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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평화로울 때도 있다. 얼룩덜룩한 놈도 토종닭.
▲ 닭들의 회의 가끔 평화로울 때도 있다. 얼룩덜룩한 놈도 토종닭.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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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달걀 열 개를 암탉이 품기 시작했다. 이틀 전부터 알 낳는 짚더미에 앉아서 나오지 않아도 설마 했다. 암탉이 알을 품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닭은 두 부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사람이 부화시킨 닭이다. 이 닭은 알을 품을 줄 모른다. 처음 닭을 키우는 우리는 그런 줄 모르고 알을 넣고 품게 했더니 알을 다 쪼아 먹어버렸다. 또 한 부류는 닭 스스로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는 것이다. 두 부류를 섞어 놓고 육안으로 봐서는 어떤 놈이 인공부화 닭인지, 어미가 품은 닭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에 처음 닭을 들여온 것은 작년 6월이었다. 닭을 키우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지네 때문이고, 두 번째는 달걀도 먹고 마당에 예쁘고 귀여운 병아리 떼가 종종거리며 노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중닭이 조금 덜된 것으로 오골계 네 마리 토종닭 세 마리를 사 왔다. 그중에 수탉이 두 마리. 며칠이 지나자 수탉 한 마리가 죽었다. 원래 약한 놈을 사 온 줄로 알고 묻어 주었다.

다시 크기가 비슷한 토종닭으로 수탉 한 마리, 암탉 두 마리를 사다 넣었더니 모두 아홉 마리가 됐다. 그런데 먼저 온 놈들과 나중 온 놈들이 편을 갈랐다. 먼저 온 놈들은 텃세를 하느라고 꼴 난 볏을 빳빳이 세우고 다 펼쳐도 큰 까치만도 못한 날개를 잔뜩 부풀리면서 위세를 떨었다.

모이를 못 먹게 훼방을 놓는가 하면 물도 못 마시게 했다. 그럴뿐만 아니라 저희가 실컷 먹고 남은 것을 먹으려고 해도 여차 없이 달려들어 쪼아대면 나중 온 놈들은 눈치를 슬슬 보며 피해 다녔다. 그러니 자연히 쫓는 무리와 쫓기는 무리로 패가 갈렸다.

며칠 뒤, 새로 온 한 마리가 죽더니 다음 날 또 한 마리가 죽었다. 그때야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닭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보초를 서다시피 했는데도 남은 한 마리의 암탉 등줄기에 털이 다 뽑히고 한쪽 눈까지 멀어 있었다. 약을 먹이고 치료를 해 주었지만, 다음날 그놈도 죽었다.

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했던가! 닭은 절대 머리 나쁜 가축이 아니다. 그 예로, 우리가 닭을 관찰한 결과 닭은 상대를 공격할 때 눈을 먼저 공격해서 공포에 떨게 한 다음 다른 곳을 공격했던 것이다.

세 마리가 며칠 사이에 죽어 나가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 후 며칠은 잠잠했다. 새로 온 놈 세 마리가 다 죽었으니 이제는 살생 없이 닭장에 평화가 온 줄로 알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정말로 잔인한 일이 벌어졌다. 또 한 마리가 두 눈이 다 멀어 있었다. 이번에는 같이 잘 놀던 놈 중에 한 놈이었다.

우리 집 닭장에 몰아친 '풍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놈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먹지를 못해서 그런지,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반나절 만에 병아리처럼 덩치가 작아졌다. 따로 격리를 해서 모이를 줬으나 모이가 없는 다른 곳에 헛 입질을 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 육체적인 고통도 컸겠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했다. 오후에 그놈도 갔다.

우리 부부가 낮 동안 교대를 해 가며 감시를 한 결과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들은 괴롭히던 놈이 사라지면 누구든 상관없이 다른 한 놈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여러 놈이 괴롭히고 있었는데 그중에 두목이 있었다. 너무 괘씸해서 두목을 제거했더니 다른 놈이 또 두목 노릇을 했다.

닭 쫓던 개가 아니라, 닭을 지키는 개
▲ 우리 사이 좋은 사이 닭 쫓던 개가 아니라, 닭을 지키는 개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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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몇 마리 남지 않은 닭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닭들을 풀어놓고 키웠더니 풀도 먹고 텃밭의 채소도 먹고 모이도 먹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자연에서 키워서 그런지 덩치도 빨리 컸지만 나는 것도 장난 아니었다. 평행으로 1~2m 정도 나는 것은 여반장이고 수직으로 날아올라 담장을 넘나드는 것도 보통이었다.

한동안 닭과의 전쟁을 치르고 나니 지쳐서, 있는 놈만 키우자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남편은 닭의 숫자가 적다며 몇 마리 더 사 와야겠다고 했다. 애초부터 달걀을 받아서 먹기도 하고 병아리도 까게 하자는 의도로 지은 닭장이 네 마리의 닭이 살기엔 너무 넓어 보였고 빈약해 보이기는 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우리는 닭 키우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어떤 이는 닭들이 자는 밤에 살짝 다른 닭을 넣으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크기가 같거나 좀 더 큰 놈을 현재 있는 닭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를 넣으라고도 했다.

'옳거니, 덩치가 비슷한 놈으로 더 많은 숫자를 밤에 넣으면 되겠다.'

이번에는 수소문해서 시장에서 파는 닭을 사지 않고 야산에 풀어놓고 키우는 놈으로 사 왔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있는 놈들과 비슷한 몸집에 한 마리 더 많은 숫자를 몰래 넣었다. 우리 부부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이 되자 닭장에서 난리가 났다. 푸드덕 꼬꼬 꼬꼬댁, 아니 꼬꼬댁이 아니라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얼른 닭장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더니 원래 있던 놈들이 뒤뚱거리며 뛰어나왔다. 그들은 마당 한쪽에 몰려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밤새 어디서 저런 놈들이 나타났지?' 하며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반면 나중 온 놈들은 그놈들대로 놀라서 닭장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빙빙 돌며 날개를 잔뜩 부풀려서 꼬꼬 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또 패를 가르는 것이 눈에 보였으나 어느 쪽도 쉽사리 덤비지 않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전세를 살피는 것도 잠시, 덩치가 비슷한 놈들끼리 맞닥뜨리자 그들의 싸움은 수탉끼리의 싸움이 됐다. 피를 흘리는 싸움이 계속됐다. 살벌했지만 말릴 수도 격리할 수도 없었다.

이기는 쪽은 원래 있던 수탉이었다. 싸움의 이유는 암탉 때문이었다. 새로 온 놈이 암탉과 교배를 하려고 하면 원래 있던 놈이 사정없이 응징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만날 당하기만 하고 암탉 옆에 못 가고 눈치만 보던 놈이 벼르고 벼른 끝에 칼을 뽑아들고 드디어 봉기했다.

닭장을 살피던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달려가 보니 수탉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만날 당하던 놈이 괴롭히던 놈의 볏을 거의 다 물어뜯어서 그 깡패 같던 놈이 피를 흘리며 꽁지만 내놓고 머리를 구석에 처박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의 입장은 바뀌었다. 이긴 놈은 기세등등하여 진 놈을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여태껏 당한 분풀이를 다 해대고 있었다.

급기야 당하는 놈의 목숨 줄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다. 우리 부부는 말했다. "그렇게 못되게 굴 때 알아봤다"고. 이긴 놈은 암탉 일곱 마리를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녔다. 흡사 인간사를 보는 것 같았다.

7월 14일, 그렇게 온갖 풍파를 다 겪고 난 후에 병아리 일곱 마리를 얻었다. 그러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우리는 온 신경을 병아리에게 쏟았다. 행여 뱀이 나타날까, 쥐가 물고 가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고민한 끝에 병아리 집을 닭장에서 꺼내 눈에 잘 띄는 뒤뜰 토방에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길고양이가 병아리 집을 기웃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고양이를 쫓고 또다시 머리를 짜기 시작했다.

진돗개를 닭장 옆으로 옮겼다. 진돗개도 입맛을 쪽쪽 다시며 병아리 집을 향해 달려들었다. 병아리 특유의 냄새가 고양이와 개의 코를 자극하나 보다. 하지만 개라도 가까이 있어야 고양이나 뱀, 혹여 있을 다른 짐승의 근접을 막을 수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철통같이 병아리 집을 단속하고 개의 목줄을 안 닿을 만큼 묶어 놓고 보니 이제 조금 안심이 된다.

이제 우리 집 닭장에는 평화가, 우리 집 마당에는 봄 아닌 봄이 찾아왔다. 이 또한 귀촌의 애로이기도 하지만 기쁨이기도 하다.

깬지 사흘된 병아리가 어미 품에서 나오고 있다.
▲ 깬지 사흘된 병아리 깬지 사흘된 병아리가 어미 품에서 나오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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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닭싸움, #병아리, #응징, #맞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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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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