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의 베테랑 외야수 김원섭은 건강 문제로 인하여 풀 타임이 아닌 플래툰으로 출전해왔다. 7월 28일 광주 북구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렸던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도 팀이 왼손 선발투수 김광현을 상대하게 되면서 플래툰으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교체 투입되었다. 비록 교체 투입되긴 했지만, 이 경기는 김원섭의 통산 1000번째 출전 경기였고, 김원섭은 의미 있는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다.

이 날 경기에서 김광현의 선발 등판으로 김원섭이 벤치를 지키고 김호령이 중견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KIA 타선은 김광현의 호투에 밀리며 좀처럼 리드를 만들지 못했다. 2회 초 SK의 앤드류 브라운이 솔로 홈런으로 먼저 점수를 냈고(0-1), 2회 말 KIA가 나지완의 안타와 황대인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1-1).

SK는 6회 초 김강민의 몸에 맞는 공과 최정의 투런 홈런으로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1-3). KIA도 6회 말 브렛 필이 솔로 홈런을 터뜨렸지만 주자가 없는 상황이었던 점이 아쉬웠다(2-3). 게다가 필 뒤에 나온 4번 타자 이범호와 5번 타자 나지완이 공격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범호는 이 날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머물렀다.

그리고 SK의 윤길현-정우람 계투에 막힌 KIA는 8회까지 전혀 추격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9회말 선두 타자 나지완이 정우람을 상대로 2루타를 치고 나가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동점 주자가 출루하자 KIA는 주루가 느린 편이었던 나지완 대신 고영우를 대주자로 내보냈다. 또한 6번 타자였던 김다원 대신 대타 신종길을 투입했다.

당초 신종길의 역할은 희생 번트를 통하여 2루 주자를 3루로 보내어 동점 가능성을 더 높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종길의 희생 번트 타구를 받은 정우람은 야수 선택으로 3루에 송구했다. 게다가 2루 주자 고영우는 정우람의 3루 송구보다 더 먼저 3루를 밟으며 2명의 주자가 모두 살았다.

KIA는 다음 타자 백용환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고영우가 홈을 밟으며 동점에 성공했다(3-3). 그러나 KIA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SK 유격수 김성현의 수비 실책을 틈타 1루에 있던 신종길까지 2루를 밟아 득점권에 다시 주자를 보냈다. 그리고 유격수 박찬호 대신 대타 이홍구를 내보냈다.

이에 SK에서는 이홍구를 고의4구로 1루에 보낸 뒤, 병살타를 유도하기로 했다. 다음 타자는 SK 투수가 김광현에서 윤길현으로 교체된 이후에 대타로 투입되어 볼넷을 얻었던 김원섭이었다. 우투좌타였기 때문에 오른손 구원투수가 등판한 뒤에야 출전했던 김원섭은 왼손 투수였던 정우람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는 기회를 얻었다.

1사 주자 1,2루 상황이었고, 다음 타자가 오른손 타자인 김주찬이었기 때문에 통산 1000번째 출전한 베테랑 김원섭에게 김기태 감독이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김원섭은 정우람의 4구 째 공을 잡아 당기며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15m 짜리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작렬했다(6-3).

이 날 6이닝을 던진 임준혁에 이어 두 번째로 등판했던 에반 믹은 나머지 에반은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되기 위해 점차 투구수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3이닝 동안 47개의 공을 던졌다. 포수 백용환의 끝내기 홈런으로 행운의 첫 승을 거뒀던 에반은 투구수를 늘려가던 이 날도 김원섭의 끝내기 홈런으로 행운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만성 간염 불구하고 선수 생활 지속, 정우람과의 관계도 주목

이 날의 패전투수 정우람은 과거의 김원섭과의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2009년 8월 9일 군산에서 벌어졌던 경기에서도 김원섭이 끝내기 그랜드 슬램을 날렸는데, 이 때도 상대 투수가 정우람이었던 사실이 기록에서 밝혀진 것이다.

사실 김원섭은 가장 많이 출전했던 시즌이 2012년 120경기였다. 김원섭은 2001년 두산 베어스에서 백업으로 프로에 데뷔했고, 2003년부터 KIA에서 활약했는데, KIA에서 활약한 13년 동안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다섯 차례에 불과했다.

원인은 단국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앓아오던 만성 간염 때문이었다. 원래 유격수였던 김원섭은 간염으로 인하여 체력적으로 큰 불편을 겪었고, 어깨 부상이 겹치며 결국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됐다. 이 때문에 두산에서도 38경기 백업 출전에 그쳤고, 2002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이후 KIA로 이적한 뒤 2006년에 94경기에서 타율 0.337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했던 2007년에 다시 간염이 체력적인 영향을 미치며 타율이 0.243까지 뚝 떨어졌다.

이후 어느 정도 체력적으로 적응한 김원섭은 다시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정우람을 상대로 끝내기 그랜드 슬램을 날렸던 시기도 바로 이 전성기이며, 한국 시리즈 7차전에서도 정우람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날리며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놓기도 했다.

이후로도 김원섭은 체력 조절을 해 가며 지속적으로 팀에서 활약했다. 간염의 특성상 체력 안배가 중요했던 만큼 고정 출전보다는 플래툰 적용 등으로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출전하다 보니 통산 1000경기 출전에도 그 만큼 시간이 걸렸다.

KBO리그에서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김원섭이 역대 120번째였다. 그러나 1000번째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던 KBO리그 선수는 김원섭이 최초였다. 김원섭은 간염으로 고생하는 와중에 세운 기록이라서 더 감동을 주고 있다. 김원섭은 이 날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를 통하여 40세까지 선수로 뛰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을 다짐했다. 만성 간염을 안고 있는 김원섭이 앞으로 나아가게 될 기록은 다른 선수들의 기록보다 더 값지고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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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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