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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에서 박수치고 있다.
▲ 박수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과의 오찬에서 손뼉을 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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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휘(避諱).

군주나 조상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 일본 등 주변의 한자문화권으로 전파됐다.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한자문화권의 인식에서 비롯됐다. 자나 호를 사용하는 풍습이나 부모·조상의 이름을 언급할 때 "홍길동"이라 하지 않고 "홍, 길자 동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휘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피휘할 자리를 아예 공백으로 남겨버렸다.(결자)

대표적인 예가 관음보살이다. 원래 관세음보살인데 당태종 이세민(李世民)과 겹친다는 이유로 '세'를 뺀 것이 관습적으로 남은 것이다. 피휘할 한자의 획을 빼거나(결획), 해당 글자와 뜻이 같은 별도의 한자를 쓰기도 했다.(대자) 연(淵)개소문을 천(泉)개소문으로 기록하거나 당나라 시대에 출간된 사기에서 세가(世家)를 계가(係家)로 쓴 것이 대표적이다.

진시황은 황(皇)자와 고(辜)자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고(辜)를 죄(罪)로 바꿨다. 또한, 자신의 이름 정(政)자를 피하려고 정월(正月)을 단월(端月)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 한나라 경제의 이름은 유계(劉啓)였는데, 계(啓)자를 쓰지 않기 위해 24절기 가운데 계칩(啓蟄)을 경칩(驚蟄)으로 바꾸었다. 청나라 때에는 강희제의 이름인 현엽(玄燁)을 피하기 위해 북경 자금성 북문인 현무문(玄武門)을 신무문(神武門)으로 고쳤다. 왕석후라는 학자는 건륭제의 이름을 책에 썼다는 죄로 관련자 수십 명과 함께 처형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군주의 이름을 피휘하는 관례는 고려 때부터 시행됐다.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문에서 '문무양반(文武兩班)'을 '문호양반(文虎兩班)'이라고 쓴 것은 고려 혜종의 휘 '무(武)'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조선왕실의 임금은 잘 쓰지 않는 글자를 택해 주로 한 글자로 이름을 지었다. 왕실의 존엄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백성의 불편은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정조(이산)나 세종(이도)의 이름이 모두 외자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정조의 이름 '이산(李祘)' 때문에 평안북도의 이산(理山)이란 고을 이름이 초산(楚山)으로 개명 당했다. 대구광역시의 한자 표기가 '大丘'에서 '大邱'로 고쳐진 것도 같은 이유다. 성인인 공자의 본명인 '공구(孔丘)의 이름을 피휘했기 때문이다. 앞서 대구의 이웃인 경산(慶山)도 같은 일을 겪었다. 1310년 이전까지는 장산(章山)이었는데 충선왕의 휘 '장(璋)'과 비슷한 글자를 피하기 위해 경산으로 고쳤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복원할 때 청나라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하려고 홍례문(弘禮門)의 이름을 흥례문(興禮門)으로 바꿨다. 만약 조선시대에 홍익대가 있었으면, 흥익(興益)대로 바뀌지 않았을까?

중세 왕정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도 피휘의 관습은 한동안 지속됐다. 시설물이나 단체에 사람 이름을 붙일 때 본명을 그대로 붙이는 것을 피한 것이다. 이병철의 호암미술관은 본명 대신 호를 사용했고, 육영재단(육영수), 정수장학회(박정희, 육영수)는 이름의 일부만 사용했다. 특이하게도, 제5공화국 시절 방송가에서는 '(이)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에게 비천한 역을 맡기거나 악역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청와대 "대통령 이름을 법안에 함부로..."

"박근혜법, 이렇게 지칭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1998년 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공동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법'이라고 지칭하자,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6일 본회의에서 '표결 불성립'으로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된 국회법 개정안과 이 법이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재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이름을 법안에 함부로 붙이는 것도 그렇지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만든 법안명을 문제 삼고 나섰다는 점에서 '대통령 심기경호'로 읽힌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8일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힌 채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떤 권력이든 피휘와 역린이 존재한다. 권력의 속성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 피휘와 역린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피휘와 역린, 금지와 처벌의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사회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권력의 존립 자체도 위험해진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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