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은 축구장에서도 매우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개최국 중국은 안방에서 아시아 축구의 강팀 한국을 시원하게 이겨보기 위해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작은 실력 차이가 경기 내용이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K리거들의 꼼꼼한 실력 차이가 이 멋진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일 오후 10시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5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남자부 중국과의 첫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이 자랑하는 멤버들이 펼친 활약에 힘입어 2-0의 완승을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향한 첫 걸음을 멋지게 내딛었다.

K리거들이 찍어낸 화룡점정

이 경기는 그야말로 자존심이 걸린 맞대결이었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축구 실력을 자랑하는 한국을 맞아 안방에서 이기고자 하는 중국 선수들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서로 엄청난 압박을 구사하는 중원이 승부처였다. 거기서 자신들이 준비한 공격 전개 방법을 성공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한국은 중국 프로축구 경험이 비교적 많은 장현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경기 조율을 맡겼다. 장현수와 중앙 미드필더 파트너가 된 왼발잡이 권창훈은 이 경기가 A매치 데뷔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원 블루윙즈에서 좋은 경기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공격의 출발점 역할을 잘 해냈다.

그래도 한국의 실질적인 공격 출발점은 오른쪽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이재성이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왼발 드리블과 패스 실력은 중국 선수들이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었다. 경기 시작 후 2분 만에 이재성이 오른쪽 측면에서 만든 좋은 기회는 첫 번째 코너킥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전반전이 중원 싸움으로 그냥 끝날 것 같았지만 이재성의 번뜩이는 눈빛은 훌륭한 선취골을 만들어냈다. 44분, 자신의 마크맨 런 항을 앞에 두고 측면에서 공을 잡은 이재성은 부드럽게 중심을 이동하여 김승대를 겨냥해 기막힌 찔러주기를 성공시켰다.

김승대 앞에서 중국의 노련한 수비수 정쯔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이재성의 찔러주기 수준은 이미 그를 넘어선 것이었다. 이 짜릿한 패스를 받은 김승대는 중국 골키퍼 왕 달레이가 잡은 각도를 피해 침착하게 오른발 밀어넣기를 성공시켰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부분이었다. 중국 선수들은 가오 린과 위 하이가 맨 앞에서 공격을 이끌었지만 중국 축구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중앙 수비수들(김영권, 김주영)을 흔들지 못했다. 62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유효 슛(쑨 커 왼발 중거리슛)을 기록한 것만 봐도 경기력 차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후반전, 중국 축구를 갖고 놀다

축구장에서 진정한 실력을 입증하는 것은 역시 추가골에 있었다. 전반전 종료 직전에 선취골을 멋지게 만들어낸 우리 선수들은 57분에 더 아름다운 추가골을 터뜨리며 중국 선수들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그 중심에는 역시 이재성이 있었다. 전북 현대가 왜 최고의 팀이 되었는가를 미드필더 이재성의 몸놀림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오른쪽 옆줄 가까운 곳에서 이재성이 가로챈 공은 곧바로 김승대 앞으로 뻗어간 공간 패스로 빛났다. 김승대는 멀티 골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더 좋은 위치에서 빠져들어오고 있던 이종호를 겨냥해서 부드럽게 공을 밀어주었다.

여기서 이종호는 각도를 줄이며 몸을 날리는 중국 골키퍼 왕 달레이를 살짝 뛰어넘는 신기의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추가골을 완성시켰다. 연결 과정이나 마무리 기술 수준이 양 팀의 수준 차이를 말해주는 셈이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중국의 알랭 페랭 감독은 간판 골잡이 가오 린을 빼고 쑨 커를 들여보내 승부수를 띄웠지만 선수 개개인의 작은 실력 차이가 전체 경기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격차를 만든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전은 한국의 K리거들이 내로라하는 중국 선수들을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비록 추가골로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72분에 '이종호-이정협-김승대'로 이어진 한국의 역습 상황은 중국 수비수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수준 차이를 또 한 번 드러냈다. 김승대의 오른발 돌려차기를 중국 골키퍼 왕 달레이가 얼떨결에 막아냈기에 망정이지 수많은 중국 축구팬들이 분노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이 경기를 통해 딱 1개의 유효 슛을 기록했다. 62분, 후반전 교체 선수 쑨 커가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지만 한국 골키퍼 김승규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쳐냈다. 이 공은 곧바로 중국 골잡이 위 하이 발 앞으로 굴러왔지만 헛발질이었다. 개인 기술면에서 드러난 이 작은 차이가 전체 경기력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경기 종료 휘슬을 듣고 양 팀 감독이 벤치 앞에서 만났을 때 알랭 페랭 중국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을 쳐다보며 고개를 여러 차례 가로저었다. 감독부터가 공한증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이보다 앞서 벌어진 북한과 일본의 남자부 개막전에서는 경기 시작 후 3분 만에 선취골을 내준 북한이 일본에게 끌려가는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노련한 골키퍼 리명국의 슈퍼 세이브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나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활짝 웃었다.

이제 한국 선수들은 5일(수) 오후 7시 20분에 일본과의 맞수 대결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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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5 EAFF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남자부 첫 날 결과(2일 오후 10시 우한 스포츠센터)

★ 한국 2-0 중국 [득점 : 김승대(44분,도움-이재성), 이종호(57분,도움-김승대)]

◎ 한국 선수들
FW : 이정협(83분↔김신욱)
AMF : 이종호(89분↔정우영), 김승대, 이재성(78분↔이용재)
DMF : 권창훈, 장현수
DF : 홍철, 김영권(주장), 김주영, 임창우
GK : 김승규
- 경고 : 런 항(5분), 이종호(69분), 장현수(90분)

★ 북한 2-1 일본

◇ 남자부 현재 순위
한국 3점 1승 2득점 0실점 +2
북한 3점 1승 2득점 1실점 +1
일본 0점 1패 1득점 2실점 -1
중국 0점 1패 0득점 2실점 -2
축구 동아시안컵 이종호 이재성 김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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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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