공식화시켜서 불균형 심화만 부추긴다고 보고 "지방대 육성"이 아닌 "지방대 죽이기"라고 진단한다.

대학들이 부족한 재정 충당이나 더 많은 연구 및 사업을 따내기 위한 재정 확보 경쟁을 벌일 경우, "등록금 형태로 학생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평가 지표를 맞추기 위해, 대학들이 편법을 쓰고 기계적 잣대를 적용해 고등교육을 황폐화하는 건 더 큰 문제다.

가령 전임 교원 확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무작정 지표화하는 경우가 그렇다. 재단 전입금이 충분하지 않고 정부가 추가 인건비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라면, 대학이 '비정규직 교원' 비율을 늘리는 편법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김창인이 심각하게 바라보는 건, 애초에 예체능과 인문계열이 불리한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잣대로 기계적으로 적용해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동양대)는 원래 중앙대 겸임교수로 있다가 2009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유는 불분명하지만, 홍대·카이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모두 탈락했다. 당시 그가 MB정부에 비판적이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가 아니겠냐는 일각의 해석도 있었다.
 진중권 교수(동양대)는 원래 중앙대 겸임교수로 있다가 2009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유는 불분명하지만, 홍대·카이스트·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모두 탈락했다. 당시 그가 MB정부에 비판적이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가 아니겠냐는 일각의 해석도 있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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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진중권 교수는 학문 다양성이 위축되는 현재의 추세를 두고, "발상 자체가 낡았다"고 비판한다. 정보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산업화 발전 때의 인재"를 양성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김창인: 인문학이 제일 심하게 초토화되고 있는데, 왜 그럴까요?
진중권: 제일 만만하니까요. 순수 학문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한 단계를 더 거쳐 관련된 부분을 봐야 하잖아요. 마치 열쇠고리처럼요. 이런 식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수 학문의 필요성을 못 느껴요. …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를 상수로 놓고 인간을 기계에 끌어다 맞췄어요. 그런데 정보혁명 시대에는 거꾸로 인간을 상수로 놓고 기계를 끌어다 맞춰요. 그러니까 제품을 생산하려면 일단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이게 바로 삼성이 애플을 못 따라가는 이유예요. (본문 75쪽 중에서)

'괴물이 된 대학', 특정 학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정책 하에서 각 대학에 벌어지는 일들이란, 김창인의 표현대로라면 '괴물적'이다. 모기업 인사담당자가 문과대 신입생 300여 명이 모인 강의에서 대놓고 전과를 권유한다. 총학생회 새터는 학교 당국의 압박으로 단과대 학생회별 새터로 바뀌고, 학생사회의 결집력이 빠르게 해체된다.

결국 대학 구조조정은 반복되고, 학생들의 소통과 민주적 절차 요구는 묵살 당한다. "없어질 학과에 들어가는 수도세나 전기세가 아깝다", "너희와는 소통이 아니라 음성을 교환하는 것뿐이다" 같은 언사만 돌아올 뿐이다. 총장실 앞에서 하염없이 총장들을 기다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문들을 없앤다면, 도대체 배우고 싶은 학문은 어디서 배울 수 있"느냐는 울먹임이 터져나온다.

학교 당국에 비판적인 언론은 강제 수거를 당하며 예산은 전액 삭감 당한다.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자유비판이 힘들고, 토론회와 대자보는 '정치적이기 때문에' 혹은 '아름답지 않아서' 금지당한다. 그러면서도 학교 홈페이지에는 새누리당 당직자 모집 공고가 올라온다(관련 기사: '새누리당 홍보'는 좋아, '구조조정 반대'는 안 돼).

중앙대 총무팀의 지시로 법학관에 게시된 대자보들이 뜯겨져 구겨진 채로 방치돼 있다.
 중앙대 총무팀의 지시로 법학관에 게시된 대자보들이 뜯겨져 구겨진 채로 방치돼 있다.
ⓒ 중앙대 학생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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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학생들에게는 낙인이 찍힌다. 끝까지 징계를 하고, 장학금을 다시 토해 내라는 압박이 들어온다. 학생회장의 출마도 금지되며, 그를 돕는 학생회장들에게는 "같이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학생회는 납작 엎드리라"는 말도 거침없이 던진다.

또 구조조정은 반복된다. 반복되지만, 밀실에서 추진되며 그 자리에 학생들은 없다. 기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과연 정당한 기준인지 정보는 차단된다. 답은 정해졌고 학생들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일 뿐이다. 눈물이 많은 한 영화학과 학생회장은 "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무직이 아니"라며 침묵행진을 벌인다.

그래도 대학들은 자꾸 예체능과 인문계열 위주로 통폐합을 하고 정원을 줄이고, '밀어주는 학과'로 정원을 몰아준다. 교육부의 명분은 '산업수요 중심'으로의 교육 개편이다. 그러나 이 언어가 대학으로 들어오면 '학생 중심'으로 바뀌며 학생들을 기망한다. 일자리 자체가 늘지 않는데, 어떻게 학과 구조조정으로 학생들의 취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건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건국대 구조조정 반대 침묵시위 행진.
 건국대 구조조정 반대 침묵시위 행진.
ⓒ 건국대 영화학과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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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것들은 어느 특정 대학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대학가 전반에서 관측되는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2023년까지 꾸준히 등장할 '괴물'에 관한 이야기로 봐야 한다. 김창인은 이 괴물의 기원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실패"로부터 찾는다. 대학가에 민간자본이 유입되고 영리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대학은 87%가 사립대학이 됐다. 이미 존재하는 국공립 대학들까지 법인화되면서 '거대 시장화'가 된 셈이다.

그런데 민간 자본이 경쟁적으로 대학들을 세워 놓고, 막상 학령인구가 줄기 시작하니 자기들끼리 치킨게임을 벌여 누가 시장에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를 '제도화'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그래서 김창인은 이를 "기형적 구조"라고 말한다.

대학 운영경비 대비 사립대학 법인 전입금은 평균 5.2% 수준에 불과한데, 대학 이사회들이 모든 의결권을 행사하고 족벌구조를 만들어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 교육적 가치들을 훼손하는 일이 만연하다. 그의 대안은 대학생들이 교육부와 싸워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 제도를 쟁취해내는 것이다.

대학을 사유재가 아닌 엄연히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공공재로 보고, 그 사회적 효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 김창인은 강조한다. 대학의 공공성을 확대해 점차 국공립대 규모를 키우고 국민들이 값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고, 운영 경비 대비 50% 이상의 전입금을 책임지지 못하는 법인은 해산시켜 다른 법인을 찾거나 국가가 대학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능력이 없는데도 국가보조를 받아 대학을 운영하고 싶다면 교부금을 신청하되, 대학의 인사권과 자치권 등은 학생·교수·교직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려면 결국 학생들이 모여서 대학에서 각개전투를 할 게 아니라, 함께 거리로 나와 연대해 뿌리인 교육부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건드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창인의 통찰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한국 대학이 롤모델로 지향하기 일쑤인 미국 대학 사회마저도 실상은 주립 대학 비율이 74%에 이른다. 메사추세스 공과대·코넬대·예일대 등의 대학은 반(半) 공립화로 전향하는 추세다. 유럽의 경우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김창인은 사안에 대한 거시적인 전략과 비전을 준비해두고 있는 셈이다. 이 점 때문에 그의 책 <괴물이 된 대학>은, 병법서의 쌍벽이라 할 수 있는 <손자병법>과 <오자병법> 중 후자와 닮았다. 전자는 야전 지휘관의 전투 교본에 가깝다면, 후자는 총사령부·참모본부의 전략 교본으로서 더 가치있다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학생사회는 계급사회가 아니라 민주적 자치로 움직이는 공동체에 가깝다. 그러므로 학우들의 협의와 설득이 필수다. 김창인이 자신의 전략을 현실에서 어떤 운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괴물이 된 대학>(김창인 지음/ 시대의창/ 2015.7.20./ 1만5000원)



태그:#괴물이 된 대학, #중앙대, #김창인, #대학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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