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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남 교장,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고삐 놓고 말 타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박경남 교장,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고삐 놓고 말 타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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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학교 신입생 80명을 모집하는 '안산 승마 힐링 학교'에 1019명이 몰려서 화제다. 예상치 않게 많은 신청자가 몰리다 보니 선발 방법이 문제였다. 계획한 대로 면접을 통해 뽑다가는 자칫 특혜 같은 뒷말에 휩싸여 곤란을 겪을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선발 방식을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추첨'이었다. 새롭진 않지만 누가 봐도 공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추첨장에는 경찰과 경기도교육청 관계자, 지역 주민을 입회시켰다. 선발 권한을 가진 박경남 '안산 승마 힐링 학교' 교장은 아예 추첨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 모두가 공정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치였다.

추첨 날짜(7월 1일)는 하루 전인 6월 30일에야 공지했다. 1000명이 넘는 아이와 부모가 추첨장에 올 경우, 대혼란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청난 작전(?)을 폈음에도 추첨하는 날 아이들 수십 명이 추첨장인 '안산 승마 힐링 학교' 휴게실 창문에 쪼르륵 매달려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렇게 신입생 선발을 마친 '안산 승마 힐링 학교'가 오는 14일 첫 수업을 앞두고 있다. 7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월 과정이다. 수업은 주중 방과후와 토요일 오후에 한다. 학습 프로그램은 ▲ 말 먹이주기 ▲ 말에 친구나 부모님 태워 끌어주기 등 다양하다.

여름 방학 때는 강원도 '한국재활승마센터'에서 2박 3일 승마 캠프를 연다. 캠프 프로그램은 ▲ 바다에서 말과 함께 즐기는 승마 ▲ 대관령 꼭대기에서 즐기는 승마 등이다. 특징은 이 모든 프로그램 시행 여부를 아이들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강사는 모두 승마 코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승마 코치 자격증과 함께 승마 재활치료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코치도 있다. 지난 9일 오후 이 학교를 찾아 '인기 폭발 비결'과 운영계획, 아직은 낯선 '승마'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아이들 원래 동물 좋아해, 승마보다는 말이 좋아서"

코칭스탭. 왼쪽부터 윤화영.이윤지.김현욱 코치, 박경남 교장
 코칭스탭. 왼쪽부터 윤화영.이윤지.김현욱 코치, 박경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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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의 후예들이라서 승마를 좋아할까요?"

이렇게 묻자 박 교장은 "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원래 동물을 좋아해서 그럴 거예요. 말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아마 승마보다는 그냥 말이 좋아서 온 아이들이 많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 모집 되겠느냐'며 걱정 많이 했는데, 전 아이들을 많이 가르쳐 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많이 오리라 예상도 했고요. 하지만 1000명이 넘을 줄은 솔직히 몰랐어요"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시작된 박 교장의 말은 '말 타는 실력'만큼이나 '일품'이었다. '인기비결', 즉 아이들이 1000명 넘게 몰린 이유만 물었을 뿐인데 꿈의 학교에 응모한 이유에 이어 승마예찬, 승마에 빠진 까닭까지 줄줄이 풀어 놓았다.

박 교장은 < OK 목장의 결투 >라는 영화를 보고, 주인공들이 말 타는 모습에 반해서 20년 전부터 말을 타기 시작했다. 취미가 넘쳐 승마선수가 됐고, 2011년 '제주 국제 지구력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경기도 안산에서 승마장까지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본업은 아직도 무역업이다.

박 교장이 경기도 교육청(교육감 이재정)이 추진하는 꿈의 학교에 응모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야'라는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꾸던 꿈과 '꿈의 학교' 정신이 딱 들어맞았던 것.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추진하는 꿈의 학교가 어른인 박 교장 꿈에도 힘을 실어준 것이다.

"모든 학교가 아마 공부 위주일 거예요. 잘하는 아이들 위주로 이끌어 가죠.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애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나중에 승마선수나 승마코치를 직업으로 삼는 아이도 나와야 하고요.

그래서, 어린이 승마 교육을 계속해 왔는데,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죠. 꿈의 학교에 선정돼서 많지 않은 금액이라도 지원금이 나오니, 제게 힘이 실린 거죠.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돈 때문에 배울 수 없었던 아이들은 기회를 얻은 것이고요."

대학병원 간호사 하다가 '승마코치'... 왜?

추첨이 끝나고, 당첨된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추첨이 끝나고, 당첨된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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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 추첨 끝내고 기념촬영, 왼쪽에서 두변째가 박경남 교장. 박 교장은 추첨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추첨장에 들어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7월1일 추첨 끝내고 기념촬영, 왼쪽에서 두변째가 박경남 교장. 박 교장은 추첨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추첨장에 들어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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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장의 '승마 예찬'은 굉장한 설득력이 있었다. 한참 듣고 있다 보니 꼭 승마를 해야 할 것 같은, 심지어 안 하면 안 되겠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에 못지 않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윤화영 '안산 승마 힐링 학교' 담당 코치다.

두 사람이 특히 강조한 것은 '치유 효과'다. 이것이 '승마학교'가 아닌 '승마 힐링 학교'라 이름 붙인 이유다. 박 교장은 "자폐증 있는 아이가 승마한 지 3년 만에 완치하고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다"며 심리치료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윤 코치는 "어린 시절 가방도 들고 다니기 힘들정도로 허리가 아팠고, 그 탓에 체육 시간에 교실에만 있을 정도로 약골이었는데 승마를 하면서 건강해졌다"며 척추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코치 본래 직업은 대학병원 간호사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재원'이다. 5년 동안 다닌 병원을 그만두고 지난 2013년부터 '승마 코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벌이는 간호사 시절 3분의 1이다. 승마 가르치기와 함께 말 씻기기, 말똥 치우기 같은 '막일'도 그녀의 몫이다. 그녀는 왜 이 삶을 선택했을까?

"암 센터에서 근무했는데, 죽음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청소년 정신과 쪽으로 지원해 놓고 합격 기다리는 기간에 이곳에서 일을 도와주게 됐는데, 차라리 자신 있는 '말(馬)'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치료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예 직업을 바꾼 거죠."

지난 9일 <안산 승마 힐링 학교>를 방문 했을때 마침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말에 태우는 계획은 없었지만 촬영을 위해 특별히 복장을 갖추고 아이들을 말에 태웠다.
 지난 9일 <안산 승마 힐링 학교>를 방문 했을때 마침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말에 태우는 계획은 없었지만 촬영을 위해 특별히 복장을 갖추고 아이들을 말에 태웠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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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을 들었지만 뭔가 허전했다. 이 정도 이유로 안정된 직업을 버렸다고 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해서, '승마가 당신 인생에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난 무당이 굿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신을 만나는 것처럼 말을 타면서 신을 만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얗게 변할 때까지 말을 탈 생각이에요."

내친김에 말을 잘 탈 수 있는 비결도 물었다.

"말과 친해지면 돼요. 어른들은 승마장 오면 말을 잘 타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말과 친해지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정답이에요. 말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나와 같은 인격체로 대하면 말은 분명 그걸 알아채거든요."

윤 코치도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지원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안산 승마 힐링 학교' 인기비결을 묻자 "제주도에 가야 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심 가까운 데 있고, 게다가 학교라고 하니 일반 승마장 보다는 잘 가르쳐 줄 것 같고…, 이런 기대감 때문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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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산 승마 힐링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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